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나의 연출 데뷔작은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인데, 신인 피디 시절 나는 당대 최고의 톱스타를 캐스팅하는 게 목표였다. 정우성을 섭외하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부장이 그랬다. “정우성이 시트콤에 나와서 망가지는 코믹 연기를 할까?” “제가 신인 피디다운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민식아, 정우성 집 앞에 가봐. 너처럼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피디들이 열 명 정도 무릎 꿇고 앉아 있을 거야. 넌 가면 줄 맨 끝에 가서 순서를 기다려야 해.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정우성도 10년 전에는 신인이던 시절이 있었어. 그때는 정우성이 프로필 들고 방송사 피디들마다 쫓아다녔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 피디로서 네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스타를 쫓아다닐 게 아니라, 10년 후 제2의 정우성이 될 신인을 찾아서 키우는 것이야.”
그 말씀을 듣고, 100여명의 남자 신인 프로필을 뒤지고, 20명을 불러 오디션을 봐서 최종적으로 뽑은 이가 조인성이었다. MBC 청춘 시트콤은 <남자셋 여자셋>부터 <논스톱> 시리즈까지 다 스타의 산실이다. 청춘 시트콤이 신인을 키우기에 유리한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매일 방송한다. 일일 시트콤이라 매일 TV에 나오고 심지어 주말에는 재미있는 방송분만 모아서 스페셜 재방까지 했다. 아무리 낯선 신인이라도 매일 나오니 시청자에게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가 쉬웠다. 둘째, 연속극이나 미니 시리즈에 출연하면, 연기 잘하는 기성 배우들 틈에서 신인은 미흡해 보인다. 청춘 시트콤에는 신인들만 나오니 비교 당하고 기죽을 일이 없다. 군기 잡는 선배도 없고, 까칠한 중견 배우도 없으니, 기 펴고 마음껏 자신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었다. 셋째, 신인 배우는 누구나 자신감이 부족하다. 촬영하면서도 ‘내가 잘 하고 있나?’ 생각이 자꾸 든다. 청춘 시트콤은 장르의 특성상, 편집할 때 동원 방청객들의 웃음소리를 넣는데, 이러한 리액션이 방송을 모니터하는 배우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연기하면서 나는 어색했는데, 사람들은 좋아하는구나.’하고.
2012년에 나는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파업에 앞장섰다가 징계를 3종 셋트로 받았다. 대기발령, 교육발령, 6개월 정직. 7년을 메인 연출을 맡기지 않아 유배지를 떠돌며 드라마 피디로서의 경력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하다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블로그가 곧 청춘시트콤 같은 작가의 신인 발굴 창구라는 생각에 블로그 활동을 시작했고, 신인을 키우는 3가지 전략을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봤다. 
첫째, 블로그를 하며 매일 아침마다 독자를 만났다. 영어 공부든, 운동이든, 글쓰기든, 무엇을 잘 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매일 연습하는 것.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며 부족한 필력을 갈고 닦았다. 둘째,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면 기가 죽는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 따위가 감히 책을 낼 수 있을까? 이럴 땐 시선을 블로그로 돌린다. 다양한 블로그가 뚜렷한 개성과 다양한 이야기로 인기를 끄는 걸 보고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 셋째, 동원방청객의 과도한 리액션도 신인 연기자에게는 긍정적 피드백이 되는 것을 보고,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서 좋은 리액션을 남발했다. 재미난 글을 보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 응원했다. 몇 년을 그렇게 했더니, 그분들이 내가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시더라.
일하는 게 쉽지 않은 시기지만, 힘들 때는 3가지만 기억하면 어떨까? 첫째,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매일 해 본다. 둘째, 너무 높은 곳을 보는 대신, 내 주위를 살피며 용기를 다진다. 셋째, 주변 사람들과 서로 응원을 주고받으며 힘이 되어준다.
이번 생에 잘생김은 과감히 포기했다. 죽었다 깨나도 조인성이 될 수는 없다. 스타 배우가 될 수는 없지만, 작가는 꿈꿀 수 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으니까. 내 글이 실린 신문을 받아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필자 소개 사진이 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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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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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어샬럿 2019.05.14 0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님 글을 몰래 봐 온 유령독자입니다. 영광스럽게도 오늘은 가장 첫 공감을 누른 주인공이 돼, 이왕 이렇게 된 거 댓글까지 남기는 용기(?)를 냈습니다.

    PD님의 뉴논스톱을 손꼽아 기다렸던 중학생이 어느덧 PD님 글을 읽으며 매일의 출근길에 힘을 얻는 사회인이 되었답니다. 재미 속에서도 울림을 주는 PD님의 '이야기'들에 언제나 감명 받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언젠가는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닿아 남겨봅니다. 좋은 이야기 덕에 오늘도 하루을 건너갈 동력을 얻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2. 꿈트리숲 2019.05.14 0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인성 되기 3종 세트!!!
    강의에서 말씀 하실때 조인성과 작가를
    연결하시는 독창성에 감탄했었어요.
    스타를 대하는 마음으로 나를 대하라는
    말씀, 바로 적용해서 실천 중입니다.
    1인 글쓰기 공간이어도 매일 출근해서
    글 남기고, 제가 공감 누르고요.
    블로그 이웃들과 댓글 보시 하면서 으쌰으쌰
    하고 있지요.

