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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글쓰기를 부탁해

by 김민식pd 2016. 6. 7.

2016-124 정의를 부탁해 (권석천 / 동아시아)


페이스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글이 바로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의 칼럼입니다. 눈밝은 제 친구들이 좋아하는 글이지요. 이분의 칼럼을 읽을 때마다 감탄합니다.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그분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나왔다기에 찾아 읽었어요.

책에서 읽은 글쓰기 초식 중 몇가지를 공유합니다. 그중 첫번째.

'칼럼은 편견이다'

저의 경우, 항상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자기검열이 발목을 잡습니다. 집에서 모시고 사는 마님은 가끔 시비를 겁니다. "그거 일반화의 오류 아냐? 그건 그냥 당신 생각일 뿐이지." 맞아요. 그냥 제 생각일뿐이지요.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고, 모두가 아는 내용이라면 굳이 내가 글을 쓸 이유가 없어요. 어차피 나만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의 목적입니다. '칼럼은 편견이다' 저 한마디에서 글을 쓰는 용기를 얻습니다.

자, 그렇다면 편견일 수도 있는 내 생각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할까? 서문의 두번째 대목에서 힌트를 찾아봅니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 중에 그랬답니다.

"우리의 라이벌은 다른 영화가 아니라 개그콘서트, 게임, 스포츠, 등산, 예배당"이다.

'신문 칼럼도 영화, 페이스북, 무한도전, 히든싱어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으로 소설체, 독백체, 대화체, 고어체로 글을 세웠다 부쉈다를 거듭했습니다.'


(위의 책 서문 중)


 

그래요, 글의 관건은 재미입니다. 편견에 불과한 내 생각을 남들에게 읽히려면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칼럼 한 편을 쓰기 위해, 권석천 기자는 정말 다양한 포맷을 읽고 그 속에서 패러디의 재미를 끌어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가 칼럼을 잘 쓰려면 결국 몸을 잘 부려야합니다.

 

1. 발로 뛰고,


신문에 난 작은 사회면 기사를 보면, 재판정을 찾아가고, 교도소에 면회 가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합니다. 책을 보고 느꼈어요. 신문기자는 발로 기사를 쓰는구나.

2. 손으로 반복하고,


법대를 나왔지만, 법조인이 되기 싫어 신문사에 입사했는데, 법조전문기자를 시킵니다. 내키지는 않지만 계속 기사를 써내려갑니다. 10년 이상 한 분야에 대한 글을 반복적으로 쓰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전문 영역을 개척해갑니다.

3. 눈과 귀가 부지런해야한다.


"선배는 법조 전문기자라면서 드라마 추적자도 안 봤어요?"

하는 후배의 핀잔에 권석천 기자는 주말에 16부작 드라마 전편을 몰아서 봅니다. 영화 '암살'과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본 후, 계나(소설 주인공)가 안윤옥(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독립운동가)에게 띄운 편지 형식으로 칼럼을 씁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즐기는 것을 항상 부지런히 쫓습니다. 낯선 콘텐츠를 즐기고, 그것들이 일으키는 화학작용을 관찰하여 글로 써내려갑니다. 

 

이 분의 책을 보면, 기자가 어떻게 글을 써야할 지 고수의 초식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끝으로 기자 지망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

 

'언론의 공신력이 낮아진 데는 이편저편으로 나뉘어 진영논리의 스피커 노릇을 해온 영향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자들은 같은 길을 가는 동료라는 의식을 잃은 채 특정 진영의 종군기자, 개별 언론사 샐러리맨이 돼왔다.

그래서 나는 언론이란 이데아에 청춘을 바치려는 젊은이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대견하면서도 착잡하다. 젊은 기자들이 떠나는 이유가 비단 경제적 대우나 불투명한 미래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진실의 사도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온 그들이 자긍심 갖고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한 탓도 크다.

늦기 전에 근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세계를 번혁하는 힘"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호모사피엔스는 생물 종의 평균 연령 400만 년 중 20만 년이 지났을 뿐이다. 미술과 음악은 수만 년간 이어져왔지만 문자가 발명된 지는 고작 5000년이다. 문학은 끝났다? 창피하니까 그런 말은 그만두라. 실로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동료들이여, 신문은 끝났다고 징징대지 말자. 읽고 쓰는 인류가 있는 한 활자매체는, 문자로 뉴스를 주고받는 방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언론의 본질로 다가설 수 있는 기회인지 모른다.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면.'

(위의 책 348쪽) 

 

피디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영상 미디어의 시대이지만, 저는 모든 콘텐츠의 기본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는 문자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기자와 피디의 세계가 그리 다르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까요.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다. 이기는 게 정의다.' 이 지랄 같은 상식을 깨는 건 슈퍼 히어로 한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어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존재다.'

(에필로그 중에서)

 

피디나 기자 지망생 여러분들에게도 정의를 부탁합니다.

부디 살아남아서 그대가 생각하는 정의가 그대의 지면위에 이루어지기를.

권석천 기자의 칼럼에서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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