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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새해엔 딴짓을 권합니다

by 김민식pd 2019. 1. 4.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냈을 때, 같이 일하던 후배가 놀랐어요. “주조정실에서 교대근무로 일하면서 어떻게 책을 썼어요?” 주조 교대근무를 하며 정기적으로 밤을 꼴딱 새우며 일합니다. 전날 오후 5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야근을 하고 교대하면요, 집에 와서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요.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머리만 지끈거려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싶으면 더 머리가 아프지요. 저는 그럴 때, 지금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에너지를 쓰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합니다. 이를테면 놀이요. 제게는 그게 독서고, 글쓰기입니다. 일이 싫어 달아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놀이를 향해 달려갑니다. 

“너 진짜 독하다.”하는 소리를 가끔 들어요. 1994년에 한국 3M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는,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에 63빌딩 수영장에서 새벽 수영을 하고, 8시 반까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오후 6시 칼퇴근해서 종각역으로 달려가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통역대학원 입시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밤 9시에 학원 수업을 마치면 도서관으로 가서 12시 문 닫을 때까지 공부를 하고요, 다시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했지요. 영업을 다니는 틈틈이 점심 시간에 회화 문장을 외우는 저를 보고 동기가 물었어요. "넌 정말 지독하구나. 어떻게 그게 가능해?" 만약 회사를 그만둔다면, 회사가 싫은 게 아니라 영어 공부가 미치도록 하고 싶어서 일 거예요. 그런데 그 미치도록 하고 싶은 영어 공부, 어쩌면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진짜 좋아하는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회피 동기보다는 접근 동기가 더 중요합니다.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정재승 / 어크로스)을 보면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서 이런 얘기가 나와요.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싫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위의 책 45쪽)


일이 힘들 때, 저는 놀이를 통해 더 좋아하는 일을 찾습니다. 영업이 힘들면 영어 공부를 하고요. 주조 근무가 힘들면 블로그를 통해 작가의 삶을 꿈꿉니다. 정재승 교수는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입니다. 전공분야는 의사결정 신경과학인데요. 평소 강연을 통해 뇌과학이 밝혀낸 연구 결과를 대중들에게 들려줍니다. <열두 발자국>은 그렇게 이뤄진 강연 중 12개를 뽑아 책으로 묶은 내용이고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도 그렇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푸는 데 정말 재주가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사람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신경과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이렇게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과학자가 있다는 건 책 읽는 이로서 복이라 생각해요. 연구도 하고, 강연도 하고, 집필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고, 정말 다재다능한 분인데요. 어쩌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게 이분이 창의성을 발현하는 비결일지 모르겠네요. 


통상 우리가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 몰입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한 가지 생각에 오래 집중하고 깊이 들어가야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얘기들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기도 힘들뿐더러, 오히려 두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다른 과제를 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는 겁니다. 과제에 대한 생각에서 멀어졌다 가까이 다가갔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에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위의 책 334쪽)


일도 하고, 독서도 하고, 여행도 하고, 놀기도 하고, 다양한 딴짓을 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 다양한 활동 가운데에서 새로운 창작열이 샘솟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루에 딱 1시간이라도 투자해보려고 합니다. 새해에도 부지런한 딴짓과 함께 더욱 즐거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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