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로 특강을 가면 방송사 PD로 입사하려면 반드시 명문대를 나와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김태호, 나영석, 등등 언뜻 떠오르는 스타 피디들은 다 SKY출신입니다. 중고교 시절 공부만 한 사람보다는, 아이돌 그룹 사생팬으로 산다거나,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TV를 열심히 즐긴 사람이 콘텐츠를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에 피디 공채 심사를 한 적이 있어요. 블라인드 전형이라 출신학교를 전혀 보지 않고 뽑았는데요. 뽑고 나서 보니 다 좋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이더라고요. 이상했어요. 학벌을 보고 뽑은 게 아닌데 왜 그럴까? 제가 뽑은 기준은 하나입니다. 성실함이에요. 어차피 뽑으면 저랑 같이 조연출로 일할 친구들이니까, 열심히 일할 것 같은 사람을 뽑았어요. 1박 2일 동안 합숙 평가를 하며 가장 성실해 보이는 사람들을 뽑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런 친구들은, 고교 시절에도 성실하게 공부를 열심히 했더군요. 밤샘 촬영 잘 하는 친구들은, 결국 어려서 밤새워 공부해본 사람이더라고요. 

한국사회에서 명문대라는 학벌이 통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게 간판이기 때문입니다. 장강명 작가님의 <당선, 합격, 계급>에서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간판은 왜 중요할까? 어느 때 간판이 가장 중요한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을 때다. 그럴 때 우리는 간판을 큰 기준으로 삼는 수밖에 없다. (중략)

아무 경력 없이 노동시장에 자신을 팔아야 하는 구직자들은 기업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는데, 이 역시 본질은 '좋은 간판을 다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걸 '스펙'이라는 단어로 부르기도 한다. 학점, 자격증, 인턴 경험, 아르바이트 경력, 봉사 활동......

그중 한국 기업들이 매우 중시한다고 알려진 간판이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다. (중략)

어느 대학 간판을 갖고 있느냐로 계급사회를 만든다. 패거리를 이룬다. 자신보다 나은 간판을 가진 사람 앞에서 위축되고, 못한 간판 앞에서 우월감을 맛본다. 여기서도 엘리트 의식과 피해 의식, 권위주의와 반권위주의가 동시에 무럭무럭 자란다.

노동시장이라도 지원자의 실력을 비교적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몇몇 예외적인 부문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 같은 분야가 그렇다. 프로 구단 스카우터들은 대학 선수들의 경기력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만 학교 이름은 따지지 않는다. 연예기획사 역시 그렇다. 

(<당선, 합격, 계급> 309~313쪽)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아니, 일을 저렇게 못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좋은 회사에 들어갔지?' 싶은 사람이 있어요. 알고보니 명문대를 나온 사람이더군요. 나이 스물에 대학 입시에서 거둔 성공이 그 사람 인생에서 최고의 업적인 거죠. 앞으로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요.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 처음엔 좀 힘든 일도 해야하고, 위에서 시키는 일도 해야하고, 때로는 갑질을 견뎌야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명문대 나온 사람은 그럴 때마다 '내가 ** 대 출신인데 겨우 이런 일을 해야해?'하면서 불만을 터뜨립니다. 반대로 학벌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궂은 일도,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간판과 실제 실력간의 격차가 벌어집니다. 

종신고용의 시대에는 간판이 중요했지요. 첫 직장이 평생 직장이니까요.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여러 직장을 옮겨다니며 다양한 경력을 쌓으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대학 학벌로, 즉 10대의 공부 실력으로 인생의 승부가 끝나지 않아요. 100세 시대에는 20대의 공부, 30대의 경력이 중요합니다. 

'간판의 위력을 떨어뜨리자'는 장강명 작가의 결론에 저도 공감합니다. 왜 내가 뽑은 신입사원은 다 명문대를 나왔을까? 나중에 깨달았어요. 명문대만 뽑는 줄 알고 명문대생들만 지원한 거죠. 1년에 방송 3사에서 신입 PD를 다 뽑아도 10명 남짓인 거죠. 명문대 인문계열 졸업생만 해도 수천명인데 말이죠. 공중파의 벽이 높아서 미리 포기한 친구도 많을 겁니다. 요즘 저는 진로 특강 가면 방송사 공채 보다는 유튜브를 권합니다. 즐기면서 유튜브를 하는 게 머리 싸매고 시험 공부 하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즐기는 자를 당하지 못합니다.

