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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이렇게 아름다운 배려!

by 김민식pd 2017. 5. 28.

지난번에 올린 '당신 탓이 아닙니다.'라는 글에 정일수 님이 댓글을 달았어요. 올리신 분의 허락을 구해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지난번 글을 읽고 보시면 더 좋습니다.

 

2017/05/26 - [공짜 PD 스쿨] -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하 정일수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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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PD작가님께서 “세상에서 나눌 수 있는 일자리가 기본적으로 부족한 게 문제이지, 당신 탓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바깥에서 답을 구하지 말아요. 그 누구도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쓰신 부분에서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삶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답을 찾았다'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운 거짓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PD작가님께서 강조하신 ‘당신 탓이 아닙니다’란 메시지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와 닿을 거라 생각됩니다. 마가렛 대처 이후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으로 모든 결과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 풍조에 우리 자신들이 지나치게 익숙해졌다는 점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조정래 작가 역시 최근 우리 사회 교육문제를 다룬 작품에서 “인생은 유한할 뿐인데 무한경쟁이라니....” 라고 질타한 적이 있지요. 무한경쟁의 사회적 구조는 명백한 사회적 산물이자 허위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실패와 좌절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행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자신의 게으름이나 부족함을 구조 탓으로 삼는 논리가 되어선 안 되겠지요.  

삶의 헤드스타트(headstart) 지점이 현저하게 차이를 보이는 상황과 조건이야말로 현실의 큰 벽이 아닐까요? 이에 대한 냉철한 자신의 현실 인식이야말로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 걸음일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포기나 불신이 아닌, 자신을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묻는 가운데 가장 명증한 답을 이끌어내기 위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마음이 번다하실 때마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다산 선생의 생가를 다녀오신다는 말씀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 역시 힘겹고 지칠 때마다 가슴 속에 모셔둔 또 한 분의 아버지이신 다산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곤 합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다산께서 제 고향 강진으로 유배를 오셨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저는 다산의 말씀 중에서 18제자 가운데 한 명인 윤종문에게 당부하는 글을 언제나 마음에 새깁니다. 

“만약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뜻을 두고서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치려고 한다면 죽어서 시체가 식기도 전에 이름은 벌써 없어지는 자가 될 것이니, 이는 금수일 뿐이다. 금수와 같은데도 원할 것인가.”

김PD작가님의 글에서 다산 선생의 가르침이 공명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위안과 반가움이 솟아나네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란 말씀은 위로와 용기를 동시에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산 선생의 말씀을 근거로 할 때 인간이 금수와 구별되(될수 있)는 한 가지는 바로 본능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공부를 통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뇌하고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됩니다. 

평소에 저는 ‘체험’과 ‘경험’을 구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영어 단어에서는 쉽지 않은 듯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단순히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가운데에서 ‘개인’과 ‘집단’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뼈를 깍는 듯 한 고통과 고뇌의 심연에서 건져낸 개인의 체험이 스며든 언어이야말로 가장 염결(鹽潔)한 진리의 의지라 아닐까요? 이 점이 단순한 수사(修辭)적 표현과 구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늦은 밤,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고 정리하며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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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멋진 글이지요? 저는 특히 이 글을 읽고 정일수님의 세심한 배려에 완전 감동을 받았답니다.

원래 제가 쓴 글에서 저는

'힘들 때, 저는 제 몸을 굴려봅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2시간 동안 정신없이 달립니다. 한강을 따라 달리다 하남을 거쳐 남양주 다산 유배지까지 갑니다.'

라고 썼거든요. 그런데 정일수님은

'마음이 번다하실 때마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다산 선생의 생가를 다녀오신다는 말씀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저 역시 힘겹고 지칠 때마다 가슴 속에 모셔둔 또 한 분의 아버지이신 다산 선생의 말씀을 되새기곤 합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다산께서 제 고향 강진으로 유배를 오셨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요.'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다산 생태공원을 저는 다산의 유배지로 착각하고 있었어요.

사진 속 팻말에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고 소개되어 있는데도 말이지요. 정일수님은 저의 착오를 바로잡아 주시려고 점잖게 에둘러 말씀해주신 거죠.

'피디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남양주는 다산 유배지가 아니라 생가랍니다. ^^'

라고 쓸 수도 있지만, 애써 장문의 글을 통해 제게 넌지시 일러주신 게 아닐까... 아, 그 마음씀씀이에서 또 배웁니다.

 

요즘 시대, SNS를 통한 글을 쓰기가 참 쉬워졌어요. 가끔 SNS의 글이 의도치않은 상처를 남기는 경우를 봅니다. 앞뒤 맥락을 생략한 채, 글의 짧은 오류만을 인용해 글쓴이를 공격하는 경우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즉흥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제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글을 못 쓰는 사람이 글을 쓰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자꾸자꾸 다듬어야 합니다. 저처럼 생각이 짧은 사람이 짧은 글을 휙 올리면 탈이 날 수도 있어요. 우선 블로그에 긴 글을 비공개로 쓰고, 몇번씩 글을 고치고 다듬습니다. 처음에는 장황하게 말하듯 쓰고, 다음에는 글에서 단어와 문장을 계속 덜어내고 줄입니다. 올리기 전에는, 독자에게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계속 살핍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기까지 평균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읽는데 하루면 충분하지만 글쓰기는 한 달이 걸립니다. 한 달 정도 계속 리뷰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합니다. 그런 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 글을 공개로 바꿉니다. 

독자께서 올리신 질문에 급하게 답하느라, 교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역시 글은 오랜 시간 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어요. 그리고 정일수 님에게서 다른 이의 실수를 일러주는 점잖은 방법을 배웠습니다. 누군가의 허물을 지적할 때는 딴얘기하면서 슬쩍 찔러주는 거구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망신주기는 도움이 되기보다 상처가 됩니다.

오늘도 한 수 배웠습니다. 

정일수 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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