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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나이 서른에 죽지 못한 이유

by 김민식pd 2013. 10. 31.

고등학교 때 나는 자살을 꿈꾼 적이 있다. 그러나 대학에 가면 뭔가 즐거운 일이 일어날 거야라는 근거 없는 희망(?)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대학에 가보니 역시 별거 없더라. 그래서 새롭게 마음을 먹었다. ‘20대 최대한 재미나게 살고, 나이 서른이 되어도 별거 없으면 그때 깔끔해서 세상을 떠나자.’

 

30세를 인생의 종점으로 생각한 이유는 당시 주위에서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즐겁게 사는 어른을 보지 못한 탓이다. 나이 서른이 넘어 즐거움을 추구하고 사는 것은 철부지처럼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서른을 최종 목표로 삼고 20대를 최대한 즐겁게 살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40대 중반이 된 나는 아직까지 꿋꿋이 살고 있다. 청춘만이 인생의 아름다운 시기라 생각해서 서른 살에 인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결심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 서른 살이 되도록 진한 연애를 못해봤는데 총각 딱지도 못 떼고 죽는 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화려한 청춘을 보내고 세상을 하직했다면 지금까지 어영부영 살 수도 없을 것이다. 항상 돌아보면 미련이 남았고 본전은 챙기고 가야지하는 생각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다보니 벌써 아저씨다. 지나가는 40대 아저씨를 보면 도대체 저 나이에는 무슨 낙으로 살까?하고 불쌍하게 혀를 차던 20대 시절이 있었는데 내가 벌써 그 불쌍한 나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학교 마치고 나오는데 정문 앞에 못보던 리어카 행상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처음 보는 식빵 토스트 튀김을 팔고 있었는데, 하나에 50원이었다. 너무 너무 맛있어 보이는데 당시 내 하루 용돈이 10원이었다. 10원이면 라면땅과자 하나를 살 수 있었는데 난생 처음 본 토스트 튀김은 신제품답게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가였던 셈이다. 그래서 난 그날부터 용돈을 모았다.

 

닷새째 되는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50원을 쥐고 학교 앞으로 달려갔는데, 행상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50원을 들고 날마다 거리를 찾아헤맸지만 튀김 토스트 리어카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난 그 최신 먹거리를 맛보지 못한 채 유년 시절을 마감해야 했다. 돈이 부족해 토스트를 사먹지 못한 그날의 아쉬움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요즘 나는 드라마 피디로 일하는데 촬영을 하다 문득 길거리 행상에서 튀김옷을 입힌 토스트를 보면 꼭 사 먹는다. 그럼 같이 일하는 조연출이 놀라 묻는다.

감독님 출출하세요? 가서 간식꺼리 사 올까요?”

그럼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아냐. 이건 그냥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선물이야.”

 

20대 청춘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믿던 시절, 청춘이 끝나고, 잔치가 끝나면, 나이 서른에 깔끔하게 세상을 떠나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서른 이후에도 난 꿋꿋이 살고 있다.  인생은 어린 시절의 나를 위한 선물인데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갚지 못한 선물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나이 사십에 얻은 최고의 선물은 역시 늦둥이 딸?

 

(남은 선물 이야기, 다음편에 글이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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