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처음 쓴 편지는 당신의 글에 대한 답장이었어요. 2000년 저는 MBC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PD로 일했어요. 2년 반 동안 일일시트콤을 만드느라 힘들었어요. 당시의 낙은, MBC 시청자 게시판에 들어가 여러분이 올린 글을 읽는 일이었어요. 그중에는 극중 박경림을 짝사랑하는 조인성을 향한 연애편지도 있고, 양동근을 몰래 좋아하는 장나라를 응원하는 위문편지도 있었어요. 밤을 새며 일하던 제게 여러분이 써주신 편지는 큰 힘이 되었어요. 답장을 써야겠다는 마음에 MBC 프로그램 게시판에 김민식 PD의 연출일기라는 글을 연재했어요.

논스톱시리즈가 끝나고, 밤잠을 아껴가며 쓴 편지를 올려둔 공간도 MBC 홈페이지 개편과 함께 사라졌어요. 10년 가까이 청춘 시트콤을 만들었는데, 어느 날 방송사 편성표에서 저녁 7시 청춘 시트콤이 사라졌어요. 심지어 노조 집행부로 일한 다음부터 한동안 프로그램 연출에서 배제되었어요. 고민이 깊어졌지요. 나는 누구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김민식이다.’ ‘김민식은 야구 선수도 있고, 축구 선수도 있는데, 김민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다 나인가?’ ‘아니다. 나는 시트콤 PD 김민식이다.’ ‘시트콤이 사라졌는데도 아직 시트콤 PD 김민식인가?’ ‘아니다. 나는 드라마 PD 김민식이다.’ ‘회사에서 드라마 연출을 맡기지 않아도 드라마 PD인가?’ 할 말이 없더군요.

나는 누구인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그 답을 찾기 위해 2011<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는 블로그를 열었어요. 매일 아침 당신에게 편지를 썼어요. 블로그 초기엔 <공짜 피디 스쿨>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어요. 전국의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전하는 편지였어요. 좋은 언론인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을 많이 읽는 게 좋다는 생각에 추천 도서 목록을 올리기도 했어요. 더 좋은 피디가 되기 위해 내가 하는 매일의 노력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짠돌이 독서 일기>를 연재했어요. 매일 읽는 책에서 좋은 글귀를 찾아 피디 지망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피디 지망생을 위해 쓰던 편지는 몇 년 안 가 그만뒀어요. 나 자신 더 이상 PD로 일하지 못하는데 감히 무슨 충고를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글쓰기를 그만둔 건 아니에요. 힘들 땐 나 자신을 위로하는 글을 썼거든요. 때로는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라는 항변도 했어요.

유배지로 좌천된 후, 블로그의 내용은 오히려 풍성해졌어요. 남는 시간에 서울 근교로 자전거 여행을 다녔고요. 멋진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 블로그에 올렸어요.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어요. 많은 분들이 영어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걸 보고, 영어를 돈 안 들이고 쉽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 고민의 결과를 매일 띄우는 편지에 담았고요. 하루는 어느 출판사 편집장님이 블로그에 답장을 올리셨어요. 국내 독학파의 영어 공부 비결을 책으로 내자고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입니다. 매일 아침, 이름 모를 독자에게 띄운 편지가 14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의 원고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이듬해에는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쓰는 즐거움에 대해 책을 냈어요. 그렇게 나온 책, <매일 아침 써봤니?>6쇄를 찍었습니다. 이제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나의 글을 읽는 독자가 없어도?’ ‘읽는 이가 없어도 나는 매일 글을 쓸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다.’ ‘작가로 살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매일 책을 읽는다. 매년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매일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더 좋은 글을 쓸 것이라 믿고 노력할 것이다.’

오늘도 저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제 편지를 받아주고 읽어주는 당신이 있어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생각>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고를 청탁하신 잡지사 편집자님이 예전에 논스톱 애시청자로서 카페 활동을 하신 분이었어요.

제게 보내신 편지를 보며, 감회가 새로웠어요.

20년 전 이름 모를 독자에게 띄운 편지가, 원고 청탁 메일이 되어 돌아왔네요.

역시, 삶은 하루하루가 다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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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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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수정 2019.03.13 0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꾸준하게 써주시는 편지들 앞으로도 잘 읽도록 할께요!^^

  2. 꿈트리숲 2019.03.13 0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어김없이 써주신 편지에 심쿵했습니다.
    1600통 넘게 쓰시는 그 끈기와 정성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편지들이 더 대단할 것 같기도 해요.

    소중한 편지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3. 제경어뭉 2019.03.13 0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멋진선물 받아갑니다~행복한하루 되세여~^^

  4. 보리랑 2019.03.13 0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애편지 기다리듯 아침에 눈비비며 왔나 안왔나 들락날락~ 매일 아침 감사합니다~

    "매일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더 좋은 사람이 더 좋은 글을 쓸 것이라 믿고 노력할 것이다."

