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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초년복은 개복이다

by 김민식pd 2013. 11. 6.

초년복은 개복이야.”

 

아버지가 즐겨하시던 말씀이다. 어린 시절에 잘나가다 나이 들어 가세가 기울어 고생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려서 고생 좀 해도 갈수록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게 훨씬 낫다는 말씀이리라. 행복이란 절대적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 기준이니 초년 운보다는 말년 운이 더 중요하다는 아버님 말씀에 절대 공감한다. 사실 난 아버지에게 감사드린다. 초년 시절 나의 삶은 정말 우울했고, 어른이 되어 철들지 않고 늘 재미나게 살고자 노력한 가장 큰 이유는 불운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 덕분이니까.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으로 평생 사셨는데, 직업 정신이 투철하신 건지 천직을 만난건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엄격하셨다. 내게는 만화, 전자오락, TV 시청, 모두가 금지였다. 울산 공고 훈육 주임이던 아버지는 학교에서도 엄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학창 시절,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험상궂게 생긴 울산 공고 교복을 입은 학생 셋이 버스에 타서 갑자기 우리 아버지를 욕하기 시작했다.

 

, 오늘 점심시간에 동편 변소 뒤에서 담배 피우다가 %&#(존칭을 생략한 아버지 함자)한테 걸려서 뒤지게 맞았다 아이가.”

, %&#는 힘도 좋아. 빠따 한번 맞으면 똥꼬가 헐어서 며칠 의자에 앉기도 힘들다니까.”

그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공고생 셋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지금 우리 얘기 듣고 웃었나?”

분위기가 험악해졌는데 여기서 잘못 얘기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 배운 대로 했다. 정직이 최선이다.

실은 그 %&#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거든요. 저도 집에서 많이 맞는데 진짜 장난 아니에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아버지는 참 여전하시구나 싶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공고생들은 모습만 우락부락하고 속은 순둥이들이었나 보다. 내 얘기에 당황하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다음 정거장에서 얼른 내려버렸다. 순진한 덩치들이 나 때문에 버스비만 더 들었겠구나. 아마 그들은 내게 연민의 정을 느낀 탓일까?

 

어려서는 만화를 보다 걸리면 맞고, 오락하다 걸려도 맞았다. 그래서 내 꿈은 커서 만화방 주인, 오락실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세상 좋아진 걸 느낀다. 스마트폰만 열면 공짜 웹툰과 게임이 널려있어 누구나 만화방 주인, 오락실 주인처럼 살지 않는가 말이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또 중독되는 이유, 세상이 너무 좋아진 탓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꿈만 꾸던 것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다 손바닥 안 현실이 되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들고 노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다.

난 어린 시절에 너보다 책 더 많이 읽었어!”

거짓말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책 말고는 재미난 게 없었던 탓이다. ^^

 

 (다음편에 계속~)

강풀님의 마녀, 연재 완결되었군요.

그간 미뤄두신 분들, 정주행을 즐겨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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