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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일단 한번 해봐야 합니다.

by 김민식pd 2016. 5. 19.

드라마 PD로 살면서 저는 '우주의 기운'이라는 걸 믿습니다. 표절은 아닌데, 꼭 표절처럼 비슷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가 함께 개봉하는 걸 보고, '어쩌다 헐리웃 제작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다 혜성 충돌이라는 소재에 꽂히게 된 걸까?' 궁금했어요. 다른 이들에게 동시에 같은 영감이 꽂히는 '우주의 기운' 같은 게 있나봐요.

 

'유미의 세포들'이란 웹툰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우리의 뇌 속에는 각자의 역할이 다른 세포들이 모여 사는데 (사랑 세포, 거짓말 세포, 여배우 세포, 출출 세포 등) 어느 세포가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기분이나 선택이 달라진다는군요.

(만화 '유미의 세포들')

 

어디서 본 듯 하다고요? 그렇지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떠올랐습니다. 표절의 오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웹툰은 2015년 4월 1일부터 연재되었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2015년 6월 19일에 미국에서 개봉하고, 한국 개봉은 7월 9일입니다. 연재가 시작하기 오래전부터 구성안과 스토리를 짜고 또 캐릭터 작업을 마쳐야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작가가 기획한 건 연재보다 한참 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재미난 웹툰이 만약 연재를 조금 늦게 시작했다면, 어땠을까요? 영영 볼 수 없었을 지도 몰라요. 웹툰을 한창 기획하고 있는데 극장에 가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봤다면 작가가 멘붕에 빠졌을 거예요. 하필 똑같은 아이디어가 먼저 영화로 나오냐... 세상에 이런 기막힌 우연이... 피눈물을 삼키며 접었겠지요. 결백을 주장하며 연재를 밀어붙여도 표절 논란에 시달려 작가의 사기나 창작열은 꺾였을 거예요. 불과 몇달 먼저 나온 덕에 이 훌륭한 웹툰이 우리를 만날 수 있었던 거지요.

 

'나는 고작 한번 해봤을 뿐이다' (김민태 / 위즈덤하우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 소개는 내일 다시 하고요. (아직 반 정도 남았어요.^^) 책에서 무엇이든 '일단 한번 해보라'고 권합니다. 전 이게 창작자에게 들려줄 수 있는 최고의 메시지라고 믿습니다.

 

주위에서 만나는 드라마 작가나 배우들 중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이들이 많습니다.

중학생 시절, 집에 세탁기가 없는데, 세탁기를 살 형편도 아닌 거예요. 마침 사연을 보내면 세탁기를 상품으로 주는 라디오 프로가 있었답니다. 재미난 사연 하나를 써서 보냈는데, 덜컥 뽑혔더랍니다. 다음부터 상품 타려고 사연을 계속 보냈는데, 자꾸 떨어졌대요. 뽑히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거듭했답니다. 같은 이름으로 계속 보내면 안 되니까 동네 아줌마들의 사연과 이름을 빌리고 글은 자기가 대신 써주고, 뽑히면 상품을 나눴답니다. 그렇게 계속 사연을 수집하고 각색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라마 작법 공부를 한 거지요. 드라마 작가란 주위의 재미난 사연을 수집하고, 그걸 이야기로 푸는 사람이거든요. 지금 그분은 1년에 10억 이상을 버는 드라마 작가님이 되셨어요.

연예인도 마찬가지에요. 반에 진짜 예쁜 아이가 있는데, 학교 교지에 나올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싫다고 뺐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옆에 있던 자신이 대신 찍었는데 교지 표지 사진을 보고 누가 모델 한번 해보라고 해서 연예계에 들어섰답니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일단 한번 시도해보는게 더 중요합니다. 표현되지 않은 재능은 그냥 머릿속 숱한 망상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유미의 세포들'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작가가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일단 한번 해봐야'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시간 있냐고 물어 봐야하고,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일단 뽑아들고 첫 페이지를 넘겨봐야 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일단 구성안 초안이라도 뽑아서 주위에 돌려야합니다.

유창한 영어를 쓰며 세계 일주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단 지금 영어 문장 하나라도 외워야합니다.

(네, 마지막 문장은 그냥 슬쩍 끼워넣었습니다. ^^)

 

일단 한번 해보자고요.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소개하려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옆길로 샜네요. 만화를 보면서 마음 수양하는 기분입니다. 짜증이 나거나 우울할 때, 그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혹시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그러나?' ^^

 

공짜로 즐기는 웹툰과 함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유미의 세포들' 1화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651673&no=1&weekday=wed

 

첫 화만 봐도 느낌이 팍! 옵니다. 재미있겠구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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