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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보고서를 잘 쓰고 싶다면

by 김민식pd 2019. 1. 11.

세상 살아가며 힘든 일을 만나면, 저는 책을 찾아봅니다. '예전에 이런 힘든 고비를 만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고난을 극복한 후, 그 방법을 책으로 남겼을 것이다.' 이렇게 믿거든요. 지난 성탄절에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 출연했어요. 강원국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글쓰기 특집에 나갔지요. 마침 글쓰기 강의로 유명하신 백승권 저자님도 같은 방송에 출연하셨어요. '글쓰기 절세고수 두 분을 만나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원국, 백승권 두 분은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는 정파 장문인 같은 분들이고요. 저는 고수를 찾아 가르침을 구하는 방랑 검객이지요. 

백승권 선생님은 비즈니스 라이팅 전문 강사이십니다. 매회 평균 200회, 800시간 이상 직장인을 위한 보고서 글쓰기 강의를 하신대요. 제가 글쓰기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블로그를 하는 이유에 대해 한가롭게 글을 쓴다면, 백승권 선생님은 직장인을 위한 업무용 글쓰기 강의를 하시며, 보고서, 기획서, 보도자료 등을 더 잘 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시지요. 정파 고수의 내공 연마 비결을 묶은 무림 비급이 이번에 새로 나왔어요.   

보고서의 법칙 (백승권 / 바다출판사)

좋은 보고서가 뭔지는 몰라도, 나쁜 보고서가 뭔지는 알아요. 길고 요령없는 보고서입니다. 핵심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주구장창 길게 쓴 글입니다. '저 이렇게 일 많이 했어요.' 하고 상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지요. 책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어렵고 현학적인 책이 있어요. 저자가 '저 이렇게 많이 알아요.' 하고 자랑하는 것 같은 책. 저자가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책을 읽는 독자가 얼머나 쉽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하지. 글을 어렵게 쓰는 이유가 뭘까요? 독자가 아니라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 글을 쓰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의 감정이 중요한 글도 있지요.



우리는 학교에서 '나의 생각, 경험, 지식, 감정을 잘 드러내면 좋은 글'이라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 글쓰기를 월리스 식으로 정의하면 '표현적 글쓰기'입니다. 

표현적 글쓰기는 자아를 발견하고 정신을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일기가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SNS, 신변잡기를 다룬 수필, 편지, 자서전이 이런 갈래입니다. 이런 글쓰기는 인생 전 과정에 걸쳐 의미 있고 유용합니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이뤄지는 업무 글쓰기는 이와는 전혀 다릅니다. 월리스의 정의에 따르면 업무 글쓰기는 '소통적 글쓰기'입니다. 소통적 글쓰기는 자신의 글에 독자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이해를, 적극적으로는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표현적 글쓰기의 중심이 '나'라면 소통적 글쓰기의 중심은 '독자'입니다. 

업무 글쓰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그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용을 선택, 배열,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책 45쪽)


역시 고수의 글은 다르지요? 한 방에 핵심을 찌릅니다. 보고서를 잘 쓰려면 읽는 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요령은 바로 '선택, 요약, 배열, 표현'입니다. 쓰는 사람의 수고를 아끼고, 읽는 사람의 시간을 줄여주는 글입니다. 보고서를 길게 쓰는 이유가 뭘까요? 짧게 쓰면 성의없어 보일까봐 그렇죠. 일 잘 못하는 상사는 업무의 효율보다 양에 치중합니다. 일을 잘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 무조건 양으로 승부합니다. 그런 이를 만나면, 쓸데없이 야근만 늘어납니다. 보고서만 괜히 길어져요. 일의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요. 좋은 상사를 만나면 일을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 최고의 글쓰기 선생인 강원국, 백승권 두 저자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을 했다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대통령 연설문과 보고서를 쓰면서 직접 노무현 대통령에게 글쓰는 법에 대해 배운 분들입니다. 제대로 무공을 전수받은 고수들이 이제는 자신들의 지식을 매뉴얼로 전수해줍니다.

<보고서의 법칙>은 글쓰기의 '인사이트'를 설파하는 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직장인들이 현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꼼꼼한 '매뉴얼'로 설계된 책이지요. 평소 직장에서 일을 하며, 보고서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이라면 도움이 될 겁니다. 이 맛에 저는 책을 읽어요. 절세 고수가 적어놓은 무림비급을 몰래 살펴보며, 내공의 상승을 꿈꾸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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