명문대를 나와 방송사 피디로 입사하는 시대는 가고, 고졸 학력을 가진 대도서관이 유튜브 스타가 되는 시대가 왔어요. 공중파의 독과점은 무너지고, 유튜브의 시대가 왔어요. 이제 간판은 중요하지 않아요. 실력이 중요합니다. 간판에 주눅들지 말고, 실력으로 한 판 붙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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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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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벽부터 횡설수설 2019.03.11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2. 꿈트리숲 2019.03.11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0세 시대 재밌게 나이드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금요일 영화보면서 느꼈어요. 긴 인생에서 더 이상
    간판은 의미가 없는 듯 보입니다. 젊을 땐 간판
    때문에 위축되고 좌절도 많이 했는데요. 살아보니까
    간판 보다 더 중요한게 많더라구요.

    꾸준함이 능력이 되고 그것이 실력으로 빛을
    발하는 세상이 되면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금요일 '칠곡가시나들' 영화 아주 재밌게 잘 봤어요.
    김재환 감독님과 피디님의 열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블로그 후기로 저도 힘을 보탭니다.
    5월 8일까지 영화가 계속 롱런하기를 바라며. . .
    감사합니다.~~

  3. 코딩하는흑구 2019.03.11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판을 비판하자면 이나라 교육세태비판으로도 이어지고 노력의 결실을 부정하는거냐 뭐다의 공격이 많이들어올것입니다. 글 몇자로는 책의 주제를 명확히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명문대생이 좀더 성실한모습을 보이는건 맞는것 같습니다.

  4. 루나 2019.03.11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문대 간판이 있어도 취업이 어려운 요즘

    눈부시게 청춘들이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꼭 대학-> 대기업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삷을 산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5. WONI쌤 2019.03.11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문대는 사람을 판단하기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니, 시간의 효율성을 위해 대표값의 간판을 사용하는게 아닐까요??
    물론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요

  6. 섭섭이짱 2019.03.11 1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정말 요즘 유투브 시대라는걸 실감합니다.
    남녀노소부터 연예인들까지 모든 콘텐츠가
    유투브로 모이는거 같아요..
    예전 블로그 개설 붐이 불었을때와 똑같은 모습이 ...

    유투브판에서 스타가 되는것이 부럽기도 하지만
    이 판을 키운 구글이 더 부러운건....
    진즉에 구글 주식을 샀어야 ㅋㅋㅋ
    요즘 이런 플랫폼을 만들거나 키우는 회사에
    관심이 많네요. ^^

    피디님...
    지금이 다시 유투브를 시작할 절호의 타이밍이라고 봅니다..
    피디님의 그 재미난 콘텐츠를 영상으로도 만나고 싶어요..
    유투버 김민식의 공즐세(?) TV 보고 싶어용 ~~~~~~~

  7. 김수정 2019.03.11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의 긴 여정,
    10대때 성실히 암기한 성과로 이루어내는
    대학 간판도 중요하지만
    인성 간판, 행복 간판, 성실 간판 등등
    삶에는 학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나이듦에 따라 더 절실히 느낍니다.
    끊임없이 공부를 계속하면서
    내 삶을 가꾸어나가는 것도 중요하고요.

  8. 보리랑 2019.03.11 12: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구아들이 혼자 블록체인 공부해서 19살부터 외국에서 일하는데, 서울대 대학원생 과외해 준다네요. 이번에 그회사에서 블록체인을 묶는 시스템을 선보인답니다.

    우리나라는 인재채용에 아직 유연하지 못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했다고 봐야죠. 그래서 외국어 익히고 세상밖으로 나가라고 말해요~

  9. 아리아리짱 2019.03.11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어제 <칠곡 가시나들>관람하고 왔어요!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생각보다 적은 관객수에 많이 아쉬웠어요!

