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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딴따라 글쓰기 교실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글쓰기

by 김민식pd 2018. 2. 28.

(제작진의 피드백을 통해 수정한 최종 원고를 공유합니다~^^)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글쓰기


안녕하세요, MBC 김민식 PD입니다. 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7년째 매일 아침, 한 편씩 글을 써서 올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인생이 힘들 때마다 글을 썼습니다. 저는 학교에서는 왕따였고, 집에서는 아버지에게 늘 맞으며 살았어요. 괴로울 때마다 글을 썼어요. ‘오늘은 누가 나를 또 못생겼다고 놀렸다. 오늘도 아버지에게 맞았다.’ 다 적어둬요. 

힘들 때마다 글을 쓰다 보니, 나를 힘들게 하는 글도 많더라고요. ‘너 왜 아이들에게 늘 당하고 사니. 넌 왜 그렇게 공부를 못해서 아버지에게 맞고 사니.’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것도 힘든데, 나까지 나를 괴롭히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내가 쓴 글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비록 나는 지금 왕따지만, 언젠가는 멋진 어른이 되겠어.’ 일단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에 모의고사를 봤는데, 반에서 22등 했어요. 그 성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는 못 갈 것 같았어요. 나를 놀리는 친구들과 나를 때리는 아버지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무조건 서울로 대학을 가는 것이었어요. 이제는 일기에 놀리는 아이들 이름 대신 학습 진도를 기록합니다. 나를 괴롭힌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가 기울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6개월간 미친 듯이 공부하고, 학력고사로 반에서 2등을 했어요. 내신은 15등급에 7등급인데, 학력고사는 반에서 2등이었어요.

서울로 대학을 가면, 인생 행복할 거라 생각했는데, 뜻대로 안 됩니다. 소개팅 미팅 과팅, 스무 번 연속으로 차입니다. ‘난 왜 이렇게 연애가 안 될까?’ 괴로울 땐 또 글을 씁니다. ‘오늘도 소개팅에서 차였다. 왜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걸까? 그래, 그런 상대라면 차라리 안 엮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나를 바람맞힌 여자들에 대한 뒷담화를 일기에 쓰고, 그걸로 마음의 응어리를 풉니다. 일단 기분이 좀 풀려요. 그런 다음, 내가 쓴 글을 또 들여다봅니다. ‘아, 찌질하다, 찌질해. 이러니 연애가 되나? 외모는 꽝이어도 적어도 마음씀씀이는 더 커야 하는 거 아닌가? 내면의 매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괴로울 때, 책을 읽습니다. 연애는 혼자 못해도, 독서는 혼자 할 수 있거든요. 책에서 좋은 글귀를 만나면 받아서 써요. 독서량이 많아지니 사람을 만나도 말이 술술 잘 나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단단해진 생각이 말의 바탕이 되거든요.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게 되면, 저처럼 생긴 사람도 연애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 괴로울 때, 인상을 쓰지 마시고, 글을 쓰세요. 인상을 쓰면 주름이 남고, 글을 쓰면 글이 남습니다.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글쓰기의 3단계가 있어요. 

첫째, ‘오늘의 괴로움’에 대해 씁니다. 내가 겪는 지금의 괴로움에 대해 상세히 씁니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쓰고, 안 풀리는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 씁니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진솔한 나의 감정을 글로 써나가면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둘째, ‘내일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해 씁니다. 내가 쓴 글을 찬찬히 들여 봅니다. 인생이 힘들 때, 우리는 조언을 구합니다. 피드백을 듣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요. 이때 가장 좋은 조언자는 나 자신입니다. 타인이 해주는 충고나 지적은 상처가 될 수 있거든요. 내가 쓴 글을 읽고, 내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을 다시 글로 씁니다. 글을 쓴 나와, 읽는 나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제 내가 나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가 성장을 이끄는 피드백이 됩니다. 더 멋진 내가 되기 위해 그리는 꿈을 글로 씁니다. 더 멋진 내가 되기 위해, 책을 읽겠어, 영어를 공부하겠어, 운동을 하겠어. 이렇게 글을 쓰면, 현실의 괴로운 내가 글을 통해 미래의 멋진 나로 바뀌게 됩니다.

