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냈을 때, 같이 일하던 후배가 놀랐어요. “주조정실에서 교대근무로 일하면서 어떻게 책을 썼어요?” 주조 교대근무를 하며 정기적으로 밤을 꼴딱 새우며 일합니다. 전날 오후 5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야근을 하고 교대하면요, 집에 와서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요.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머리만 지끈거려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나 싶으면 더 머리가 아프지요. 저는 그럴 때, 지금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에너지를 쓰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합니다. 이를테면 놀이요. 제게는 그게 독서고, 글쓰기입니다. 일이 싫어 달아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놀이를 향해 달려갑니다. 

“너 진짜 독하다.”하는 소리를 가끔 들어요. 1994년에 한국 3M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는,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에 63빌딩 수영장에서 새벽 수영을 하고, 8시 반까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오후 6시 칼퇴근해서 종각역으로 달려가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통역대학원 입시반 수업을 들었습니다. 밤 9시에 학원 수업을 마치면 도서관으로 가서 12시 문 닫을 때까지 공부를 하고요, 다시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했지요. 영업을 다니는 틈틈이 점심 시간에 회화 문장을 외우는 저를 보고 동기가 물었어요. "넌 정말 지독하구나. 어떻게 그게 가능해?" 만약 회사를 그만둔다면, 회사가 싫은 게 아니라 영어 공부가 미치도록 하고 싶어서 일 거예요. 그런데 그 미치도록 하고 싶은 영어 공부, 어쩌면 회사 다니면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진짜 좋아하는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회피 동기보다는 접근 동기가 더 중요합니다.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정재승 / 어크로스)을 보면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서 이런 얘기가 나와요.  


내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 싫어서,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그만두는 건 좋은 의사결정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건 괜찮지만, 지금 이게 싫으니까 그만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대책도 없죠. 그 순간 너무 싫기 때문에 도망치듯 그만두지만,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위의 책 45쪽)


일이 힘들 때, 저는 놀이를 통해 더 좋아하는 일을 찾습니다. 영업이 힘들면 영어 공부를 하고요. 주조 근무가 힘들면 블로그를 통해 작가의 삶을 꿈꿉니다. 정재승 교수는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입니다. 전공분야는 의사결정 신경과학인데요. 평소 강연을 통해 뇌과학이 밝혀낸 연구 결과를 대중들에게 들려줍니다. <열두 발자국>은 그렇게 이뤄진 강연 중 12개를 뽑아 책으로 묶은 내용이고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도 그렇지만,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푸는 데 정말 재주가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사람이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신경과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이렇게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과학자가 있다는 건 책 읽는 이로서 복이라 생각해요. 연구도 하고, 강연도 하고, 집필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고, 정말 다재다능한 분인데요. 어쩌면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게 이분이 창의성을 발현하는 비결일지 모르겠네요. 


통상 우리가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 몰입을 강조하지 않습니까? 한 가지 생각에 오래 집중하고 깊이 들어가야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얘기들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기도 힘들뿐더러, 오히려 두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다른 과제를 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는 겁니다. 과제에 대한 생각에서 멀어졌다 가까이 다가갔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에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위의 책 334쪽)


일도 하고, 독서도 하고, 여행도 하고, 놀기도 하고, 다양한 딴짓을 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 다양한 활동 가운데에서 새로운 창작열이 샘솟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루에 딱 1시간이라도 투자해보려고 합니다. 새해에도 부지런한 딴짓과 함께 더욱 즐거워지기를!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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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보리 2019.01.04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은 다른 외국어를 시작하라는 싸인으로 들리네요ㅎ 꿈을 바라고 가는 길은 험난했지만 피디님 책이 등대가 되었어요. 왜 제가 외국어에 전율을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ㅎ

  2. 섭섭이짱 2019.01.04 06: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딴짓하기 = 하고 싶은거 해보기
    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일 이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사이드 프로젝트 모임들이 많은거 같아요.
    같이 하면서 서로서로 배우고 하는...

    요즘 새해부터 시작한 딴짓이 있는데
    너무 너무 재밌어요 ^^

    매해 새로운 딴짓을 한,두가지씩 하다보면
    평생 신나고 즐겁게 살 거 같아요.

    그럼 저는 이만 딴짓하러 =3 =3=3

  3. 분석맨 2019.01.04 06: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개인 Books Wish List에 있는 책인데, 이 글을 보니 빨리 읽어 보고 싶어 지네요. 감사합니다!

  4. 아리아리짱 2019.01.04 0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회피 동기 보다 접근 동기가 더 중요합니다.'
    오늘도 감사함을 일깨우는 피디님 글을 읽고
    '딴짓'에 대한 행복한 고민 해보렵니다. ^^

  5. 안천사 2019.01.04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오늘 아침 글을 읽다가 책꽂이에 모셔두고 아직은 읽지못한 열두발자국을 떠올렸어요.
    얼른 읽어야겠다는 열망이 아침부터 피어오르네요ㅎㅎ 다 피디님이 불을 지펴주신 덕분이에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기 싫은데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는게 아니어서 주로 독서를 딴짓삼으며 지내고 있답니다. 새해에는 딴짓의 영역을 좀 더 넓혀봐야겠어요~~

  6. 재인엄마 2019.01.04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피 동기 보다는 접근 동기가 더 중요합니다.”
    굉장한 문구에요, 뇌리에 콕 박힙니다.
    잘 기억하고 곤란한 선택의 기로에 있을때마다 떠올릴게요!