  5. 아리아리짱 2019.03.13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매일 아침 배달 되는 그 편지로 힘을 얻어 이 각박한 세상을
    따뜻한 온기를 더해 나아갑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처럼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이끌어
    주시는 교장 선생님 !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함께 노력 하겠습니다.^^

  6. 조기자가될거야 2019.03.13 0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처럼 저도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해, 더 좋은 기사 쓰는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7. 2019.03.13 08: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8. 오달자 2019.03.13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아침 편지를 쓴다는거...그냥 쓰면되지머~~
    하다가도 매일 아침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피디님을 만난 이후 저의 삶의 태도가 바뀌어졌어요.
    1년뒤 10 년뒤 먼 훗날~내가 보낸 편지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응원의 편지가 되다...넘 감동적입니다.
    매일 아침 당신의 편지로 위안을 얻고 갑니다.
    -약목가시나-

  9. 루나 2019.03.13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글을 읽으면,

    힘든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곤 합니다.

    내 안에 긍정에너지를 충전 하는 느낌 ^^

    감사합니다.

    언젠간 직접 뵙고 이야기 나누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

  10. SILAHMOM 2019.03.13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 너무 감동이네요.
    편지의 답장이 ~ 나중에 새로운 기회로 돌아오는 답장으로

    꾸준함의 힘을 배우고 갑니다.
    저에게도 언젠가 더 멋진 답장이 돌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11. 섭섭이짱 2019.03.13 1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 늘도 어제도 어떤글이 올라오나
    늘 설레는 이 마음.
    도 착한 편지에 매일 답장 쓴지도 몇년...
    나 태해진 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되였죠. 생각이 바뀌
    는 제 자신을 보며 이건 단순
    편 지라기보다 인생 보물상자를 만난거 같았죠.
    지 금처럼 앞으로도 쭉 편지 받고 싶네요.
    씁 니다. 오늘도 댓글을 ^^
    니 나노 닐리리야 피디님 블로그 지화자
    다 좋다

  12. Leah 2019.03.13 1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생각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민식 피디님

  13. 은하수 2019.03.13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의 팬들에 대한 쌍방향 소통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네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 블로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들인 MBC 게시판은 개편과 함께 사라지고...;;;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뉴논스톱, 박수홍의 러브하우스, 느낌표... 저의 20대와 함께 했던...그걸 보고 참 많이도 웃고 울었던... 그 중심에 pd님이 계셨네요.
    그래서 pd님을 안지 얼마 안되었지만... 신기하게도 오래전부터 알아온 것처럼..그랬나봐요^^

    매일 새벽 정해진 시간에 블로그를 하시는 pd님을 보면 존경할 수 밖에 없고, 블로그를 채우는 pd님의 삶을 보면 감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pd님 팬으로서 pd님 따라하려 노력합니다.
    매일 큰 감동과 선물을 주시는 pd님 참 감사드립니다^^

  14. littletree 2019.03.13 18: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매일 편지를 받을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합니다..

  15. Jen Choi 2019.03.13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자소서를 쓰는 중에 딴짓을 좀 하다가 보물같은 티스토리를 찾게 되었네요! 저는 초등학생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뉴논스톱을 틀어놓고 저녁을 먹었습니다. ^^ 이제는 커서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아직은 저의 진가를 몰라보는지 백수로 지내고 있답니다.. ㅎㅎㅎ 비록 저는 책보다 영상을 가까이 해서 글은 잘 못 쓰지만 피디님의 글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과 발상 방식이 저와 굉장히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이지요 ㅎㅎ 그렇지만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치 제게 너는 피디를 준비하는데 부족한 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요! 피디님처럼 자기 삶을 사랑하는 피디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6. 샘이깊은물 2019.03.13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역시 저를 규정하는 것은 속한 집단이나 타이틀이 아니었어요. 그런 것들은 저의 일부일 뿐, 어떨 때는 제 본질을 흐리기도 했고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하고 싶은지...내가 나에게 다정하게 묻고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 후에야 저에 대해 아주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삶은 하루하루가 다 선물입니다!! :)

  17. 혜린 2019.03.13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지십니다! 박산호 번역가 님의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를 읽고 있는데요. 그 중 “진정한 선배, 진정한 어른이라면 섣부른 ‘지적질’이나 ‘자기자랑’이 아니라 세월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몸으로 체득한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구절을 읽다가 피디님이 떠올랐습니다. 피디님의 진심어린 조언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드려요!

  18. 2019.03.14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9. 그리움 2019.03.14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맙습니다!
    에서 간증 느낌이 ㅋㅋ 글 감사합니다.

  20. 뽀로로 2019.03.22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팬입니다. 매일 댓글을 쓰진 않지만 넘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