    사이버 공간에서 맺는 인연보다 실제 만남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저에겐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블로그 이웃도 정말 많은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서 배우고 이웃들에게
    배우고 배운 것을 제 블로그에서 나누고...
    리액션의 선순환이 매일 이루어지네요.

    매일 아침, 독자를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3. 아리아리짱 2019.05.14 0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PD님 아리아리!

    오늘 저 블로그 글이 3개월 초보블로거에 대한 소감이었어요. ^^
    피디님은 <공즐세>학당의 영원한 사부님이셔요!

    공즐세 학당의 행동강령 3가지 명심 하겠습니당~.

    첫째, 하고싶은 일이 있으면 매일 해본다.
    둘째, 너무 높은 곳을 보는 대신, 내주위를 살피며 용기를 얻는다.
    셋째, 주변 사람들과 서로 응원을 주고 받으며 힘이 되어 준다.

    아~! 댓글 달기부터 시작한 초보 블로그 글쓰기가 궁금하신 분은
    위의 아리아리짱 필명을 눌러보시면 방법이 보인답니다.
    (대 놓고 호객행위 ㅋㅋ)

  4. 아따맘 2019.05.14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D계의 조인성. ^^ 블로거계의 조인성.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데~
    오늘도 기운 얻고 갑니다. 먼저 다른이의 글이 좋아요를 누르면 부메랑 되어 돌아오네요. ^^

  5. 아솔 2019.05.14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언가를 잘 하는 방법은 매일 연습하는 것.
    잊고있던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 오달자 2019.05.14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을 만난 지 어언 두어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분명한 건 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책을 읽고 서평도 올리고 여행기도 쓰고 내 주변의 일상 이야기로 블로그를 채워가는 하루 하루가 소중한 삶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삶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해요

  7. 출입문 2019.05.14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낚인 기분이네요

  8. 루시아 2019.05.14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매일 해본다`란 말씀이 크게 와닿습니다. 잘하려면 많이 해보고 경험을 늘려야 한다고 쓰신 글이 생각나네요. 매일매일 나의 소중한 하루를 하고싶은 일을 하며 알차게 가득 채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깨달음을 주시기에 매일매일 피디님의 글을 읽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

  9. 김프로 2019.05.14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엄청 잘 생겼어요. 제가 팔로잉 할때 피디님 사진이 주윤발 인줄 알고 아무 내용도 모르고 들어갔어요..^^

  10. 2019.05.14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우남매대디 2019.05.14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약도 이것저것 먹다보면 탈이 나듯, 좋은 글도 많이 읽다보면 정작 실천의 의지를 잃는 것 같습니다. 세가지 간단 정리는 잘 이해가 됩니다. 결국 관심과 의지만 충만하다면 성과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부터 작은 리액션부터 실천해 봐야겠네요...

  12. 루치신 2019.05.14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일하다 힘들때 3가지 잘 읽었습니다 실천하도록하게습니다 감사합니다^^

  13. 클로드미 2019.05.14 1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저.. 매번 티스토리 댓글이 안 써져서..
    읽고만 갔는데 오늘 드디어 가입도 하고...ㅋㅋ
    댓글도 달수 있게 되었어요^^ 히힛

    저는 조인성 말고 송혜교가 되어 볼게요❤️

  14. 은하수 2019.05.14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학교 때까지 연예인은 *도 안싸는 줄 알았던 제가 수많은 스타를 배출하고 유명 톱스타와 일을 하시는 PD님의 블로그에 매일 들어오다뇨~~
    저도 오늘 하신 말씀 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매일 해본다' 가 가장 가슴에 와닿습니다. '매일 해본다...','해본다...'
    ' 하자, 해야 한다'가 아니라서 그럴까요~ 마음에 스며드는 말씀입니다.

  15. 섭섭이짱 2019.05.15 0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기사로 이미 읽었지만 또 읽어도 좋네용
    특히 세번째가 왜 이리 맘에 꼭 드는지 ^^

    댓글 혼자 달고 즐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다니
    뭔가 여러 감정이 드네요..

    근데 피디님 인기로 보면 제목 바꿔도 될거 같은데요.

    “김민식이 되는 법”

  16. 최수정 2019.05.15 0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으로 인해 조인성이라는 배우도 MBC도 또 책까지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

  17. 뽀로로 2019.05.15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김민식님처럼 살고싶어요~감사합니다~

  18. 마켓잉 2019.05.15 1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겨레에서 기사 읽고 글이 좋아 블로그에 찾아왔습니다.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