셋째, ‘내일을 위해 오늘 내가 기울인 노력’을 글로 남깁니다. 올해 목표가 독서라면 매일 독서일기를 씁니다. 목표가 영어 공부라면, 그날의 학습 진도를 기록합니다. 목표가 몸매 가꾸기라면 그날의 운동량을 글로 씁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매일매일 쌓이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도 고취됩니다. 매일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해서,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한 목표를 매일 반복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내 눈으로 확인하니까 스스로 멋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기는 겁니다. 저처럼 생긴 꼴뚜기도 본인이 멋있다고 믿으면 멋있는 겁니다.


 

1996년에 MBC에 피디로 입사했습니다. 공대를 나와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터라 방송연출이나 영상문법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일기를 썼어요. ‘불안하다. 과연 재미난 프로를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내가 만든 걸 볼까?’ 이제 그 글을 읽으며 나에게 피드백을 줍니다. ‘이렇게 불안해하지 말고, 매일 영화를 3편씩 보자. 1년에 500편의 영화를 본다면, 영상감각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회사 자료실에 가서 영화를 빌려 봅니다. 무슨 고시 공부하듯 하루 종일 영화만 봤어요. 매일매일 기록을 합니다. 이제 불안하지 않아요. 불안해할 시간에 재미난 영화를 찾아서 보니까요. 몇 달이 지나고 불안이 사라졌어요. 기록해놓은 걸 보면 자신감이 생겨요. 이렇게 열심히 영화를 봤으니 뭐라도 되겠지.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파업에 참여했다가 드라마국에서 쫓겨났습니다. 어느 날 국장이 전화해서 그래요. “민식아, 사내 게시판 봤니?” “아니요?” “응, 니 인사 발령이 떴더라.” 상의도 없이, 예고도 없이, 그렇게 20년을 피디로 일한 사람을 비제작부서로 쫓아냈어요. 괴롭지요. 또 글을 씁니다. 나를 쫓아낸 보도본부장 욕을 막 써요. 이러다 피디로서 나의 인생은 끝나는 게 아닐까? 불안하고 괴로워 미칠 것 같아요. 내가 쓴 글을 보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하루하루 괴로움에 내가 몸부림치는 게 저들이 바라는 일이다. 책이든, 영화든, 여행이든,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루하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합니다.

블로그에 독서 리뷰를 쓸 때, 어떻게 하면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를 고민합니다. ‘바빠서 책 한 권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 이 책에서 딱 한 줄을 뽑아 들려준다면 어떤 글을 고를까?’하고 고민합니다. 놀면서 등산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즐겁습니다. 즐겁게 산을 타면서도 기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멋진 코스가 있으면 사진을 찍고, 길 찾기 정보를 블로그에 남기고, 인근 맛집도 소개합니다. 그렇게 쓴 블로그가 이제는 둘레길 무료 가이드북이 됩니다. 수십 년 동안 취미 삼아 외국어 공부를 했는데요. 돈 안 들이고 영어를 잘 하는 방법을 블로그에 올렸어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2015년에 드라마국에서 쫓겨나 유배지로 발령이 났습니다. ‘퇴사를 할 것인가, 버틸 것인가.’ 고민을 하던 시절, 시트콤에서 우연히 이런 내용을 봤어요. 일을 때려치우고 나온 주인공에게 선배가 이런 말을 합니다. “버텨야한다. 잘리는 거야 할 수 없지만, 제 발로 나오지는 말아야 한다.” “버티면 언젠가 상황이 좋아질까요?” “아니? 상황은 좋아지지 않는다. 단지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딱! 하고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마치 극중 화자가 제게 들려주는 충고 같았어요. 이걸 블로그에 글로 썼어요. 그 글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프롤로그가 되었고요. 많은 분들이 그 글을 읽고 위안을 얻었다고 해요. 원래 저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쓴 글이었는데, 다른 분들께도 위안이 되었다니 감사한 일이지요. 저 글 덕분에 회사에서 버틸 수 있었고요, 다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괴로운 일도, 글로 남기면 즐거움이 됩니다.

