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우리들>을 이수역 아트나인에서 봤다. 영화가 시작하고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얼굴이 극장 화면을 가득 채운다. 주변 소음과 아이의 표정만으로 따돌림 당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탁월하게 잡아냈다.


영화 <우리 집>에서도 감독은 같은 방식으로 첫 컷을 연출한다. 초등학교 5학년 하나(김나연)의 표정 위로 엄마 아빠의 대화가 들려온다. 말이 한마디씩 오고 갈 때마다 긴장은 고조된다. 엄마는 아빠가 못마땅하고, 아빠는 엄마가 불만이고, 아이는 가운데서 눈치만 살핀다. 이러다 우리 엄마 아빠 이혼하는 거 아냐?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싶은 아이의 애달픈 노력이 시작된다.

영화를 보는데 주인공 아이의 표정 위로 열 살 때 내 모습이 포개졌다.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셨다.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서로 소리를 질렀고, 어머니는 욕을 하셨고, 아버지는 손찌검을 하셨다. 고함소리와 매 맞는 소리와 비명이 담을 넘던 어느 날,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 1970년대에는 가정불화를 두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만큼 싸움의 내용이 심각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데리고 파출소로 갔다. 어린 마음에 나는 아버지가 잡혀가는 것도 무섭고, 어머니가 나를 두고 가는 것도 두려웠다. 파출소까지 쫓아갔는데 두 분은 거기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두 분의 다리를 부여잡고 제발 그만 싸우시라고 울며 빌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마흔이 넘어 어릴 적 살던 마을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우리 집 맞은편에 친구가 살던 양옥집이 그대로 있기에 반가운 마음에 대문 넘어 안을 들여다봤다. 마당에 서 있던 팔순의 할머니가 “누구슈?”하시기에 인사를 드렸다. 친구는 고향을 떠났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홀로 빈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니가 민식이냐? 니가 이렇게 컸어?” 내 손을 붙잡고 팔순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 “요즘도 너희 부모님 많이 싸우시니?” 걱정스런 어머니 표정을 본 순간 나는 그 날 경찰에 신고하신 분이 누구였는지 알 것 같았다.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젠 두 분 다 연세가 있으셔서 안 싸우세요.” 두 분이 따로 사신지 10년이 넘었다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이 둘 다 싫었다. 때리는 아버지도 미웠지만, 싸움을 거는 어머니도 원망스러웠다. 나는 참 나쁜 아들이었다. 부모님이 가엽다는 생각보다, 두 분 때문에 창피함을 견뎌야 하는 내 삶이 너무 싫었다. 

영화 <우리 집>에 나오는 하나는 학교에서 선행상을 받는 착한 아이다. 길 잃은 아이를 도와주다 3학년 유미(김시아)와 7살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난다. 가난한 형편에 부모와 떨어져 외롭게 지내는 자매를 보살펴주다 유미 네 집이 월세가 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돕기 위해 나선다. 영화를 보며, 저 아이도 사는 게 참 힘들겠네, 싶었다. 착한 사람에게 인생은 항상 큰 짐을 지운다.

비록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게 나의 목표다. 나이 쉰을 넘기고 결혼20주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가 많다. 대화로 갈등을 풀려고 노력하고,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이제야 깨달았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도 사는 게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밖에서 일은 뜻대로 안 되는데, 집에서도 존중받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삶이 힘들 때마다 책을 펼치고 영화를 본다.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구원을 책장이나 화면에서 만났다. 허구에서 찾은 위안일지라도, 힘든 시간을 버틸 힘이 되어준다면, 그 위로는 진짜다. <우리 집>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다.

영화 속 주인공 하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 아빠를 화해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돼. 계속 다투는 엄마 아빠에 대해 원망이 커지거든. 두 사람은 그냥 가여운 어른들이라 여기고, 네 마음의 평화만 지켰으면 좋겠다.’

 

('왓챠의 브런치'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watcha

 

왓챠 WATCHA의 브런치

좋은 영화를 보는 오만가지 시선을 소개합니다. 왓챠플레이엔 좋은 영화가 차고 넘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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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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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ORA& 2020.06.30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혹 부부사이가 좋은 집이 있다더군요,쇼킹한 진실?이라던 김창옥 소통전문가의 강의영상이 생각나네요.
    여전히 안 맞는 부모님 그리고...
    역시나 안 맞는 인간...
    화를 다스리려 수행중입니다 ^^

  3. 인대문의 2020.06.30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 think you're the best father.
    I believe you are the role model of your daughters.
    When I was young I also learned by seeing my parents.
    Now you're my role model.

