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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시트콤의 명가, MBC

by 김민식pd 2011. 10. 31.

(올해 MBC 공채 공고가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MBC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많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시트콤이다. 만약 여러분이 시트콤 연출가가 되고 싶다면, 선택은 오로지 MBC뿐이다. 몇년전 시트콤 연출가로서 쓴 글이 있어 다시 올린다. 시트콤 PD를 꿈꾸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예전에 '뉴논스톱’을 연출할 때, 저녁 무렵 시립 도서관을 찾은 적이 있다. 2층에 있는 휴게실에 앉아있는데, 저녁 7시가 되자 하나 둘 중고생 아이들이 TV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당연한 듯 채널은 11번에 고정되어 있고... 논스톱이 시작되자 서로 낯모르는 아이들이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고, 함께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논스톱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은 뿔뿔이 열람실로 흩어졌다. 청춘 시트콤을 만들면서 그때만큼 큰 보람을 느낀 때는 없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학원 수업이나 과외 교습을 앞둔 아이들에게 7시에 방송되는 논스톱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나무 그늘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 내가 만든 청춘 시트콤이 입시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는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청량제 같은 거구나.

 


매일 저녁마다 찾아오는, 만나서 반가운 친구, MBC 시트콤이 방송된지도 어언 15년이다. 96년 첫 방송된 ‘남자 셋 여자 셋’ 이후, ‘논스톱’ 시리즈를 거쳐 지금의 '하이킥' 시리즈까지... 이제 MBC 일일시트콤은 다른 채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MBC만의 대표 브랜드다.
 

15년간 시청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길들여온 MBC 시트콤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예전에 영화 주간지에서 ‘논스톱 시리즈, 그 얄팍한 매력에 대하여’라는 특집 기사를 실으며, “무의미해 보이는 일화, 비현실적인 공간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캐릭터들이 모여 자잘한 재미를 일구어낸 한국적 소장르”라는 평가를 읽은 적이 있다.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아리송한 문구이지만 이 글은 ‘깃털보다 가벼운’ 시트콤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매체 비평에서 청춘시트콤을 다룰 때, 젊은 대학생들의 사회 의식이나 고민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시트콤 제작진의 생각은 다르다. 우린 방송 30분 동안만큼은 세상 만사 잊고 가볍게 웃어보자고 시트콤을 만든다. 바쁜 세상 살다보면 때론 가벼운 여유도 필요한 법이니까.

애들이나 보는 가볍기만 한 장르 같지만, 사실 방송 기여도에 있어서 시트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본격적인 TV 시청이 시작되는 초저녁, 처음 손님을 맞는 역할로서 시트콤 만한 효자가 없다. 월, 화, 수, 목, 금, 고른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또 높은 시청률로 저녁 편성의 문을 열기에 MBC의 든든한 수문장 역할을 한다. 요즘의 하이킥 시리즈 3탄 역시 MBC 평일 편성의 핵심이다. 1주일 내내 고른 시청률을 기록해주는 고정 프로그램은 채널의 수문장 노릇을 겸한 든든한 효자다. 새로 출범하는 종편에서 시트콤을 다수 시도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그뿐인가, 시트콤은 기특하게도 대중 문화 전반에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는 신상품 개발의 주역이다. 지난 10여년간 MBC 시트콤이 배출해낸 스타들의 면면들을 살펴 보라. 송승헌, 소지섭, 조인성, 현빈 등등... 시트콤이 아니라면 누가 스타등용문의 역할을 할 것인가? 

한때는 방송 3사에서 경쟁적으로 일일 시트콤을 양산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시트콤을 드라마의 하위 장르 정도로 생각하고, 적은 제작비와 안이한 캐스팅으로 쉽게 덤볐다가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조기 종영하는 케이스가 허다했다. 이제는 경쟁사의 일일 시트콤이 자취를 감추고, MBC 시트콤만의 독주가 계속되는데, 이는 시트콤 하나를 성공시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MBC 시트콤의 성공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많은 드라마들이 김수현 표 드라마, 임성한 표 드라마로 불리며, 작가의 이름으로 정의될 때, 정작 시트콤만은 송창의 표 시트콤, 김병욱 표 시트콤, 즉 연출가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그만큼 시트콤은 연출가의 역량이 중요한 장르이다. 매주 다섯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어야하는 청춘 시트콤의 경우, PD 한 사람이 10여명의 작가와 함께 회의하며 대본을 만드는 집단 창작 시스템이다. 이 경우 다양한 작가들의 개성을 아우르고, 균질한 다섯 개의 대본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전적으로 연출가의 몫이다.

적시 적소에서 사람을 웃기는 코미디와 시청 흡인력이 강한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 즉 코미디와 드라마를 25분의 완결된 이야기 속에 하나로 녹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다 낯선 신인들을 모아 친근한 캐릭터로 만들어 가는 과정까지 더해진다면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드라마 연출 경력이나 대본 작성 경험이 없는 쇼 코미디 연출가들이 완성도 있는 시트콤 대본을 만들어내는 비결은? 다양한 실험에서 기인한 경험의 힘이다. ‘남셋 여셋’과 ‘세친구’를 히트시킨 시트콤 계의 명장 송창의 PD의 경우, 이미 이전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연출하면서 ‘이휘재의 인생극장’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논스톱 시리즈를 이끈 권익준 PD의 경우, ‘테마 게임’으로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저력있는 코미디 연출가이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코믹 드라마를 구성한 경험, 슬랩스틱 코미디에 익숙한 개그맨들을 데려다 짜임새 있는 극의 구성을 만든 경험... 쇼와 코미디를 드라마에 접목시킨 MBC 코미디 PD들의 다양한 실험과 그 성공의 노하우가 지금의 시트콤 왕국을 건설하게된 초석이 된 것이다. 여기에 SBS에서 순풍 산부인과에 이어 똑바로 살아라 등을 히트시킨 김병욱 PD까지 고향에 돌아와 라인업을 담당하고 있으니, 가히 MBC는 시트콤의 명가라 할 수 있다. (김병욱 PD는 MBC 라디오 PD로 일하다, SBS 개국 당시 TV PD로 전업한 바 있다.)

시트콤의 매력이란 무엇일까? 매일 저녁 찾아오는 친근한 친구, 바쁘고 고된 일상에서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청량제 같은 친구같은거다. 연출가로서뿐 아니라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도 난 MBC에서 시트콤이 끝나는 날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얄팍하고 가벼운 매력이라도, 그런 친구 하나 있는 것만으로 삶은 훨씬 여유로울테니까.


시트콤 PD를 꿈꾸는가? 그럼 그대의 선택은 MBC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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