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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허하라

by 김민식pd 2017. 5. 22.

2012MBC가 파업할 때 일입니다. 당시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저는 명동 예술 회관 앞에 선전 활동을 나갔어요.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파업 지지 서명도 받았어요. 그때 지나가던 20대 후반의 청년이 소리를 질렀어요.

당신들은, 그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그 좋은 일을 박차고 나와서 지금 뭐하는 겁니까?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함부로 낭비하고 있잖아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모든 시민이 MBC 노동조합의 파업을 찬성하지는 않겠지만, 20대 청년이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표현하는 건 또 의외였어요.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MBC,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외치던 제가 순간 머쓱해졌어요.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오준호/개마고원)에서 우리 시대 증오가 생기는 이유가 나옵니다. 20세기는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인종과 이념의 차이로 죽고 죽이던 비극적 시대였지요. 인류가 진보하면서 전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요,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이제는 내부를 향한 증오가 꿈틀거립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그 증오가 이주노동자를 향합니다. 가장 쉬운 분노의 대상이니까요. 나의 실업과 나의 가난에 대한 원인을 생김새도 다르고 태어난 나라도 다른 이주 노동자에게서 찾습니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트럼프와 브렉시트예요.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서비스 산업 등 생활의 영역까지 이주 노동자가 밀고 들어오지만, 한국의 경우 저임금 3D 업종에 종사합니다. 그들을 굳이 질투할 이유가 없어요.

결국 취업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의 분노는 중장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향합니다. 교육 격차 해소를 외치는 전교조, 방송 공영성 확보를 요구하는 언론노조, 공익을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을 철밥통들의 집단 이익 추구 행위로 매도합니다.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청년들은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하고 비난합니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언론 기사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연령과 성별 통계를 제공하는데, 세월호나 여성 관련 이슈에 악의적인 댓글을 다는 이들은 대체로 20~30대 남성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유족충’ ‘시체 장사운운하는 것이나, 젊은 여성을 김치녀’ ‘된장녀라고 혐오하는 것 역시 청년들, 특히 남성 청년들이 갖고 있는 길 잃은 분노의 표출이다. 그런데 길 잃은 분노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이 있다. 증오의 확산을 막으려면, 심화되는 삶의 불안정성을 어떻게든 해소해내야만 한다.’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오준호 / 개마고원) 63)

 

제 나이가 이제 50인데요, 만약 이 나이에 인생이 불행하다면, 그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어요. 잘못된 진로나, 투자 선택 등. 하지만 20대는 아직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볼 기회조차 없었어요. 부모님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 스펙을 쌓았는데,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가고, 기술 발달로 실업률이 높아진 탓에 취업이 안 된다면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년들이 더 이상 분노와 혐오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깎아주고, 일하는 청년들을 위해 최저 임금을 인상하고, 취업의 문을 확대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돈을 나눠주는 것도 좋은 정책입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청년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돈을 주면, 그 돈으로 본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을 할 거예요.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를, 창업을 하고 싶은 사람은 창업을,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기초 생활을 영위하는데 그 돈을 쓸 거예요. 학자금이나 창업 자금, 주거비 지원, 모두 좋은 제도이지만, 청년을 위한, 가장 인간적인 제도는 청년 수당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니까요.

성남시의 청년배당이나 서울시의 청년수당처럼 좋은 제도들이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되기를 소망합니다. 청년들이 사회적 약자를 향한 분노와 혐오를 키우는 대신, 공감과 연대 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어른이 나서야 합니다. 나라살림의 소중함, 공공복지의 고마움을 느낄 때, 청춘들의 삶에도 희망이 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뉴스타파'에 올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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