    Thank you and have a beautiful day~*

  4. 시골초아놀이터 2020.06.30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이 속이 빈 윤곽 음각틀이라면
    모든 홈들과 들어간 부분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이프디 아픈 통찰들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나온 주물은 행복 가장 완벽하고 가장 확실한 지복이라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얼마나 보호받아야 하며 단호해야만 하겠는가 이로인해 예술계밖의 사람들은 죽음과 광증에 이른다 오,밖으로 나갈자유 중요한 부정의 자유 죽은 심장이라는 이 극악한 소유물이 아닌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

    수전손택의 글입니다
    기대어 그늘에 앉아 조용히 있습니다~~^^

  5. 풀꽃자운영 2020.06.30 09: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살짝 아리네요.그래요.그런 부모님을보면 그냥 헤어지지 않고 왜 저렇게사나?하는 생각이 들때가많았지요.
    결국 자녀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어주진 못했지만 pd님은 잘 살고계신듯하여 고마운일입니다.

  6. 라일락 2020.06.30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 출근해서 차 한잔 마시면서 피디님 글을 매일매일 보고있습니다.
    제 부모님은 땅한평없이 시골에서 결혼하시고 돌아가실때까지 일만 하시다
    많은 땅만 남겨놓으셨고 이런 장인장모님을 존경한다고 남편은 늘 말한답니다.
    자식의 공부나 진로에는 전혀 관심이없으시고 일해서 땅넓히는 즐거움으로 사셨기에
    두분이 싸우는 모습은 거의 본적이없는게 싸울 시간이 없는거죠.그럴시간있으면 주무셔야ㅋㅋㅋ

    저도 중매로 결혼했는데 다행이 남편가정도 온화한 성격들이라서 별 탈없이 29년째 살고있는데
    피디님의 부모님이야기나 뉴스에 나오는 가정폭력을 보면 정말 가슴아프답니다.

  7. 아리아리짱 2020.06.30 1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PD 님 아리아리!

    오늘은 특히 어린시절 잘 견디어 낸 민식군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같은 공포와 불안을
    많이 겪은 저이기에 깊이 공감합니다.

    저도 부모님이 하도 싸워서 결혼은 불행의 무덤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독신주의를 고수하려 했고요.

    다행히 이해심 많고 온유한 남편을 만나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자라면서 본대로 행동한다라는 말이 제일 무서워서 그러지 않으려
    마음을 갈고 닦고 챙기려 애썼습니다. 그 방법을 알기위해 책을
    더 가까이 한 것이고요.
    그러니 고난이 나쁜 것만은 아닌 듯 하다는 위로를 가집니다.

    어쨋든 피디님의 현재 모습은 '넘사벽'의 멋진 아빠, 멋진 남편, 멋진 어른이십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통해 샴페인 타워의 꼭대기잔 철절 흘러 넘치게 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우리집> 꼭 챙겨 봐야겠습니다.

  8. Laurier 2020.06.30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누구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겪은 일만이 가장 크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 나이에서 가장 컸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 트라우마를 넘어설 만한 무언가가 있었기에 지금의 나도 있을테고요. 아직도 무엇이 옳은지 알 수는 없지만 삶이 그렇기에, 조금 더 배려하고 노력하는 것. 그것만이 답인듯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겪을 트라우마가 없을수야 없겠지만 인생을 망치는 트라우마는 점점 더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글도 감사합니다~

  9. 꿈트리숲 2020.06.30 10: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부모님 사소한 말다툼들을 보며
    자랐는데요. 그때는 이해못할 내용들이
    제가 결혼해보니 왜 싸우는지 알겠더라구요.

    나와 똑같다 생각하는 마음, 상대를 그대로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있어서 싸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화내지 않기,
    수행에 가깝습니다 ㅎㅎ

    나이도 먹고 몸도 다 큰 어른이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엔 아이가 들어있나봐요.
    더 존중받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은 어린 아이요.
    그걸 배우자가 해주면 참 좋겠지만 그걸 바라기 전에
    셀프로 많이 해주려 합니다.

    어린 민식군의 마음에 마데카솔 듬뿍 발라주고
    싶네요^^

  10. 아빠관장님 2020.06.30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코로나로, 많이 한 것 중 하나가 아이들과 영화보기였습니다. 같이 본 영화 중 4살 막둥이 하늘만 빼고 우리가족 모두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마음에 훅~ 들어온 영화였지요. 큰 딸과 둘째 아들은 우리집을 4번은 본 거 같아요.

