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퇴직 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에서 드라마 제작론을 강의합니다. 드라마 시장의 변화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제게 딱 필요한 책이 나왔어요.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일하는 김일중 부장님이 드라마 제작사 대표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엮은 책입니다.
<파워하우스> (김일중 / 인물과사상사)
K-드라마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프로듀서 10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대담집인데요. 저와도 인연이 있는 대표님들의 이야기가 나와 반가웠어요. 제가 <내조의 여왕> 공동연출로 일할 때 만난 박민엽 피디님. 이후 <스토브리그> <소년심판>등을 히트시킨 제작사의 대표님이 되셨어요. 기획 피디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흥행의 성패를 좌우하는 역할이잖아요. 어떤 아이템이 괜찮을지 아닐지 가장 먼저 검토하는데, 작가님들은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부분에 깊이 몰두합니다. 그렇지만 기획 PD는 전체적으로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트렌드를 분석하고 온갖 드라마를 챙겨 보거든요. 그래서 레퍼런스가 많은 친구들이 똑똑하게 아이디어도 내는데 그 친구들의 의견이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드라마라는 게 적게는 40억 원에서 많게는 300억 원까지 드는 큰 판이고, 한번 시작하면 큰돈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아무거나 제작할 수는 없잖아요.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트렌드 분석도 하고, 레퍼런스를 찾아가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기획 PD이기 때문에 저는 너무너무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백번 공감합니다. 제가 10년 넘게 출판 에이전트 한 분이랑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그 분은 수십년을 출판계에서 일해온 베테랑 편집자입니다. 제게는 그 분이 기획 PD에요. 난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데, 그 분은 지금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궁금해하지요. 둘의 협업을 통해 매년 한 권씩 책이 만들어지는데요. 이렇게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그런 내게 세상이 원하는 것을 알려주는 친구를 만나는 것, 그게 협업입니다.
기획 PD가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민엽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인내심이 있어야 해요. 왜냐면 본인의 속도대로 일할 수 없는 게 이 직업의 특징이거든요. 만약 새벽 두 시에 대본이 나온다고 했을 때 피드백을 해줘야 하는 사람이 기획 PD잖아요. 그러면 그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도 대본이 안 나오면 하염없이 계속 기다려야 해요. 사실 몇 시간을 기다리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작가가 아이디어가 막혀서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거든요."
기다리는 일은 피디의 숙명입니다. 편성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대본이 나오길 기다리고, 배우가 캐스팅 제의를 받아들여주기를 기다리고, 촬영팀 세팅을 기다리고, 편집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시청자 반응을 기다립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버티기 힘든 직업이고요.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직업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이 인내심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도 참는 법을 기릅니다. 하고 싶다고 다 하고 살지는 않아요. 즉각적인 만족이 오는 활동보다는 오랜 시간 걸려 보상이 찾아오는 일에 집중합니다. 독서, 글쓰기, 운동이 다 그래요.
피디에게는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참 중요합니다. 배우와 작가는 무척 예민한 사람들이에요.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 성장하는 직업이기에 세간의 평가에 민감합니다. 때로는 대본 초고 반응이 안 좋을 수도 있고요. 편집본 시사할 때 연기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나올 수도 있어요. 이걸 곧이곧대로 작가나 배우에게 전달하면 상처가 됩니다. 중간에서 잘 걸러야해요. 상처가 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다음 작업을 할 때 더 나아질 수 있는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도록. 쉽지 않은 작업이지요.
김일중 저자가 묻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준비해야 기획 PD가 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책 읽기요. 꼭 드라마나 영화, 소설과 관련된 것만 아니라 인문학이라든가 다방면의 독서가 필요해요. 왜냐면 기획 PD는 사고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 돼요. 또 기획 PD는 원작이나 소스가 될 만한 것들을 읽었을 때 말과 글로 요약을 잘할 수 있어야 해요. 한 장짜리 페이퍼가 결국 200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되고, 300억 원짜리 프로젝트가 되거든요. 200자짜리 기획서 한 장으로 정리한다면 한 글자당 가격이 엄청 비싼 거잖아요. 기획서 한 장도 재미없는데 몇십 장짜리 대본이 재밌을 리 없죠. 그렇기 때문에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는 재능이 있다면 기획 PD로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100퍼센트 공감합니다. 말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가 지금 강원국 작가님과 내년에 나올 새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데요. 그 주제가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경청부터 합니다."에요. (깨알같은 홍보 ^^) 피디로 일하며 어떻게 전문가들과 소통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곧 나올 저의 새 책도 기대해주시어요~
저의 연출 고별작인 <이별이 떠났다>의 제작사 슈퍼문픽쳐스 신인수 대표님도 책에 나와 반가웠어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돈 벌고 싶으면 다른 일을 하라고 말해요. 차라리 중장비 자격증 같은 걸 따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저는 이 일을 하려면 소명 의식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꿈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콘텐츠 자체를 좋아해야 해요.
지금은 예전보다 이 일을 하기 좋은 시대예요. 저희 세대는 드라마를 만들려면 언론 고시를 준비해야 했어요. 그때는 방송사 말고는 드라마를 만들 곳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종편에, 드라마 제작사에, 드라마제작사협회 프로듀서 스쿨 같은 곳도 있어요. 인터십하러 온 친구들 보면 딱 알아요. 진짜 이 일을 좋아하고, 이 분야에 촉이 있는지, 준비된 사람인지 아닌지. 그러니까 본인이 준비를 잘해놓으면 기회는 과거보다 얼마든지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사실 제작사들은 좋은 사람을 못 구해서 난리예요. 신인 뽑는 것에 대해 거부감도 없고요. 왜냐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거든요. 쉽게 말해 '똘끼' 있는 감수성이 필요해요."
EP라고 불리는 사람들, Executive Producer. 시나리오 창작에서 배우와 감독의 선정, 제작비 조달, 유통, 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최종 결정권자를 뜻하지요. 그 일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네요. 홍경수 아주대 교수님의 말씀으로 책 소개를 마무리합니다.
"감독의 시대, 작가의 시대를 거쳐 EP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책은 세계적인 K-콘텐츠의 핵심인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EP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며, 드라마의 최종 책임을 지는 EP들의 작업 과정이 섬세하게 묘파되어 있다. K-콘텐츠의 현재와 미래가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학생들과 함께 읽을 책을 또 한 권 발견해 즐겁습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 드라마와 함께 즐거운 주말 맞이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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