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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백수는 미래다

by 김민식pd 2016. 7. 14.

2016-166 바보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니까 (고미숙 / 북드라망)

 

제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감히 그 분들을 스승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들의 책을 감명 깊게 읽고, 강연을 찾아 듣고, '앞으로 스승의 가르침대로 인생을 살아보리라.' 결심했기 때문이죠. 고미숙 선생님도 저의 사부님 중 한 분입니다. 일단 사부로 모시면, 그 분의 책은 다 찾아 읽습니다. 스승님이 새 책을 내셨다기에 얼른 구매버튼을 눌렀습니다. 

어둠의 시대, 사는 게 힘들수록 스승님의 지혜는 빛을 발합니다. 

 

'대학의 몰락, 청년백수, 저출산 등을 떠올리면 참으로 암울하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 법.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의 지성은 실종됐지만, 지성 자체는 전 인류적으로 해방되었다. 인류가 지금까지 터득한 모든 지식과 정보는 다 스마트폰 안에 들어있다. 경전을 얻기 위해 십만 팔천 리를 갈 필요도, 머나먼 이국땅으로 유학을 떠날 필요도 없다. 어디 그뿐인가. 누구든 유튜브를 통해 세계 최고의 지성인과 직접! 대면할 수도 있다. 바야흐로 '대중지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위의 책 135쪽)

 

제가 이 나이에 스승을 찾는 것은, 어려서 공부를 잘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공계를 나왔지만 항상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문학 역사 철학, 이런 과목을 배우고 싶었지만, 엉뚱하게 공업수학, 암석역학, 석탄채굴학을 배웠지요. 직장 생활을 하며 야간 대학원을 다닐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일이 바빠 정규 수업을 다닐 짬이 없군요. 그래서 다시 돌아보니 예전에는 대학에서 활약하던 인문학의 고수들이 요즘은 재야에 출몰합니다. 고미숙, 강신주, 법륜 스님 등등. 굳이 학교를 갈 필요가 있을까. 짬날 때마다 책을 읽고, 이 분들의 강연이나 세미나를 찾아다니면 되지. 그런 생각에 그 분들의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이 뇌졸중과 암, 치매 등일 것이다. 그걸 예방하기 위한 최고의 방편도 책을 읽고 언어를 배우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인복지의 핵심은 양로원이 아니라 도서관이나 평생 아카데미가 되어야 한다.'

(위의 책 206쪽)

 

제가 꿈꾸는 삶입니다. 매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고, 산을 오르는 것.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고 악기를 새로 배우는 것이 치매 예방에 좋답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삶을 확실히 윤택하게 해주는 공부임에 틀림없습니다.

스승의 글을 오래 읽다보니, 이제 스승의 글이 내 생각인지, 내 말이 스승의 생각인지 헷갈립니다. 종장의 제목부터 확 와닿아요.

'백수는 미래다.'

저는 그동안 '알파고의 시대, 노는 인간이 되자'고 주장했어요. 고미숙 선생님은 노는 인간, 즉 백수가 우리의 미래라고 말씀하시는군요. 생각해보면 역사상 위대한 인물은 다 백수였어요.

 

'공자가 타의에 의한 백수라면 붓다는 자발적 백수에 해당한다. 노자야 뭐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중략) 

그럼 이들은 대체 왜 그런 길을 갔던가? 무능해서? 아니면 시대와 불화해서? 아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백수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고귀한 삶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도 우리는 잘나가는 정규직이 아니라 '길 위의 현자'들을 멘토로 삼는다. 그거야말로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의 목표가 결국은 정규직이 아니라 자유인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해서 우리 공동체 (남산강학원&감이당)의 비전은 백수다. 청년백수를 위한 '공자 프로젝트' ('공부하며 자립하기'의 준말이자 '공자-되기'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를 특별히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중략) 

나는 감이당에 오는 학인들에게 말할 수 있다. 정규직에 집착하지 말고 백수로 살아가라고. 인간에게 그 이상의 선택은 없다고. 왜? 백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니까.

(위의 책 273~274쪽)

 

그렇다면 백수로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스승님은 제가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바로 그 답을 내놓으십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백수의 지상과제인 경제적 자립이 그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생산력은 창조와 연결(공유)에 달려 있다. "창조는 연결이다." (스티브 잡스) 생산수단은 인터넷이다. 하여,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누구나 생산수단을 전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제 남는 것은 창조자냐 소비자냐의 구별뿐이다! 자본에 메이지 않고도 창조가 가능한 노동으론 글쓰기가 최고다. 글쓰기는 소통과 순환의 최고 형식이다. 언어를 질료로 삼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수많은 매체가 범람하지 않는가. 심지어 개인이 언제든 매체를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생산수단은 노트북 하나면 충분하다.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일 필요도, 두꺼운 원고지도 필요하지 않다. 노트북 하나면 검색과 생산, 유통까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그 자체로 혁명적이다.'

(위의 책 276쪽)

 

스승은 이렇게 삶에 빛을 비추는 사람입니다. 저는 연출로 평생을 살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피디라는게 알고보니 무척 허술한 직업이더군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대본은 작가가 써주고, 연기는 배우가 해주고, 촬영은 카메라 감독이 합니다. 감독이라고 큰소리치지만 알고보면 혼자 있으면 그냥 바보에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저는 나이 50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글을 쓰겠다.' 그렇게 마음 먹고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은퇴하면, 스승님이 계시는 감이당을 찾아가려고요. 그곳에서 다른 학인들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습니다.

만약 진로를 고민중인 20대라면 저는 고미숙 선생님의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최고 히트작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으로 시작해도 좋구요. 달인 삼종 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를 읽어도 좋습니다. 책을 읽고 선생님의 말씀이 코드가 맞는다면, 남산 자락에 있는 감이당을 찾아가보세요. 그곳에서 새로운 자유를 만날 수 있어요.

 

백세 시대, 백수가 대세랍니다.

기왕에 놀아야한다면, 글쓰기와 함께 책 속에서 즐겁게 늙어가렵니다.

 

ps. 팟캐스트 벙커원 특강 시즌 2에 출연하신 고미숙 선생님의 최신 강연을 추천합니다. '공부의 목적'

http://www.podbbang.com/ch/11371

댓글로 알려주신, 섭섭이님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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