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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누구를 모실 것인가?

by 김민식pd 2018. 7. 18.

몇 달 전, 강원국 선생님의 강연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평생 높은 분들을 모시며 살았습니다. 대우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일하고, 청와대에서 일했지요. 그 덕에 <회장님의 글쓰기>나 <대통령의 글쓰기>를 쓸 수 있었고요. 

높은 분을 잘 모시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강원국 선생님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셨어요. 어린 시절에 외가 친척들의 집을 떠돌며 자랐답니다. 큰 외삼촌, 작은 외삼촌, 이모 등등. 남의 집에서 자라는 아이는 밥상에 맛난 음식이 올라와도 절대 먼저 먹는 법이 없답니다. 조카나 사촌들, 그 집 아이들이 먹고 남은 것을 먹는 게 얹혀 사는 요령이랍니다. 그 덕에 타인의 눈치를 잘 살피는 사람이 되었는데요. 조직에서는 눈치 빠른 사람이 출세한답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잘 살피는 거지요. 회장 비서실에 가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래요. 회장님들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난 돈 욕심이 없다."

이런 말씀을 듣고, '아, 우리 회장님은 돈 욕심이 없구나.'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비서를 하면 안 된답니다. ^^ 눈치 없는 사람입니다. '아, 우리 회장님이 돈을 진짜 좋아하시는구나.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그걸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이렇게 행간을 읽고 맥락을 읽는 사람이 회장님의 연설문을 쓸 수 있습니다. 돈 이야기를 드러내고 하지는 않지만, 회장님의 욕망에 충실한 글을 써낼 수 있지요.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에 빙의된 삶이라고 하셨어요. 대통령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거든요. 

높은 분을 모시는 사람이 각오해야 할 게 있습니다. 높은 스트레스지요. 강박증세, 공황장애, 우울증 등의 질병에 취약해진다고 하시는군요. 조직의 리더는 일벌레인 경우가 많고요, 기준이 높은 분들이에요. 잘 모시기 쉽지 않아요.

높은 사람을 잘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강원국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시는 분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 내가 저 사람을 좀 도와야겠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그 사람의 손과 발이 되어 열심히 일할 수 있거든요."

정말 공감합니다. 드라마 촬영장에 나가면 제가 모시는 분들이 많아요. 작가님도 모시고, 배우들도 모시고, 시청자도 모십니다. 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작가를 좋아해야, 대본을 더 열심히 보게 되고요, 배우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더 예쁘고 찍기 위해 공을 들입니다. 시청자에 대한 고마움이 있어야 더 열심히 만들게 되고요

높은 분을 잘 모시려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상사나 사장으로 모셔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 모셔야 할 분은 누구일까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가장 열심히 모시며 삽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딴따라의 삶을 살지요.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가고 싶은 곳, 다 즐기며 삽니다. 내가 나의 주인님이니까요. 어떻게 하면 나를 잘 모실 수 있을까요? 내가 나답게 살아야합니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새 책을 기다려왔습니다. 이번에 새로나온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고 있습니다. 나다운 글을 쓰는 요령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인데요, 이번 책에서 선생님이 모시는 분들은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입니다.


'1,000회가 넘는 강연을 하면서 글쓰기로 고통 받는 이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게 생겼다.

오랜 기간 암중모색과 고군분투 과정을 거쳐 얻은 나의 글쓰기 방법론이다.

강의로 글쓰기를 가르칠 수는 없다. 글쓰기 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글 쓸 용기와 자신감, 쓰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켜줄 뿐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글쓰기가 두렵지 않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하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나아가 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기를 기대한다.

쓰느라 힘들었다. 이제 당신이 읽느라 고생할 차례다.'

(위의 책, 저자 서문 중에서)


책을 읽다가 혼났어요. 글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 드라마가 끝나면 휴가고 자시고 틀어박혀 글만 쓰고 싶어요. 노트북 옆에 이 책을 고이 모셔두고요.  

'세상에 하나뿐인 김민식의 글쓰기'를 위하여. 

가장 잘 모시고 싶은 나 자신을 위하여.


글쓰기에 대해 오랜 세월 고민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글쓰기가 더욱 즐거워질 것 같습니다. 글을 쓰는 선생님의 고민이, 책을 읽는 저의 즐거움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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