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3일차
이번 사이판 여행은 일정이 좀 꼬였어요. 지난 추석은 유난히 연휴가 길었어요. 이럴 땐 숙소나 항공권 가격이 많이 오르지요. 그래서 연휴 1주일 전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는데, 회사 사정상 일정이 바뀌었어요. 좋은 호텔과 항공권을 저렴한 가격에 잡아뒀는데... ㅠㅠ 할 수 없이 민박을 잡았는데, 조식 해결이 어렵더군요. 사이판에서 괜찮은 식당은 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거든요. 결국 아침은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로 해결합니다.
옛날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사이판에 여행 온 적이 있어요. 269상품이라고, 26만9천원에 항공권, 숙식 다 포함된 저가 상품이었는데, 그때 월드 리조트에 가서 하루 잘 놀았거든요. 이번에도 거기서 놀까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입장료가 1인당 70불. 아마 아버지가 가격 보시면 경기 할 것 같아요.
슬쩍 운을 띄워봤지만 씨알도 안 먹힙니다. "수영장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고? 코앞에 바다가 있는데, 수영하려면 바다로 가지."
결국 아버지를 모시고, 하염없이 걷습니다. 돈 안쓰고 여행 하는 길은 도보 여행이 최고거든요.
그늘이 나오면 참 반갑습니다. 자전거 타는 이들도 가끔 보이는데, 자전거전용도로가 없어 여행자가 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너무 덥고 습해서 운동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드네요.
사이판이 세번째입니다. 논스톱 촬영하러 PIC에 온 적이 있고, 가족 여행 패키지로 온 적도 있는데, 매번 리조트 안에서만 노는 게 아쉬웠어요. 진짜 사이판을 보려면, 자유여행으로 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와서 느낀 점... 음... 사이판은 그냥 패키지였나? (아니, 어쩌면 사이판 자체가 한물간 여행지 일지도...)
배낭족에게는 물가가 만만치 않고, 딱히 볼 것도 많지 않아요. 발리나 오키나와는 자유여행이 참 좋았는데...
돈쓰기 싫어하는 아버지를 모시고, 가라판에서부터 1시간을 걸어서 월드 리조트가 있는 수세베 비치까지 갔어요.
카노아 리조트에 들어서는데 티 갤러리아 셔틀버스가 막 출발하네요. 면세점과 리조트 간 이동 무료 셔틀인데, 저걸 타면 숙소가 있는 가라판까지 갈 수 있어요.
해가 중천이라 1시간 걸어서 돌아가기는 힘들고, 택시를 타면 아버지가 요금 보고 기함할테니, 무료 셔틀을 타야겠어요. 버스는 1시간 뒤에 또 온답니다. 아버지를 설득해서 리조트 해변 라운지 바에서 쉬어갑니다.
콜라, 사이다, 각 3달러에요. 그늘도 없는 바닷가에서 쉬느니, 여기서 콜라 한 잔씩 하고 가자고 했어요. 아버지도 더운 날 걸어서 피곤한지 그러자고 하시네요.
저녁은 히마와리 마켓에서 산 도시락으로~ 여기서 먹은 연어회 덮밥은 정말 맛있었어요. 마나가하 섬에 피크닉 갈 때, 여기서 도시락 챙겨서 가면 좋아요.
1년에 한번씩 아버지와 여행을 다니며, 어른의 건강을 살핍니다. 어른들은 불편한 곳이 있어도 티를 내려고 하지 않거든요. 며칠씩 같이 먹고 자면서 살펴봐야합니다. 이제 곧 여든인데,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잘 다니고 잘 드십니다. 요즘도 매일 아침엔 동네 뒷산을 오르고, 오후엔 친구들과 바둑을 두신대요. 아버지의 건강 비결은 꾸준한 일상을 유지하는데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무더운 사이판에 와서도 하루 1만보는 거뜬히 걸으십니다.
다만 예년에 비해 잠이 늘었네요. 더 많이 주무십니다. 더워서 땀 식히려고 잠깐 숙소에 들르면 바로 깊은 잠에 빠지십니다. 아버지가 낮잠 자는 동안, 저는 조용히 책을 읽습니다.
연세가 들면서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불과 3년 전, 뉴욕 할렘가를 마구 헤젓고 다닌 분인데 여기서는 어두워진 후 다니는 걸 꺼리십니다. 사이판은 비교적 안전한 곳인데도요. 아버지와 여행을 다니며, 나이드는 과정을 들여다 봅니다. 해가 갈수록 체력이나 정신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낍니다.
"역시 여행이 최고여. 근데 기왕이면 젊어서 하는 게 더 좋아."
아버지의 말씀이 팍팍 와닿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더 자주 다니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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