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제목이 <공짜로 즐기는 세상>입니다. 저는 나이 스물에 서울 생활을 하며 심하게 좌절했어요. 이곳에는 내게 없는 것이 너무 많더군요. 입주과외를 하는 내게 나만의 공간이 없었고 (고1이던 주인집 아들 방에서 함께 생활했어요.) 자원공학과에서 석탄채굴학을 공부하는 내게 나만의 꿈이 없었어요. (탄광에 가기엔 이미 너무 까만 내 얼굴... ㅠㅠ) 그래서 결심했지요. 어차피 돈을 벌 수 없다면,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인생을 찾아보겠다고.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인생의 낙을 찾았는데요. 다행히 그 꿈은 나이 50이 넘도록 바뀌지 않았어요. 지금도 드라마를 연출하고는 있지만, 대박을 내어 프리 선언을 하겠다거나 하는 욕심은 없어요. 그저 오래도록 책을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 싶어요.
최민석 작가의 책 <꽈배기의 맛>을 읽다 심하게 공감해버린 대목이 있어요.
나는 데뷔하기 전부터 작가로서 인정을 받아야겠다거나, 책을 많이 팔아야겠다는 욕구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말을 빌리자면,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고, 멋진 생활을 바라지도 않았다." 당시의 나는 내 페이스대로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돈만 있다면 충분했다고 생각했다(물론, 지금도 이 생각엔 큰 변함이 없다). 다만, 생계를 위해서는 책이 어느 정도는 팔려야겠고, 그 수준을 위해서 열심히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쩌다 보니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가장 기뻤던 것은 이른 아침에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내가 원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그뿐이었다.
내 생각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을 통해 쏟아지고, 그것들이 하얀 모니터를 까맣게 채워가는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썼고,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다음 날을 위해 더 일찍 잤다. 내가 내 생활의 리듬을 통제하고, 내 하루의 주인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흥분시켰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나를 가장 벅차게 했던 것은 내게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잔뜩 있다는 것과, 때로는 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일 손가락을 너그럽게 받아줄 노트북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위의 책 80쪽)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싶은 충동을 몇번 느끼긴 했지만 지금은 안 내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이젠 책도 읽고, 드라마도 만들 수 있어요.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독서가 준 치유의 힘으로 버틴 덕분이지요.
최민석 작가님이 느꼈을 그 설레임과 벅참을 감히 제가 느낄 수는 없겠지만, 저도 비슷한 설렘이 있어요. 좋은 글을 만났을 때, 책을 펼쳐놓고 그 글을 한 자 한 자 블로그에 옮겨적는 순간이 그래요. 요즘처럼 드라마 만들 때는 글을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저는 특히 일상 생활에서 글의 소재를 찾기 때문에 더 그래요. 나의 글을 쓸 수 없을 때, 좋은 글을 읽고 받아쓰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글에 대한 갈증은 풀리고요. 주먹 불끈 쥐게 되지요. 언젠가는, 언젠가는, 나도 이렇게 가슴 설레는 글을 써보겠어! 그날이 당장 오지는 않을 테니, 오늘은 일단 필사적으로 필사하는 걸로...
<꽈배기의 맛> 읽다보면, 글쓰기의 재미를 알아버린 작가님 덕분에 책읽기의 재미가 소록소록 솟습니다. 이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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