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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일하는 '나'와 노는 '나'의 만남

by 김민식pd 2017. 5. 31.

'잘 노는 것이 지금 같은 저성장 고실업 위험 사회에서 살아가는 십대와 이십대에게는 창의적인 인생 밑천이다. 예전 같으면 "놀지 말고 공부해라, 놀지 말고 뭐라도 해라"는 어른들 말대로 하면 어느 정도 그만그만하게 성공했다. 같은 것을 대량생산하고 대량소비하는 사회였기에 벼락치기로 시험 준비라도 잘 하면 대부분 취직해서 비슷비슷하게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다수가 규격품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는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중략)

지금은 놀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꿔야 살 수 있는 시대다. 가급적 일찍부터 놀면서 살기를 바란다. 그 경험 속에서 막장 경쟁이 아닌 상호 돌봄의 창의성을 만나보길 바란다. 그 세계에서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만나고 삶의 스승을 만나고 마음 통하며 기댈 수 있는 동료를 만나보길 바란다.

놀 줄 알려면 놀아버릇 해야 된다. 또 놀아봐야 웃을 줄 알게 된다. 그래야 잘 살 수 있다.'

<대한민국 10대, 노는 것을 허하노라> (김종휘 / 양철북)

 

 

요즘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단 잘 노는 게 중요합니다. 창의성은 앉은 자리에서 머리 끙끙 싸맨다고 나오지 않아요. 끙끙대고 고민할수록 오히려 겁만 나지요. 마음 편하게 놀아야 새로운 무언가가 나옵니다. 10대에게 놀이를 권하는 이유는, 놀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깨우칠 수 있어요. 자꾸 놀아야 창의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만들어집니다. 취미 삼아 SF 번역을 하던 시절, 출판사 편집자를 만났어요. "피디님은 영어를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그 질문에서 나온 책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입니다. 창의성은 너와 나의 관계를 통해 독창적인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인데요,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나 자신을 다중인격체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드라마 PD로서 책을 쓰라고 하면 쉽지 않지요. '스타 PD도 아닌데 내가 뭐라고 연출론을 쓸까.' 그런데 드라마 PD인 나와, 영어 통역사인 내가 만나면 새로운 무언가 나옵니다. '통역사 출신 시트콤 PD가 말하는, 놀듯이 영어 공부하는 방법'. 통역사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통번역을 하라고 하면 재미가 없어요. 이럴 땐 통역사인 나와, SF 팬인 내가 만납니다. 그럼 SF 소설을 번역하게 되지요. 개인이 창의성을 기르는 좋은 방법은, 다양한 모습의 나를 만들고, 서로 다른 내가 만나 협업하게 만드는 겁니다. 

나를 어떻게 다중인격체로 만들 것인가. 먼저 '일하는 나'가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무언가 일을 하고 있겠지요. 저녁에 퇴근 후, '노는 나'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면, 적당히 설렁설렁 놀지 말고 미친듯이 해봅니다. '일하는 나'와 '노는 나'가 자꾸 만나야 합니다. 저의 경우, 드라마 PD와 독서광이 만나는 거지요. 그럼 '드라마 PD가 책에서 만난, 창의성을 기르는 방법', 이런 콘텐츠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더해, '공부하는 나'를 만들어도 좋아요. '일하는 나'와 '공부하는 나' 그리고 '노는 나'가 협업을 하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만들어집니다.

얼마전 알파고와 대결하던 커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분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부러운 일이에요. 알파고에 질 수도 있어요. 앞으로 인공지능에 밀리는 직업군이 많이 나올 겁니다. 인공지능에게 져도 좋으니 한판 붙어보고 싶을 정도로 미친듯이 좋아하는 일을 만드는 것이 관건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책을 잘 읽고 글을 써도, 독서와 글쓰기를 그만 둘 생각이 없어요. 이건 돈 한 푼 생기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예전에는 10대에게 죽어라 공부만 시켰지요? 암기식 학습으로는 인공 지능 시대에 알파고와 경쟁하기 힘들어요. 회사에서 죽어라 일만 한 40대도 앞으로 퇴직 후 그 일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아요. 시스템 속에서 매뉴얼에 정해진 일만 하는 사람은 100세 시대에 새로운 일을 만드는 것이 (요즘 트렌디한 말로 창직創職) 어려워요. 그래서 자꾸자꾸 놀아봐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하는 '나'와, 노는 '내'가 만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자고요. 일하는 나에게만 시간을 주지 말고요, 노는 나에게도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해주세요. 공부하는 아이만 칭찬하지 말고, 아이에게도 놀이를 허락해주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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