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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어느 불량품의 행복한 고민

by 김민식pd 2018. 4. 2.

올해 초에 낸 <매일 아침 써봤니?>의 한 대목입니다. 


친구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드라마 PD는 시청률이 대박나면 월급 더 받는 거니?” 

“아니.” 

급여가 성과연동제가 아니라면 사기 진작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걱정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얘기해줍니다. 

“시청률 더 나와서 월급 더 받아야한다는 건 시청률이 낮을 때 월급을 깎아도 좋다는 얘기거든? 창의력이 중요한 조직에서 시청률과 급여를 연동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급여체계가 아니란다.” 

“네가 시청률 올릴 자신이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고?” 

친구들의 이런 반응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임승수 선생님의 강연에서 들은 ‘버팔로 잡는 인디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버팔로 사냥으로 먹고 사는 100명의 인디언 마을이 있었어요. 그 마을에서는 모두가 창을 하나씩 들고나가 버팔로를 잡아서 먹고 삽니다. 100명이 버팔로를 몰아서 다 같이 창을 던지면, 3~4개의 창이 버팔로를 맞히고 그래서 잡은 고기를 100명이 나눠먹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디언 하나가 나서서 이렇게 얘기하지요. “매번 버팔로를 맞히는 건 난데 왜 내가 너희들이랑 고기를 나눠먹어야 하지? 이건 불공평하잖아. 야, 안되겠다. 지금부터 다들 창에 각자 이름 써. 그래서 버팔로에 꽂힌 창에 이름 적힌 사람만 고기 먹기.”

자, 이제 새로운 보상 체계를 적용시켜 사냥에 나갑니다. 버팔로를 맞힌 사람은 배 터져라 먹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쫄쫄 굶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그동안 버팔로를 한 번도 맞히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100명이던 마을 사람은 70명이 되고, 다시 한 달이 지나면 50명이 됩니다. 50명이 사냥을 나가면 예전처럼 버팔로를 몰기도 어려워지고 창을 던져도 한두 개 맞은 버팔로는 그냥 달아나버립니다. 결국 마을 사람 전원이 굶어죽게 되지요.

드라마 PD도 버팔로를 잡는 인디언이에요. 때로는 맞힐 때도 있고, 놓칠 때도 있어요. 중요한건 그럼에도 사냥에 나가 창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프로그램 성과가 좋지 않다고 연출에서 아예 배제하는 건, 실패의 경험에서 배워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입니다. 어린 후배들이 보기에도 그렇지요. 인생이 살아볼만 하다고 느끼는 건 극적인 역전도 가능할 때입니다. 좀 빌빌하던 선배도 자신에게 딱 맞는 기획을 만나면 펄펄 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어린 후배들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내쳐지고 성공도 반복하는 사람만이 기회를 얻는 세상이라면, 그런 정글에서 과연 누가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요. 승자도 패자도 다 같이 불안한 세상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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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는 2012년 어느 대학에서 열린 강연에서 들었어요. 이 이야기를 드라마 후배들에게 종종 해줍니다. 어느 후배 카톡 프로필에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버팔로를 맞히는 인디언이 되자'

^^

저는 저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어요. 버팔로를 잡는 데 목숨 거는 사냥꾼이 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사냥이 더 즐거워질 수 있는가, 그걸 고민하는 인디언이 되자고. 팔힘이 세고, 용기가 있어, 버팔로의 앞길을 막아서는 전사도 필요하겠지만, 공정하게 사냥감을 나눠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마을의 노인도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 몇년 저는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올릴까를 고민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시청률을 올리고 스타 피디가 되면 행복은 따라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저는 기왕이면 혼자 즐겁고 마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다같이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스타 피디가 되지 않아도, 굳이 세속적인 성공을 하지 않아도, 저는 행복하다고 믿습니다. 술 담배 커피 골프를 즐겨서 행복한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제게 이런 가르침을 주신 분이 바로 임승수 선생님입니다. 

임승수 선생님의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에 예약판매를 주문했어요.

(아래는 예스24 예약판매 페이지입니다.)

 http://www.yes24.com/24/goods/59508109?scode=032&OzSrank=2


두근 두근 설레는 마음 가득합니다. 

읽지도 않은 책을 감히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제게 글쓰기와 세상을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이십니다. 예약판매 매진을 향해 달려봅니다!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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