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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왕따도 즐거운 세상

by 김민식pd 2016. 9. 13.

원래 내가 생각한 블로그 이름은 '왕따도 즐거운 세상'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제목의 책을 쓸 생각이었어요. 저는 고교 시절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습니다. 왕따의 삶은 개미지옥이에요. 뭘 해도 아이들이 놀립니다. 같이 놀다가 실수를 하면 "야, 찐따가 금 밟았다!" (영화 '우리들'을 보며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우리들' 영화 참 좋아요. 추석 연휴에 찾아보셔도 좋을듯. 연출이 그냥 예술입니다~ 동료 드라마 피디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어요.)

놀다가 술래가 되면 "야, 찐따가 술래다." 누군가 잡으면 "야, 찐따가 반칙했다!" 결국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포기하고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야, 책벌레다, 책벌레!" 뭘해도 아이들이 놀리니까 차라리 편해지더군요. '그래, 어차피 니들이 나랑 놀아주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잘 놀아야지 뭐.' 그러다보니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딴따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따돌림을 주도했던 녀석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 친구들 덕에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것. 다른 이의 시선보다 자신의 기준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귀한 가르침을 그 어린 나이에 얻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책으로 써서 어린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왕따도 즐거운 세상' 그런데 아내가 반대하고 나섰어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아빠가 왕따였다고 소문이 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겠느냐고. "야, 니네 아빠 찐따라며? 그럼 너는 찐따 딸이냐?" 전 처음에 아내의 반대가 농담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지하더군요. 절대 그런 책을 쓰면 안 된다고. 그때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아, 저것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구나. 기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불안함. 남에게 밑보일 빌미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불안감.' 결국 블로그 제목을 바꿨어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 운율은 맞췄지요. 소심한 반항. ^^ 

(이 제목대로 첫 책을 냈더니 그때 마누라는 또 이러더군요. "아니, 책 제목을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고 지으면 누가 돈 주고 그 책을 사겠어?" 아니, 도대체 어쩌라고! ㅋㅋㅋ)

문유석 판사님이 쓴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런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바람은 그리 커다란 욕망이 아닐 것이나, 이만큼을 바라기에도 한국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문화 풍토는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도록 하면서도 눈치껏 튀지 않고 적당히 살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사회생활"이라 여긴다. 조직 또는 관계로 얽히고설킨 것이기에 그런 풍토로부터 웬만해서는 쉽사리 벗어나기조차 어렵다. 그러하기에 한국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책 소개 글)

 

어린 시절 왕따를 겪은 후, 저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나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요즘 저는 은둔자의 삶을 삽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책을 읽고 길을 걷고 글을 씁니다. 한창 육아의 재미에 빠져있는 터라, 야근하는 날을 빼면 저녁 약속을 잡지도 않아요. 술 담배 커피 골프를 하지 않기에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어요. 이렇게 살다 가고 싶어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추석은 민족의 명절이지만 어떤 분들에겐 스트레스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온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 탓이지요. 오랜만에 만난 친척도 관심과 애정을 빙자하여 묻습니다. "그래서 너는 반에서 몇 등 하니?" "직장은 어디에 갈 생각이냐?" "만나는 사람은 있고?" "결혼했으니 어서 집 장만해야지, 언제까지 월세 살 거니?" "애는 안 낳고?" 마음먹고 열심히 한다고 성적이 오르지도 않고 (다 열심히 하니까요.)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저성장 시대니까요.) 연애와 결혼 출산 그 어느 것하나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그냥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버렸네요.) 그런데도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만 긍정하며 사는 분들 탓에 즐거워야할 명절이 괴로운 일상이 되기도 합니다.

다 애정에서 하는 말이려니, 웃는 낯으로 씨익 웃어주시고, 돌아서서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다음 추석에는 그냥 혼자 외국으로 배낭 여행을 떠나세요. 조상 차례도 안 지내는 불쌍놈이라는 소리 들어도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자기 인생만 잘 살면 됩니다. 나 한 몸도 챙기기도 버거운데 가족과 조상과 국가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왕따도 즐거운 세상입니다. 아니, 오히려 왕따가 더 즐거워요. 세상의 이목을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까. 작년 추석, 아버지를 모시고 3주간 뉴욕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조상님에 대한 감사는, 자손이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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