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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거의 완벽한 하루

by 김민식pd 2018. 8. 20.

연출하던 드라마가 끝났다는 건, 아껴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뜻이지요. 지난 토요일 하루가 그랬어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하루. 

아침 6시에 눈을 떴어요. 일어나 소설 <왕좌의 게임>을 읽었어요. 드라마 연출 중에는 장편 소설은 참습니다. 뒤가 궁금해서 못 견디거든요. 요즘 하루 2,3 챕터씩 아껴가며 읽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읽는 책은, 가장 재미난 책입니다. 그래야 일찍 일어난 보람을 느껴요. 지금은 <얼음과 불의 노래 제 2부 : 왕들의 전쟁> 1권을 읽고 있어요. 조지 R. R. 마틴은 정말 탁월한 이야기꾼입니다. 독자의 머리 위에서 노는데요. 이야기의 전개를 전혀 예상할 수가 없어요.

아침을 먹고 오랜만에 온 가족이 영화를 보러 갑니다. <맘마미아 2>. 맘마미아는 뮤지컬로 워낙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아이들도 1편을 좋아하기에 속편도 다 함께 보러 갔어요. 결말이 예측 가능한 헐리웃 식 엔딩이라 조금 긴장은 떨어지지만, 영화 관람은 즐거웠어요. 주인공들이 아바의 복고풍 의상을 입고 다함께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더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딸들이 거리에서 '맘마미아'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그런 영화에요. 누구라도 노래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브런치 카페에 들러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주말 오후에 누리는 최고의 호사를 즐깁니다. 낮잠이지요. 낮잠을 잘 때는 휴대폰으로 30분 후에 알람을 맞춰둡니다. 낮잠을 1시간 이상 자면 잠기운에 취해 일어나기 힘들어집니다. 30분 낮잠을 자고 딱 일어나면, 개운하니 부지런한 오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주말 하루를 두번에 나눠쓰는 느낌입니다.

오후 2시, 일을 시작합니다. 내년에 나올 새 책의 원고를 쓰고 다듬습니다. 3시간 정도 작업하는데요, 한창 신이 나서 타이핑을 하면 어깨와 손목이 뻐근합니다. 그럴 땐 잠시 책을 읽으며 쉽니다. 일할 때 읽는 책은 따로 있어요.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과 강원국 선생님의 <강원국의 글쓰기>입니다. <열두 발자국>은 뇌에 좋은 자극이 되고요. <강원국의 글쓰기>는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을 부채질하지요. 두 책 다 강연을 바탕으로 한 원고인데요. 고수들은 다릅니다. 말을 글로 바꿔도 이렇게 밀도가 높아요. 

오후 5시, 이른 저녁을 먹고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싶었어요. 그런데 날이 너무 더워 포기했어요. 촬영하느라 땡볕에 시달렸는데, 굳이 놀 때까지 폭염에 시비 걸고 싶지는 않았어요. 한낮에는 여전히 해가 뜨겁지만, 해질 무렵이 되니 바람이 선선하네요. 양재천으로 자전거를 타고 나갔어요.

제가 좋아하는 자전거 코스 중 하나가 '하트 코스'입니다. 서울을 하트 모양으로 돈다고 해서 '하트 코스'인데요. 양재천 - 학의천 - 안양천 - 탄천 - 양재천 을 이어 원점회귀하는 자전거 길 구간입니다. 과천 종합 청사에서 인덕원역까지 차도를 달리는 것만 빼면 모두 자전거 전용도로로 이뤄진 코스구요. 도심을 벗어나 외곽지역까지 아우르기에 한적한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맛이 있어요.

오후 5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는데요, 저녁 7시반이 되니 캄캄해지는군요. 한 달 전 야외 촬영을 할 때는 8시 반이 되도록 날이 훤해서 밤씬을 찍지 못하고 하늘만 바라보며 있었는데 말이지요. 생각보다 해가 빨리 떨어지네요. 어두운 도로를 달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노면 상태가 잘 보이지 않아 사고의 위험이 있거든요. 이럴 땐 잽싸게 포기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갑니다. 도림천으로 빠져 자전거 도로 옆에 보이는 신도림역 앞에 자전거를 세워둡니다. 자전거는 잠궈두고 저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와요.

 

일요일 저녁에 신도림에서 다시 안양천으로 갑니다. 목동을 지나 여의도를 거쳐 반포까지 갑니다.  서울 자전거 여행은 이런 점이 좋아요. 힘들면 어디서든 가까운 전철역에 자전거를 보관하고 돌아오면 되거든요. 반포 한강공원, 해질무렵 풍경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넷플릭스로 다운 받은 <강철의 연금술사 : 브라더후드>를 봅니다. 10년 전 일본어를 공부할 때, <강철의 연금술사>를 열심히 봤어요. 2003년도에 나온 애니는 중반 이후 원작과 스토리 전개가 달라져서 중간에 시청을 포기했는데요.  완전판 <브라더후드>가 새로 나왔습니다. 원래는 넷플릭스를 통해 <종이의 집>이나 <깊은 숲 속에서> 같은 스페인이나 프랑스 드라마를 보며 해외 드라마 트렌드를 공부하려 했는데, 다시 <강철의 연금술사>에 빠져버렸어요. 역시 덕후의 기질은 어쩔 수가 없나봐요.

소설 - 영화 - 낮잠 - 글쓰기 - 자전거 타기 - 만화로 이어지는 거의 완벽한 하루가 이렇게 끝납니다. 즐거움을 하나하나 쌓아가고 싶어요. 그 즐거움이 언젠가는 새로 만드는 드라마와 새로 쓰는 책을 통해 드러나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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