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파견 근무 나간 엄마 따라 싱가폴에 간 딸들이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다. 요즘은 딸들과 지내느라 분당 처가집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한다. 전철만 3번 갈아타는데 출퇴근만 하루에 3시간 넘게 걸린다. 차로 다니면 더 편하지만 주차비랑 기름값이 많이 들어 차라리 전철을 탄다. 전철에서 보낸 시간은 독서로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재미난 스릴러에 빠져 있을 때는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는게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올 여름, 서늘한 독서를 원한다면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보시라. 정말 재밌다. 추운 나라 노르웨이에서 온 책이라 그런지 읽는 내내 등골이 서늘하다. 스웨덴에서 나온 '밀레니엄' 3부작도 참 재밌게 읽었는데 새로운 저자, 그것도 아직 살아있는 저자를 새로 발굴한 기쁨은 크다. 앞으로 읽을 책이 늘었구나.
낯선 나라에서 온 책을 읽다보면 새로운 상식과 몰랐던 역사를 배우는 맛이 있다. 책을 읽다 모르는 인물이 나오면 꼭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본다. 매국노 '크비슬링'이라는 말이 나오기에 무슨 뜻인가 위키피디아로 검색해봤더니 노르웨이판 이완용이었다. 노르웨이 군인이자 정치인이지만 나치 독일을 위해 부역하고 전후 해방된 후 총살된다. 다음은 위키피디아의 인물 소개 마지막 대목.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크비슬링"이 반역자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신조어는 이미 크비슬링 생전에도 사용되었다. 일례로 당시 "베를린을 방문한 크비슬링"이라는 제목의 풍자만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크비슬링: 저는 크비슬링입니다.
- 히틀러: 그리고 이름은?
크비슬링은 자신의 이름을 말했는데 히틀러는 '저는 반역자입니다'라는 뜻으로 이해했다는 풍자이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빵 터졌다. 위키 편집자 중에 이런 센스! 집단 지성이 진화하고 있다. 그 덕에 독서가 더 즐거워졌다.
(원문) http://ko.wikipedia.org/wiki/%EB%B9%84%EB%93%9C%EC%BF%A4_%ED%81%AC%EB%B9%84%EC%8A%AC%EB%A7%81
'스노우맨' 책은 아주 두껍다. 619쪽이나 된다. 꼼꼼하게 모든 단서를 하나 하나 뒤쫓는 형사가 주인공이다. 처음 지목한 용의자가 바로 범인으로 판명난다면 정말 허무한 탐정 소설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 형사 진짜 집요하다. 용의자를 쫓다가 그가 진범이 아닌 걸로 밝혀져도 좌절하는 법이 없다.
'해리의 옛 상사였던 묄레르 경정은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모든 것을 지워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서를 지워 나갈 때마다 절망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고 했다.'
으아, 멋지다.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자세는 인생을 사는 자세다. 해보고 안 되면 하나 하나 지워간다. 좌절하지 않는다. 이 방법으로는 안 먹혔군. 오케이, 그럼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몇번 시도해보고 안된다고 바로 게임을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스노우맨, 납량 특집 소설로 최고다. 북구의 겨울 이야기와 함께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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