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얘기한 춘천 자전거 여행, 다녀왔습니다. 좋더군요. 한낮에 아직 살짝 덥기는 했지만, 역시 우리나라 봄 가을은 자전거 여행의 적기지요. 집에서 자전거를 끌고 나와 양재천으로 또,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한강변으로 달렸습니다.
매제가 자신이 타던 산악용 자전거를 10년전에 줬는데 지금까지 그걸 계속 탑니다. 흔히들 자전거 여행이 취미라 하면 비싼 로드용 자전거를 탈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자전거의 가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자동차 값이 비싼 건 비싼 엔진 때문이지요? 자전거의 엔진은 내 다리입니다. 비싼 자전거에 투자할 돈 있으면, 그냥 맛난 거 사먹고 열심히 페달질하는게 최고입니다. ^^
갑자기 춘천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이것이 나 자신과의 오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2월에 양수리 어느 폐건물에서 여왕의 꽃 1회 촬영을 했어요. 극중 레나 정 (김성령 분)이 도신 (조한철 분)을 만나 싸우게 되는 장소가 아래 사진의 폐건물이었죠.
건물은 좀 으스스해보이지만 강변에 위치해 풍광이 좋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강변에 새로 난 자전거 도로가 있는겁니다. 이건 어디로 가는 길일까? 호기심에 검색 해보니 새로 개통된 북한강 자전거 길인데 이 길로 춘천까지 간다는 거에요. 춘천 의암호 순환 자전거 도로가 참 좋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은 지라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그때 마음 먹었죠. 드라마가 끝나면, 여기를 와야지! 그래서 '여왕의 꽃'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첫 주말에 바로 온 겁니다.
예전에 학창 시절 자전거를 타고 팔당댐이나 대성리에 자주 갔는데, 그때는 트럭이나 버스가 다니는 국도를 타느라 늘 불안했어요. 그런데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군요. 서울서 춘천까지 자전거 전용 도로가 나다니! 가평 청평 양평 등등 서울 인근 유원지와도 다 연결되는 길이라 주말 자전거 여행으로 딱이네요. 경춘선이나 경의중앙선 역과도 연결되어 있어 여차하면 자전거를 전철에 실어도 되구요.
경춘선 폐 기찻길을 활용해 만든 자전거 도로, 곳곳에 옛날 역사나 철로도 남아있고, 무엇보다 예전에 대성리 MT 갈 때 바깥으로 보이던 북한강 풍경이 보여 참 반갑군요.
청평 근처엔가 있는 기차 터널은 시원해서 정말 좋았어요. 스피커로 신나는 음악도 틀어주더군요. 마침 오가는 이도 없기에 자전거 세워놓고 어두운 터널 한 가운데서 혼자 미친듯이 춤을 췄지요. 자전거 여행으로 즐기는 세상이야말로 진짜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죠. ^^
종착지인 춘천 신매대교까지 110킬로입니다. (광나루 자전거공원에서는 95킬로) 7시간 가까이 혼자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게 심심하지 않냐고요? 전 자전거를 타면서도 독서를 즐깁니다. 예전에 포스팅에서 칭송한 교보문고 전자북 단말기 '샘' 얘기를 더 해야겠군요. 여행 다닐 때 전자책은 가볍고 책이 여러권 들어가 있어 참 편리합니다. 게다가 이번에 듣기 기능이 첨가되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마치 오디오북처럼 책을 들을 수 있어요. (갤럭시 휴대폰에서 지원되는 기능입니다. 어플로 한번 이용해보세요. 교보문고 eBook. 참 좋아요.
2015/02/19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내 인생, 최고의 '샘'을 만나다
자전거를 타면서 오디오북을 즐깁니다. TTS (text to speech) 기능이 좋아져서 컴퓨터가 책 읽어주는 소리가 별로 어색하지 않아요. 이번 여행 동안 저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다시 들었어요. 예전에 한번 읽었는데, 어려운 역사 정치 경제를 참 쉽게 풀어서 술술 읽히더라고요. 오디오북은 가급적 예전에 한번 읽은 책을 듣습니다. 그래야 잠시 놓쳐도 흐름에 크게 지장이 없거든요. 그 점에서 소설보다는 에세이나 인문학 책이 편합니다.
의암호 스카이워크입니다. 유리로 된 바닥 아래 흐르는 강물을 볼 수 있는 곳. 춘천 의암호 자전거 순환 코스는 이런 아기자기한 구성이 좋아요. 주위에 애니메이션 박물관과 인형 극장 등 문화 명소도 많이 있구요.
춘천 MBC 옆에 있는 상상마당 공연장도 반가웠습니다. 이곳에서 '내조의 여왕' 1회를 찍었지요. 학교 얼짱으로 날린 김남주 씨가 여고생 시절을 재연하면서 교복을 입고 '그대에게'를 부른 곳이거든요. 아, 나도 많이 늙었나봐요. 이제는 가는 곳마다 추억이 발길에 차이는군요. ^^
누가 그러더군요. 젊어서는 시간이 천천히 가는데, 늙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가 뭔지 아냐고. 네, 젊어서는 무엇이든 처음 해보는 일이라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답니다. 첫 키스, 첫 사랑, 첫 데이트 등등. 하지만 나이들면 다 예전에 해 본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데요. 전에 했던 일이니 기억에 남을 이유도 없는 거죠.
젊은 시절은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아서 시간이 긴 것 같은데, 늙어서는 기억에 남는 게 없어 시간이 빨리 간다. 음... 말 되는군요. 추억이 많으면 시간도 천천히 간다? 그렇다면 청춘을 유지하는 비결은 여행입니다. 여행을 가면 무엇이든 첫번째 경험이거든요. 저 의암호 스카이워크가 제게는 처음이었고, 자전거로 춘천에 가본 게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주말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 자전거 여행을 다닌다면, 오래도록 청춘의 설레임을 간직할 수 있을 거예요.
라고 말은 했지만......
음... 나이는 역시 못 속이겠더군요. 예전에는 하루 200키로도 거뜬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자고 일어나니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안장에 몸을 싣기가 힘든 겁니다. 서서 페달을 젓다가 운길산 역에서 포기했어요. 자전거를 경의중앙선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거든요. 예전에는 오기로라도 끝까지 완주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아요. 포기할 줄 아는 여유를 아는 나이가 된 걸까요, 아님 그냥 늙어서 비겁해진 걸까요? ^^
그렇다면, 자전거 여행은 과연 청춘을 위한 것인가? 그게 아니라는 반증이 하나 있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만난 멋진 미국인 할아버지 한 분 소개할까 합니다.
이 분의 재미난 한국 자전거 여행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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