    나의 친구는 SKY 출신들이 나쁜짓은 더많이 하는 권력층이자 지배층인데, 이기적으로 공부만 하고 공부만 잘 해서 출세하면 다 용서되는 이상한 세상을 살아서 그렇대요!, 세상사나 인간적인 삶에 대한 공감대가 약해서 훌륭한 인격을 기대하기 힘들대요! ^^

  10. 은하수 2019.03.11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등학교 때는 책만 읽다가 고등학교 가서 성적이 팍 오르는 사람,
    내신 성적은 안좋아도 수능을 잘 보는 사람,
    연예인을 좋아해도 팬클럽 회장쯤은 하는 사람,
    게임을 해도 프로게이머가 되는 사람,
    공부는 못했다 하는데 자기 일에 성공한 사람...
    제가 맘속으로 진심 부러워하는 유형의 사람들이예요.

    pd님도 고3 전까진 공부 못했다 하시면서(ㅎ 죄송... 못한건 아니고 중간?) 한양대 공대에, 외대 동시통역대학원에, 방송국 pd에, 베스트셀러 작가까지.. 거기다 춤도ㅋ

    저는 지금부터라도 그런 삶을 살아보고 싶고,
    (그래서 영어회화 외우고 있고, 블로그 글 쓰고, 책 읽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도 명문대 학벌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미치도록 빠져 힘들어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pd님 예전 유튜브 영상 봤는데 참 좋아요. 귀엽기도 하시고ㅎㅎ. pd특강, 연애 특강 등ㅋ

    오늘도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11. 샬롬 2019.03.11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생 배우는 자세와 삶에 대한 열정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매일아침 써 봤니?” 를 통해 조금씩 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ㅎ
    -감사합니다

  12. 인풋팍팍 2019.03.11 14: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전히 편견과 뒤죽박죽 생각이 많은 저로써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같아요,.

    인간은 왜 남이 알려줘야 생각을 확장하게 될까요? ㅋㅋ
    오늘도 생각할 거리를 주셨네요^^

    (그나저나 저도 티 스토리에 가입해야겠어요 닉네임이 굵게 나오도록!)

  13. 쭈돌이아빠 2019.03.11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 보니 요즘은 연예인도 유튜브 시장에 뛰어 들더군요.
    예전엔 분명히 무시 했을 건데.
    다른 방송들은 검열이라는 제도가 있고, 또 그 제도 뿐만이 아니라
    다른 피디들이 알아서 미리 검열해서 시청자들에게 방송이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팟캐스트도 그렇고 유튜브도 내가 그냥 올리면 불법적이 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걸 보면 되는것 같습니다.
    오히려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겐 이런 제도가 더 나은것 같습니다.
    사전 검열을 하면 어찌됐든 그 한 사람에게 맞춰야 되고, 또 잘 보일 려고 아부나 다른 쪽으로 발달 된 사람이
    방송에 나오거나 발탁될 확율이 있으니까요.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14. 샘이깊은물 2019.03.11 2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 간판으로 계급사회를 만드는 현재 상황은 몹시 소모적인 것 같아요. 입시를 운전면허시험처럼 Pass/Fail 정도로 가르고, 대학에서는 원해서 택한 전공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러면 대학 관문 하나 넘었다고 우쭐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는 것에 보다 집중할 수 있을 텐데요. 너무 먼 이야기일까요...

  15. Livefree 2019.03.12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을 만나서 제인생이 조금은 바뀌었고 바뀌고 있습니다. Mbc파업으로 인해 알게된 피디님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이야.... 항상 동기부여받고 좋은책정보 받아가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피디님과 비할반 안되지만 받은게 감사하여 저도 주변에 좋은 기운을 주려고 노력하며 산답니다. 오늘도 팬들을 생각하며 더 힘찬하루 되세요!!

  16. 민정이 2019.03.12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숭례문학당에서 pd님 강의듣고 pd님팬이 되었습니다.
    오늘 세바시 2개강연듣고도 큰 감동받았구요^^
    항상 청중을 생각하시며 강의하시고 겸손의 미덕을 직접
    보여주셔서 진짜 좋았어요.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 읽어봐야지 리스트에만 올려놓았는데 pd님 글 읽고 하루빨리 읽어야겠습니다.
    블라인드채용에 명문대생만 지원했다는 해프닝^^
    그리고 유트브로 자기실력을 승부해보라는 말씀에서 늘 pd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말씀해주신다는 것을 또 한번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