독서는 나를 위한 행위이지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은 타인을 위한 행위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나를 위한 행위이지만, 맛집 리뷰를 올리는 것은 가게 주인과 손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나의 삶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순간, 우리는 성장할 수 있어요. 

저는 이과생이고 공대를 나와 작문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못 쓰는 글도 자꾸 써야합니다. 영어 잘 하는 방법과 똑 같아요. 어설프게 자꾸 초급 회화를 연습해야 언젠가 고급 문장이 나옵니다. 완벽한 고급 회화 표현이 떠오를 때까지 입 다물고 있는 사람은 절대 영어가 늘지 않아요. 못 쓰는 글이라도 자꾸자꾸 써봐야 글이 늡니다. 신통치 않은 글이라도 자꾸자꾸 블로그에 공개를 해야 글이 좋아집니다.

블로그가 좋은 게요. 초반에 글 솜씨가 부족할 때는 어차피 조회수도 낮고 방문객도 적어요. 글이 좋아질수록 읽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처음부터 죽이는 글을 쓰고, 그 글이 포털 메인에 걸려 대박이 나지는 않아요.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무엇이든 잘 하려면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여러 번에 걸쳐 고쳐 쓰면 됩니다. 글은 두고두고 고치면서 조금씩 좋아집니다. 고쳐 쓸 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방금 전에 쓴 글을 다시 보면서 고치기는 쉽지 않아요. 최선을 다해 쓴 글이라 금방 다시 보면 허물이 눈에 띄지 않거든요. 글을 쓴 나를 과거로 떠나보내야 합니다. 물리적 시간적 거리를 확보한 후, 다시 보면 이제 글을 쓴 나는 사라지고, 읽는 내가 남습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보면 예전에 쓴 글에 아쉬운 점이 드러납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한 달씩 글을 두고 끊임없이 고칩니다. 여러 편의 글을 비공개 상태로 두고 조금씩 다듬어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글 한 편을 공개로 돌립니다. 마음에 안 들어도, 하루 한 편은 무조건 발행합니다. 비공개 상태로 글을 고칠 때는 긴장이 없는데요, 공개로 돌리고 보면 꼭 수정할 대목이 보이거든요.

글을 쓰라고 하면,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글을 쓰나요?’ 합니다. 대단한 사람이라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니까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남에게 보이는 글을 매일 쓰려면, 책도 읽어야 하고, 생각도 많이 해야 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야 하고, 내가 보내는 순간순간의 의미를 담아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합니다. 너무 비범한 사람의 글은 재미가 없어요. 이질감이 느껴지거든요. 내가 잘 나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나를 휴먼 다큐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나를 묘사하는 글을 하루에 한 편씩 쓰는 겁니다.

공대생에, 영업사원, 통역사에, 예능 피디, 드라마 피디, 작가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쳐 왔는데요. 그중 되기 가장 쉬웠던 직업이 작가에요. 강원국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작가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쓴 사람이다. 아침에 내가 마음먹고 앉아 글을 쓰면, 나는 이미 작가입니다. 저처럼 생긴 사람도 아침에 거울을 보며, ‘넌 멋진 놈이야’라고 중얼거리면 멋진 사람이 되는 것처럼.

2011년에 쓴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어요. ‘드라마 피디로서 내게는 꿈이 하나 있다. 고교 시절 나를 왕따 시킨 두 녀석 이름이 준철이랑, 재국이다. 언젠가 드라마에 악역 이름으로 쓸 거다. 그 녀석들 이름을 전국민의 유행어로 만드는 게 꿈이다. 사람들이 욕할 때마다 이런 준철이 같은 놈, 이런 재국이보다 못한 녀석. 이렇게 욕을 하도록.’ 그 글을 쓴 후, 7년째 드라마 연출을 하지 못해, 기회가 없었는데요. 제 블로그를 본 친한 드라마 작가가 그 이름을 가지고 악역의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나오는 연쇄 살인마, 민준국. 그 친구들 이름과 제 이름을 조합해서 만든 배역이에요.

괴로운 일이 있으면 글을 쓰세요. 언젠가 반드시 즐거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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