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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공부는 언제 하는 것일까?

by 김민식pd 2020. 7. 14.

방명록에 질문이 올라왔어요. 

Q: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그래서 PD님께 여쭈고 싶은 게 있는데 PD님께서 예전 블로그에 PD 관련해서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벌충하기가 어렵답니다.'라고 쓰신 글을 본 적이 있거든요. 저 역시 중고등학생 때 성실히 공부하지 않아 많은 후회를 하는 사람이라 공감이 됐습니다.
반면 PD님께서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이라는 곳과의 인터뷰에선 '저는 스무 살 이후에라도 스스로 마음을 내서 하는 공부가 진짜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돌이켜보니 학창시절 동기부여나 꿈없이 누군가가 시켜서 억지로했던 수동적인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열심히 하지 않았고 (물론 핑계일 수도 있지만요.) 20살 이후로 꿈이나 목표가 생겨 오히려 학창시절 때보다 더 치열하게 했던 걸 떠올리니 이 말 역시 수긍이 되더군요.
앞에서 얘기한 두 말씀 PD님이 하신거고 어떻게 보면 모순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어떤 게 맞나요?
(혹시나 싶어서 첨언하자면 논쟁을 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고요. PD님이 하신 두 말씀 모두 동의하는데 언뜻 생각하면 모순처럼 보이기도 해서 교육에 관심 많으신 PD님이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고 싶어서요. 만약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시오.)

A: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상충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여기엔 사연이 있답니다.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수능 준비할 때, 밤을 새워 공부해 본 사람이 피디가 된 후에 밤을 새워 편집을 할 수도 있다고요.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는 달라요. 스무 살 이후에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이니 아이들의 성적에 너무 목을 매지는 말라고 합니다. 이건 둘 다 제 경험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까지 성적은 반에서 중간이었어요. 3학년 1학기에 본 대입 입시 모의고사에서 학급 전체 50명 중 22등을 했어요. 서울로 대학을 진학해야 아버지의 품에서 달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6개월 동안 미친 듯이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학력고사로는 반에서 2등을 했어요. 한양대 산업공학과에 4년 장학생으로 지원했는데요. 15등급 중 7등급이라는 낮은 내신 탓에 1지망 탈락하고 2지망인 자원공학과에 입학합니다. 

6개월간 미친듯이 공부해서 성적을 올렸기에, 재수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내신이 너무 낮아 포기했지요. 일단 한번 기록된 내신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대학을 다니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괴로웠어요. 그때마다 고교 시절 낮은 내신을 기록한 과거의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피디 지망생 중에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팔로우한다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학생을 보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줍니다. 그런 활동은 대학 입시를 마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다만 고교 시절에는 입시 준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자신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최고의 길이라고요.

대학생을 만나면 저의 답변은 달라집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대학 입시로 인생이 이미 결정났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수능 준비를 통해 자신의 성실함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어른이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정하고 (저의 경우, 그게 영어 공부였어요.) 그것에 열정을 불태워 세상에 자신의 근면성실함을 증명해도 된다고요. 

제 또래를 만났는데, 50대의 그가 "이번 생은 망했어. 직업도, 가족도, 취미도, 내 인생에 뜻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지금 그냥 포기하고 인생을 막 살잖아? 나중에 70대가 되면 또 후회할 걸? 아, 50대에 그래도 도서관에 가서 노후대비에 대한 책이라도 읽고 은퇴 후 직업에 대한 준비를 좀 할 걸."하고?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지만, 아직 남은 시간이 많으니까 이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면 어때?" 

결국 저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 사람에게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공부는 지금 해야 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게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하나의 답은 없고, 묻는 사람에 따라 답은 달라야 한다고 믿거든요.

좋은 질문을 남겨주신 덕에 저도 공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예전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인터뷰를 할 때 찍은 사진입니당. 평생 공부를 하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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