본문 바로가기
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가정의 평화가 위태로울 때 <우리 집>

by 김민식pd 2020. 6. 30.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을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봤다. 영화가 시작하고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얼굴이 극장 화면을 가득 채운다. 주변 소음과 아이의 표정만으로 따돌림 당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탁월하게 잡아냈다.


영화 <우리 집>에서도 감독은 같은 방식으로 첫 컷을 연출한다. 초등학교 5학년 하나(김나연)의 표정 위로 엄마 아빠의 대화가 들려온다. 말이 한마디씩 오고 갈 때마다 긴장은 고조된다. 엄마는 아빠가 못마땅하고, 아빠는 엄마가 불만이고, 아이는 가운데서 눈치만 살핀다. 이러다 우리 엄마 아빠 이혼하는 거 아냐?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싶은 아이의 애달픈 노력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 아이의 표정 위로 열 살 때 내 모습이 포개졌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셨다.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서로 소리를 질렀고, 어머니는 욕을 하셨고, 아버지는 손찌검을 하셨다. 고함소리와 매 맞는 소리와 비명이 담을 넘던 어느 날,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1970년대에는 가정불화를 두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만큼 싸움의 내용이 심각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리고 파출소로 갔다. 어린 마음에 나는 아버지가 잡혀가는 것도 무섭고, 어머니가 나를 두고 가는 것도 두려웠다. 파출소까지 쫓아갔는데 두 분은 거기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두 분의 다리를 부여잡고 제발 그만 싸우시라고 울며 빌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마흔이 넘어 어릴 적 살던 마을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우리 집 맞은편에 친구가 살던 양옥집이 그대로 있기에 반가운 마음에 대문 넘어 안을 들여다봤다. 마당에 서 있던 팔순의 할머니가 “누구슈?”하시기에 인사를 드렸다. 친구는 고향을 떠났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홀로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니가 민식이냐? 니가 이렇게 컸어?” 내 손을 붙잡고 팔순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 “요즘도 너희 부모님 많이 싸우시니?” 걱정스런 어머니 표정을 본 순간 나는 그 날 경찰에 신고하신 분이 누구였는지 알 것 같았다.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젠 두 분 다 연세가 있으셔서 안 싸우세요.” 두 분이 따로 사신지 10년이 넘었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이 둘 다 싫었다. 때리는 아버지도 미웠지만, 싸움을 거는 어머니도 원망스러웠다. 나는 참 나쁜 아들이었다. 부모님이 가엽다는 생각보다, 두 분 때문에 창피함을 견뎌야 하는 내 삶이 너무 싫었다. 

영화 <우리 집>에 나오는 하나는 학교에서 선행상을 받는 착한 아이다. 길 잃은 아이를 도와주다 3학년 유미(김시아)와 7살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난다. 가난한 형편에 부모와 떨어져 외롭게 지내는 자매를 보살펴주다 유미 네 집이 월세가 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돕기 위해 나선다. 영화를 보며, 저 아이도 사는 게 참 힘들겠네, 싶었다. 착한 사람에게 인생은 항상 큰 짐을 지운다.

비록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나의 목표다. 나이 쉰을 넘기고 결혼20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가 많다. 대화로 갈등을 풀려고 노력하고,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이제야 깨달았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도 사는 게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밖에서 일은 뜻대로 안 되는데, 집에서도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삶이 힘들 때마다 책을 펼치고 영화를 본다.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구원을 책장이나 화면에서 만났다. 허구에서 찾은 위안일지라도, 힘든 시간을 버틸 힘이 되어준다면, 그 위로는 진짜다. <우리 집>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다.

영화 속 주인공 하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 아빠를 화해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돼. 계속 다투는 엄마 아빠에 대해 원망이 커지거든. 두 사람은 그냥 가여운 어른들이라 여기고, 네 마음의 평화만 지켰으면 좋겠다.’

 

('왓챠의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watcha

 

왓챠 WATCHA의 브런치

좋은 영화를 보는 오만가지 시선을 소개합니다. 왓챠플레이엔 좋은 영화가 차고 넘치거든요.

brunch.co.kr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