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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아이디어 훈련법

by 김민식pd 2011. 11. 11.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드는가?

연출 경력 15년 중, 가장 아이디어를 많이 고민했던 시절은 청춘 시트콤 '뉴논스톱'을 연출하던 2년 반이었다. 1주일에 다섯편씩, 1년에 200편을 만들었다. 시트콤은 30분안에 하나의 사건이 다 완결되는 구조이다. 그것도 2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즉 일주일이면 열가지 사건이 필요하다.

'뉴논스톱'의 주제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은 누가 누가 무슨 사고로 뒤통수칠런지 너무나 궁금해도~'
나도 너무 궁금했다. 도대체 또 누가 무슨 사고를 쳐야하는지...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 내가 찾는 보물창고가 있다. 바로 영화제 프로그램이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램을 펼쳐보자. 400편에 가까운 장단편 영화의 줄거리가 소개되어 있다. 보통 3~4줄로 간략하게 요약된 줄거리다. 



'평론가 죽이기' 
한 저명한 영화 평론가가 새로나온 호러 영화에 대해 신랄한 혹평을 한 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영화 감독에게 납치당한다. 영화 감독은 비평가에게 깜짝 놀랄만한 경험을 선사한다.

단편 공포 영화의 이 줄거리를, 청춘 시트콤에 적용할 수 있을까?
있다. 조인성과 박경림의 러브 라인을 만들때, 위의 줄거리를 이용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경림이 살리기'
교내 알바에 관한 최고 전문가인 경림이 과사무실 운영에 대한 신랄한 혹평을 학교 신문에 실은 후, 노처녀 히스테리가 심한 과조교 김효진에게 표적이 된다. 경림을 짝사랑하는 인성은 경림을 구하기 위해 효진과의 전쟁에 나선다.

하늘 아래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다.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존의 이야기에서 변형되는 것이다. 유럽에 퍼져있는 마법사, 마녀, 환상의 동물, 이런 전설을 한데 모아 새로운 이야기로 녹여낸 것이 '해리 포터'다. 뻔한 하이틴 로맨스의 공식에, 늑대 인간과 뱀파이어의 삼각관계라는 새로운 상상을 가미한 것이 '트와이라잇'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괴로워하지 말고 친근한 이야기를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를 고민하라. 그것이 21세기형 창작이다.

영화 프로그램을 갖다 놓고, 보지 못한 영화의 뒷 줄거리를 혼자 상상해보라. 위의 '평론가 죽이기'는 내가 못 본 영화다. 혼자 후반을 상상해본다. 감독은 비평가를 형틀에 묶어놓고 온갖 고문도구를 가져다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겁에 질린  비평가가 비명을 지르면, 그제야 씨익 웃으며 '이래도 내 영화가 안 무서워요?'하고 장난이었다고 말하겠지? 비평가가 '당신 연기는 참 좋은데, 연출은 그래도 후져.'라고 얘기하면, 감독이 진짜로 꼭지가 돌아서... 뭐... 이런 식으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아니면 말고. ^^

연출은 어떤 이야기를 던져줘도 살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 작가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재미없다고 하면 이야기가 진전될 수 없다. 어떤 이야기든 살을 붙이고, 반전을 만들면 재미있어 진다. 연출이 열심히 붙잡고 회의를 해도, 재미없으면 마지막에 작가가 포기할 것이다. 왜? 대본을 쓰는건 작가의 역할이므로, 계산이 안서는 대본을 끝까지 우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출이 처음부터 재미없다고 퇴짜놓으면 작가는 일을 시작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을. 괴로워하지 말라.
그대가 괴로워하면, 함께 일하는 작가와 배우는 더 괴롭다.
연출은 항상 여유있게, 웃으며 일해야한다. 그리고 믿어야한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다. 아니 더 재미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야한다.

즐겨라, 창작의 과정을. 그것이 창작자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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