  7. 꿈트리숲 2019.01.04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괴로운데 여행 다녀오면 딴 사람이 될거야,
    혹은 이 일 맘에 안드는데, 다른 일 하면 열심히 할거야
    같은 얘기를 종종 들어요. 그런데 지금 달라지지 않으면
    여행을 다녀온들, 다른 일을 찾은 들 변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피디님처럼 교대근무하며 책을 써보고, 영업하며
    영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더 나은 삶은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그게 좋은 의사결정인 것 같고요.

    얼마전 보라쇼에서 정재승 작가님을 만났는데요.
    곰돌이 푸우가 나오는 책도 좋지만 곰돌이 푸우가 쓴 책을
    한번 읽어 보는 건 어떻겠냐며 개그감도 뿜뿜 하셨어요.
    다양한 딴짓, 저도 올 한해 목표입니다.~~^^

  8. 프루스트 2019.01.04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열두 발자국>을 꼭 읽어보고 싶네요.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생각만 하고 다른 중요한 일들이 먼저라고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다양한 일에 마음가는대로 일단 해봐야겠습니다.

  9. 김수정 2019.01.04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두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다른 과제를 하다가 다시 돌아올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는 겁니다. 과제에 대한 생각에서 멀어졌다 가까이 다가갔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상에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정재승 작기님의 위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피디님의 말씀처럼 '일도 하고, 독서도 하고, 여행도 하고, 놀기도 하고, 다양한 딴짓을 하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도록 올해 더 많이 용기내고, 더 다양하게 시도해봐야겠습니다.

  10. 라온 2019.01.04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글을 읽고 보니까 미치도록 하고싶은 일이 있다라는 것이 정말 행복한 삶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영어공부가 미치도록 하고 싶은일은 아니고 늘 관심영역에 있었던 분야라서
    새해를 맞이하여 피디님 책에서 자극을 받고 기초영어회화책 한권 떼기에 도전하였습니다.
    피디님의 글을 읽으면 힘이 나고 매번 정말 대단하시다 느껴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11. 봄처녀 2019.01.04 1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딴짓을 한다는것에 죄책감? 비스무리한게 있었는데 맘이 편해지네요^^ 하고싶은일 조금씩 찔러보러 갑니다~~~^^

  12. 2019.01.04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3. 고구마 2019.01.04 2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저도 이 책 읽고 있는데 겁나 반갑습니다.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늘 미루고 미루다 크게 아팠는데도 좀 살 만 하니까
    또 미루고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올해는 정말 '일단 저질러보자!'를 화두로 삼고 걸어가 볼랍니다.
    더이상 망설이는데 힘과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14. 2019.01.05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5. 2019.01.05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고구마 2019.01.05 1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비밀댓글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모르니
      이건 진정한 비밀댓글이군요..흫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16. 오또기 쭘마 2019.01.05 0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참 정신적으로 힘이 들때 피디님의 책과 강의를 듣고
    저만의 딴짓거리를 찾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나의 딴짓이 다른 하나를 부르면서 계속 넓혀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딴짓을 하다 이것 또한 뜻대로 되지않거나 힘에 부칠때도 있지만
    성과가 아닌 과정을 즐길줄 알고 스스로를 쓰담쓰담 해주는
    힘이 생겼습니다.

  17. 농업사랑 2019.01.05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의는 다양성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창조의 출발점 아닐까요?
    오늘도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걷기와 쓰기, 읽기로 즐거운 하루 보낼려고 합니다.

  18. 헤니짱 2019.01.06 1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글 읽으면서 다시한번 깊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19. 유림 2019.01.13 01: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선생님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처음 들었을때 가슴이 무척 두근거렸습니다 선생님 책을 읽고 나서는 더욱 많은 희망을 품게 되었어요 저는 3월에 테솔대학원 입학 예정인 아이셋 엄마입니다 20대에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일들인 연극,노래만 하면서 삶에서 도망쳤어요 30대가 되고 아이들 엄마가 되니 내 삶에서 무언가 끝까지 이룬게 없다는게 후회가 되었고 셋째를 낳고서는 영어과로 편입, 다시 공부해서 원하는 공부를 이제 대학원에 가서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어 공부를 할수록 저의 부족함을 알게되고 가끔은 아직 임계점을 넘지 못하는 제가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미국사람이 아니고 한국인이므로 ...한국인 네이티브 스피커니 절대 기죽지 말자고, 스스로 더 당당해지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어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유학 가고 싶은 생각이 들때 선생님의 언어연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저도 집에서 환경을 만드려고 노력합니다 선생님 같은 국내파 영어 실력자가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요 위의 글에도 동감합니다 싫으니까 그만 두는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결국 멀고 먼 길을 떠나 제가 깨달은 것들이네요^^ 좋은책 추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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