    제가 느낀 감정은 피디님께서 작성하신 내용과 99%일치 합니다.ㅜㅜ;;
    1%다른 점은, 전 부모님이 이혼하실 것 같은 두려움을 넘어서, "두분 제발 이혼하세요....."라는 말을 중학교 시절에 참으로 많이 했고,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기도 했답니다....

    어떤 이는 그러지요, "그땐, 다 그러고 살았어. 또 애 낳고 살다보면 다 그런거야~" 전 '다 그렇게' 사는 모습을 세아이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노력합니다.. 부모의 '다 그렇게'사는 모습을 보는 아이들이 얼마나 힘든지... 좀 잘 알거든요..

    그런데 말씀 처럼 참 쉽진 않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한 하루 보내세요. 피디님.

  11. 타타오(tatao) 2020.06.30 1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들 보다가 남자동생의 말에 눈물이 울컥...
    "그애가 때리고 그래서 나도 그애 때리고 또 그애가 날 때리고....그럼 우리 언제 놀아? 난 그냥 놀고 싶은데."

  12. 시재희 2020.06.30 1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무실에서 글 읽다가 코 끝이 찡하니 눈물이 나려고 해서 눈에 힘을 퐉 줬어요. 제 부모님도 비슷했는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일 자체가 싫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글 읽으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과 부모가 된 후 지금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이 영화 꼭 봐야겠어요!좋은 영화 소개, 좋은 글 모두 감사합니다.

  13. 뽀로로 2020.06.30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존경합니다~행복하세요~모두들~~

  14. 2020.06.30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코코 2020.06.30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무실에서 이 글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허구에서 찾은 위안일지라도 힘든 시간을 버틸 힘이 되어준다면
    그 위로는 진짜다.
    가여운 어른들이라 여기고, 내 마음의 평화만 지키자.'
    이 두 문장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피디님.

  16. 오달자 2020.06.30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닥토닥.. ..
    어린 시절 민식 어린이 등을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저희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의 부모님들께서는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신듯 합니다.
    물론 저희 아버지께서는 손찌검은 않으셨지만 두 분이 동갑이시다보니 야! 너!이ㅅㄲ, 저ㅅㄲ욕도 써가며 싸우셨던것 같으네요. ㅎ

    저 또한 그런 환경으로인해 절대 결혼은 하지 말아야지...하면서 성장했는데....,
    유순한 남편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네요.

    이제 그만 어린 시절 가슴 아픈 추억은 생각지 마시고 지금의 이쁜 가정 이루고 사시는 어른 김민식님께 응원의 박수를 드립니다.^^

  17. 인생공부 2020.06.30 2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글을 쓰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은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는 가겠지요. 저도 어릴때 부모님이 대판 크게 한번 싸운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문도 부셔지고ㅎ. 인생은 참으로 쉽지 않다는게 살면서 더 와닿네요

  18. 나의 불혹 성장기 2020.07.01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꺼내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글로 풀어내신 솔직함이 존경스럽습니다.

    오늘도 글 읽고 힘냅니다.
    그리고, 글에는 솔직함이 묻어나야 한다는 것 또 배우고 가네요.

  19. 제니스라이프 2020.07.01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 적 영향으로 남편과 싸우거나 화가 나는 상황을 '잘못되었다' 고 생각했어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참았고, 갈등 상황이 생기면 '너 때문에 내가 참지 못한 것'으로 상황을 몰고 갔습니다.
    이제는 내가 화가 날 수도 있고, 상대와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이 모든 상황들이 인간사의 당연한 사건 사고 정도로 받아들일 만큼 상처를 닦아내고 치유하고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참지 못하고 화내는 부모의 모습이 더이상 수치스럽거나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싸움을 통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유익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다 문득 이 사실이 행복하게 느껴졌어요.
    상처없는 사람이 어디 있고, 갈등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처에 파묻혀 우울하거나 괴팍한 사람이 되지 않고
    상처를 돌아보고 어루만질 수 있을 만큼 관대해졌다는게요.
    피디님이나 여기 댓글을 남겨 주신 분들이 다 자신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는 분들인 것 같네요.
    우리 사회의 상처들이 이렇게 아물어가는 모습이라 생각해요 ^^

  20. 2020.07.05 2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1. 호산나 2020.07.11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거울 깨고 후라이팬 던져가면서 파이팅 넘치게 싸우시던 두분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리고 그 와중에도 배가 고파서 밥을 먹던 어렸던 제 모습도 안쓰럽게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