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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독일과 스페인의 격차는 어디서 왔을까?

by 김민식pd 2017. 5. 2.

세렝게티 사파리 여행 중 만난 독일인 친구 사샤는 좋은 여행 친구였어요. 20대 후반의 프로 포커 플레이어인데 언어 감각도 뛰어나요. 스페인어를 곧잘 하는 그에게 누가 물어요. 혹시 스페인 사람이냐고.

 

“Oh, no. Thank God.”

스페인사람이냐고? 천만에! 하느님께 감사한 일이지.

 

그의 반응에서 요즘의 경제 상황에 대해, 독일인이 느끼는 자부심과 스페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동시에 읽을 수 있었어요.

 

몇 년 전 온 가족이 함께 스페인 이탈리아 여행을 갔어요. (늘 혼자 다니는 건 아니랍니다. ^^)  바르셀로나에서 자동차를 빌려 렌트카 여행을 했어요. 알함브라 궁전과 코르도바 대성당이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달렸어요. 스페인의 남부 지역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올리브 나무와 오렌지 나무가 길 옆을 수놓고, 이슬람 건축 양식의 가장 아름다운 보물들이 이곳에 있어요.

스페인을 돌아본 후, 이탈리아 로마로 향했습니다. 로마 시대의 찬란한 영광을 볼 수 있는 콜롯세움과 포로 로마노, 그리고 바티칸 성당을 돌아보았지요. 남부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이곳이 과거에 엄청난 부를 자랑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요. 지금은 PIGS라는 약칭으로 (Portugal, Italy, Greece, Spain) 국가 재정 파탄의 대표적인 나라로 호도되고 있지만 과거에 이곳은 세계를 호령하는 경제 대국이었어요.

 

로마 병사들과 게르만 현지인들의 전쟁을 그린 영화를 보면, 로마 보병과 기병은 몸에 튜닉과 갑옷을 걸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현지 게르만 인들은 짐승 가죽과 털옷을 걸치고 야만인처럼 싸웁니다. 과거에 로마인들은 거대한 도시 문명을 일군 문명인이고, 북유럽 사람들은 기껏해야 약탈이나 하던 바이킹이거나 수렵 채취로 근근이 살아가는 야만족이었어요.

수렵 채취로 살던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농업의 특징은 잉여 농산물이 축적이 되고, 한데 모여 살면서 도시 문명을 쉽게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 수렵 채취로 살아가려면 널리 퍼져야 유리합니다. 한 곳에 모여 있으면 동물과 식물은 모두 씨가 마를 테니까요. 무엇보다 잉여 생산물의 보관이 쉽지 않아요. 고기는 쉽게 썩지만 밀이나 보리는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어요. 식량의 보관과 축적이 용이하기에 세금을 걷고 군대를 기르기가 쉽습니다. 남부 유럽의 온화한 기후를 바탕으로 농경 산업이 발달하고 그 결과 로마 제국이 번성하게 됩니다.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발달한 지중해 문명은 사시사철 따듯한 남부유럽을 중심으로 그 세력권을 키워갑니다. 수렵 채취민과 농경민족의 싸움은 일방적인 농경민족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북유럽에서도 남부 유럽의 농업을 배워 쫓아가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겨울이면 작물이 다 얼어 죽는데. 이렇게 추운 곳에서 농사를 짓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가내수공업을 합니다. 추운 스위스에서는 골방에 틀어박혀 시계를 조립합니다.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인쇄업이나 직물 기계 공업이 발달한 이유는 추운 바깥에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실내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편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남부 유럽은 농업이 발달하고 북부 유럽은 공업이 발달합니다.

유럽을 처음 간 건 1992년이었어요. 2013년 이탈리아 스페인 여행할 때, 길가에 줄지어 선 올리브와 오렌지 나무가 인상적이었다면 1992년 독일과 스위스를 여행할 때는 라인 강변에 늘어선 공장들이 인상적이었어요. 20년 전에 저는 북유럽과 남유럽의 경제적 격차를 별로 느끼지 못했어요. 나라를 옮길 때마다 도이치 마르크에서 이탈리아 리라 화로 환전하는 게 번거롭다고 느낄 뿐이었지요. 각 나라의 물가나 경제적 분위기는 지금 같은 큰 차이가 없었어요. 그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유럽 연합의 출범으로 유럽 시장이 단일화한 다음입니다.

세계화로 무역 장벽이 사라지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유럽 전역이 하나의 시장이 됩니다. , 이제 남부 농산물과 북부의 공산물을 바꾼다고 생각해봅시다. 농산물과 공산물 중 저장과 수송이 용이한 것은 공산물입니다. 농산물은 반경 100킬로 안에서 난 것을 더 선호하지만, (더 신선하고 더 익숙한 맛이니까요.) 자동차나 공산품은 굳이 산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독일제가, 시계는 스위스제가 더 좋으니까요.)

이렇듯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공에는 환경과 운의 영향이 큽니다. 독일인이 근면 성실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남부 유럽 사람의 천성이 게으르거나 나태한 건 아니에요. 8월에 스페인을 여행하면 시에스타(낮잠)’ 문화를 이제 이해할 수 있어요. 저 역시 탄자니아 여행 기간에는 낮잠을 즐겼습니다. 푹푹 찌는 한낮에는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고 생산성도 떨어지거든요.

 

한국에서는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지난 몇 십 년간 경제적 혜택을 누렸어요. 취업이나 승진에 있어 유리했거든요. 이는 영어를 잘 하는 것이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운 좋게도 그 시기에 세계화의 물결이 닥친 겁니다. 무역 규모가 커지고, 수출을 통해 국민 소득을 키웠어요. 자연스럽게 영어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경쟁력이 된 거지요.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까요? 다가올 시절, 세계화 못지않게 큰 변화가 인공지능이 가져올 기술의 발달입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빈부격차는 더 심해집니다. 자동화된 생산시설을 독점한 기업가와 일터에서 쫓겨나는 노동자 사이 간극이 벌어지거든요. 영어를 공부한다고 좁힐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특정한 기술을 배우는 것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4차 산업 혁명의 시대에 어떤 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함부로 예상하기도 힘들거든요.

 

'미래에 일자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음엔 선대인의 <일의 미래: 무엇이 바뀌로 무엇이 오는가>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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