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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퇴사하는 직원의 마음

by 김민식pd 2019. 7. 9.

취업하기 어려운 요즘, 대기업의 채용 담당자는 갑이고 입사 지원자는 을이다. 그런데 이들의 갑을관계는 입사와 동시에 역전되는 경우가 적잖다. 몇해 전 한 경제단체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이 1년 내 퇴사하는 비율은 30% 가까이 된다. 신입사원 1인당 교육훈련비용이 1억원이라는데, 100명 중 30명이 1년 내 회사를 그만두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국 채용 담당인 인사부에 문책이 가해진다.​

어느 대기업의 인사 담당 직원이 대학 교수를 찾아가 이런 하소연을 했단다. 학생들이 더 강인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게 해달라고. 고도 경제 성장기에 태어나 세상살이 힘든 줄 모르고, 집에서 오냐오냐 자라고 학교에서도 대접만 받다보니, 직장에 들어와 조금만 힘든 일을 겪어도 바로 그만둔다고. 과연 이게 ‘요즘 애들’의 문제일까?

얼마 전 새로 생긴 커피 가게가 화제였다. 커피 한잔을 사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3시간 동안 줄을 선다는 이야기에 50대 부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를 못하겠네.” 부장의 말을 들은 20대 친구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걸 왜 이해를 못하는지, 그게 더 이해가 안 가네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겨우 3시간 기다려서 확실한 행복을 얻잖아요.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을 보며 놀 수도 있고요. 게임하고, 드라마 보고, 친구랑 채팅하며 놀았더니, 에스엔에스(SNS)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 생기잖아요. 사진 한장 올리면 모두가 ‘좋아요’를 누르고 부러워하잖아요. 이렇게 확실한 행복이 또 있나요?”

지금의 20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아온 과정 전체를 봐야한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영어를 배운 세대다. 아직 우리말도 서툰데 원어민 수업을 듣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 초등학교 수학도 어려운데, 선행학습이랍시고 중학교 수학 교재를 공부하고 미적분 문제를 풀어야 했다. 아이들이 괴로워하면, 부모가 그런다.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만 견디면, 대학만 들어가면, 다 좋아질 거야.” 대학에 들어가도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추었지만, 역사상 최악의 실업난에 직면하게 된다. 고생고생해서 겨우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의사결정은 비효율적이고, 인력구조는 비상식적이고, 평가방식은 비합리적이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인사부를 찾아가 고충을 털어놓으니 담당자가 그런다.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만 견디면, 10년 후 과장이 되면 좋아질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온다. ‘사람 한번 속지, 두번 속나?’

먼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의 20대가 살아오면서 배운 교훈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20대가 일하기 싫어서, 야근하기 싫어서 만든 문화가 아니다. 무작정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들에게는 효율도 중요하고 휴식도 소중하다.

신입사원의 퇴사를 막기 위해 대학을 찾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게 해달라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어떤 문제든 그 해결책을 바깥에서 찾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찾아야한다. 질문을 바꿔보자. ‘요즘 청년들에게 더 매력적인 근무 환경은 무엇일까?’ 회사에 오는 건 돈이 좋거나 일이 좋거나 사람이 좋아서인데, 나가는 이유는 전부 ‘사람’이다. 사람이 싫을 때 그만 둔다. 젊은 직원의 퇴사가 빈번한 부서라면, 해당부서의 상사들을 조사해보시라. 문제는 거기에 있다.

기업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화두는 디지털 대전환이다. 마케팅에서 구매까지, 모든 일이 스마트폰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20대는 스마트폰 문명에 최적화된 세대다. 미래 시장 가치를 창출해낼 핵심 인재들이다. 갑을관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0대 청년을 갑으로 모시는 회사, 그곳이 다가올 미래에 최강 기업이 될 것이다.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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