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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휴먼 다큐 주인공을 고르는 법

by 김민식pd 2017. 5. 23.

1980년대 어느 여학생이 MBC 공채에 TV PD를 지원합니다. 주위 친구들이 그러죠.

", MBC TV PD 여자는 뽑아."

원서를 내고 면접에 갔더니, 면접관이 묻습니다. '결혼해도 회사에 다닐 생각이냐'고. 80년대는 그런 분위기였나봐요. 이렇게 되물었답니다.

"인간은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를 모두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이라는 사적 자아실현을 위해 일이라는 공적 자아실현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MBC 최초의 여성 TV PD, 윤미현 PD의 이야기입니다.


길은 퍼스트 펭귄이 만듭니다. 속에 천적이 있는지 없는지 없기에 다들 물가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생선을 잡아내는 펭귄이.

 

MBC의 퍼스트 펭귄, 윤미현 선배가 책을 냈네요. 

<크리에이터의 질문법> (윤미현 / 라온북) 


'살아가는 순간 순간 우리는 스스로 벽을 만든다. 대학교에 강연을 가면 "제가 방송사에 지원해도 될까요?"라고 묻는 학생들이 많다. 학벌, 영어성적,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자신은 방송사에 지원하기에 부족하다고 벽을 세운다. 도전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다. 물론 도전해도 떨어질 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할 확률은 제로다.

MBC 입사할 얻은 경험은 나에게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누군가 된다고 말하면, 나는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잖아요"라고 대답한다. MBC에서 나의 무모한 기획들도 이런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다.'

 

(위의 책 서문 9)

 

 

불가능한 일이란, 단지 사람들이 이제껏 하지 않았던 일에 불과합니다. 무리한 도전이 오히려 즐거워요. 어차피 안 될 일이라면 도전해서 실패해도 상처받을 일이 없거든요. 쉬운 일만 하고 살면, 전투력을 키우기 힘들어요. 말도 되는 도전을 할 때는 이유가 있겠지요. 저의 경우는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누가 뭐라해도 합니다. 어차피 내 인생이니까요, 다른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니까요.


윤미현 선배가 입사한 다음해부터 MBC는 매년 여자 PD 뽑구요. 요즘은 심지어 성비가 역전하기도 했어요. 처음 입사한 윤미현 PD 그만큼 일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퍼스트 펭귄은 일을 잘 합니다. 추진력도 있고, 용기도 있고, 무엇보다 기준이 높은 사람이거든요. 남들이 정해놓은 세상의 기준은 신경쓰지 않아요.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밀어붙입니다. 일을 잘 할 수 밖에 없어요. 


윤미현 피디는 휴먼 다큐로 일가를 이뤘어요. 대가에게 휴먼 다큐 제작법을 잠깐 배워봅시다. 주인공을 선정할 때, 5가지 질문이 중요하답니다.

  1. 위기의 구조가 있는가?
  2. 주인공의 캐릭터가 매력적인가?
  3. 적수 혹은 괜찮은 반대자가 있는가?
  4. 나만의 새로운 시각이 있는가?
  5. 스토리가 현재 진행형인가?

 


책을 읽을 때, 저는 어떤 책이든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믿습니다. 교양 피디가 쓴 책이 드라마 피디에게도 좋은 공부입니다. 드라마 대본 선정의 기준이 바로 이 5가지거든요. 일반 독자라면 다섯 가지를 들어 '나는 휴먼 다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볼 수 있어요. 그러면 삶의 위기가 두렵지 않아요. 나를 휴먼 다큐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핵심 포인트가 되니까요. 무엇보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나는 주인공을 선정할 , 내가 사랑할 있는 사람을 선택한다. 주인공을 사랑한다는 것은 맹목적으로 사람의 좋은 점만 그린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의 결점까지 이해할 있다는 뜻이다. 또한, 주인공과 함께 촬영을 하는 동안 즐거울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는 뜻이다. 주인공을 선정할 프로그램을 위해 의무감으로 혹은 년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함께 나누며 년을 함께 있는 사람을 선정해야 한다.'

 

(124)


예전에 '일밤'에서 '러브하우스'를 만들던 시절,  힘들었어요. 코미디는 익숙했으나, 감동 다큐의 문법이 어려웠거든요. 만약 그때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이 달에 나온 책을 15년 전의 내게 줄 수는 없으므로, 미래의 피디들, 앞으로 크리에이터의 길을 꿈꾸는 이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걸로 대신합니다. ^^


윤미현 선배, 연출력이나 경력으로 보면 지금 보직 부장 해야할 분인데, 몇년째 심의실에서 근무 중입니다. 아직도 노동조합의 조합원 자격을 포기하지 않으셨거든요. 그 결과, 현업에 있는 MBC 후배들은 좋은 데스크와 선배를 잃었지만, 그동안 이런 책을으니, 한국의 다큐멘터리스트들은 좋은 스승을 얻었군요. 을 읽고나니, <휴먼 다큐 사랑>를 만든 윤미현 선배가 <휴먼 다큐 사랑>의 주인공 못지않게 멋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좋은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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