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가 생각한 블로그 이름은 '왕따도 즐거운 세상'이었습니다.

아니, 그런 제목의 책을 쓸 생각이었어요. 저는 고교 시절 따돌림을 심하게 당했습니다. 왕따의 삶은 개미지옥이에요. 뭘 해도 아이들이 놀립니다. 같이 놀다가 실수를 하면 "야, 찐따가 금 밟았다!" (영화 '우리들'을 보며 그 시절 생각이 많이 나더군요. '우리들' 영화 참 좋아요. 추석 연휴에 찾아보셔도 좋을듯. 연출이 그냥 예술입니다~ 동료 드라마 피디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어요.)

놀다가 술래가 되면 "야, 찐따가 술래다." 누군가 잡으면 "야, 찐따가 반칙했다!" 결국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포기하고 도서실에 가서 책을 읽었습니다. "야, 책벌레다, 책벌레!" 뭘해도 아이들이 놀리니까 차라리 편해지더군요. '그래, 어차피 니들이 나랑 놀아주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잘 놀아야지 뭐.' 그러다보니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딴따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따돌림을 주도했던 녀석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 친구들 덕에 '인생은 어차피 혼자 가는 것. 다른 이의 시선보다 자신의 기준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귀한 가르침을 그 어린 나이에 얻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책으로 써서 어린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왕따도 즐거운 세상' 그런데 아내가 반대하고 나섰어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아빠가 왕따였다고 소문이 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겠느냐고. "야, 니네 아빠 찐따라며? 그럼 너는 찐따 딸이냐?" 전 처음에 아내의 반대가 농담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지하더군요. 절대 그런 책을 쓰면 안 된다고. 그때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아, 저것이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구나. 기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불안함. 남에게 밑보일 빌미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불안감.' 결국 블로그 제목을 바꿨어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 운율은 맞췄지요. 소심한 반항. ^^ 

(이 제목대로 첫 책을 냈더니 그때 마누라는 또 이러더군요. "아니, 책 제목을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고 지으면 누가 돈 주고 그 책을 사겠어?" 아니, 도대체 어쩌라고! ㅋㅋㅋ)

문유석 판사님이 쓴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며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가능한 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런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바람은 그리 커다란 욕망이 아닐 것이나, 이만큼을 바라기에도 한국사회는 그리 녹록지 않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문화 풍토는 늘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경쟁하며 살도록 하면서도 눈치껏 튀지 않고 적당히 살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사회생활"이라 여긴다. 조직 또는 관계로 얽히고설킨 것이기에 그런 풍토로부터 웬만해서는 쉽사리 벗어나기조차 어렵다. 그러하기에 한국에서 "개인"으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외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책 소개 글)

 

어린 시절 왕따를 겪은 후, 저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나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자'고 결심했습니다. 요즘 저는 은둔자의 삶을 삽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책을 읽고 길을 걷고 글을 씁니다. 한창 육아의 재미에 빠져있는 터라, 야근하는 날을 빼면 저녁 약속을 잡지도 않아요. 술 담배 커피 골프를 하지 않기에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어요. 이렇게 살다 가고 싶어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추석은 민족의 명절이지만 어떤 분들에겐 스트레스입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온 한국 사회의 오랜 전통 탓이지요. 오랜만에 만난 친척도 관심과 애정을 빙자하여 묻습니다. "그래서 너는 반에서 몇 등 하니?" "직장은 어디에 갈 생각이냐?" "만나는 사람은 있고?" "결혼했으니 어서 집 장만해야지, 언제까지 월세 살 거니?" "애는 안 낳고?" 마음먹고 열심히 한다고 성적이 오르지도 않고 (다 열심히 하니까요.) 직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저성장 시대니까요.) 연애와 결혼 출산 그 어느 것하나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그냥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버렸네요.) 그런데도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만 긍정하며 사는 분들 탓에 즐거워야할 명절이 괴로운 일상이 되기도 합니다.

다 애정에서 하는 말이려니, 웃는 낯으로 씨익 웃어주시고, 돌아서서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다음 추석에는 그냥 혼자 외국으로 배낭 여행을 떠나세요. 조상 차례도 안 지내는 불쌍놈이라는 소리 들어도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자기 인생만 잘 살면 됩니다. 나 한 몸도 챙기기도 버거운데 가족과 조상과 국가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왕따도 즐거운 세상입니다. 아니, 오히려 왕따가 더 즐거워요. 세상의 이목을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까. 작년 추석, 아버지를 모시고 3주간 뉴욕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조상님에 대한 감사는, 자손이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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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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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race 2016.09.13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능한 한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그런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
    라는 문장이 오늘 저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최대한 다르게 생각하자고, 나답게 살자고 수없이 다짐하지 않으면 또다시 한국의 여성상에 저를 맞춰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에 더 집중하는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해요, 피디님^^

    그런데.. 하트는 어디로 갔나요?^^;;

  2. 저녁노을함께 2016.09.13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 다 크면 꼭 왕따를 제목으로 책 써주세요.
    왕따 문제가 아이들을 정말 힘들게합니다.
    pd님 같은분이 책을 쓰셔야 세상이 바뀌어요.
    힘겨운 아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겁니다.
    pd님 화이팅!

    (왕따경험을 극복 못해 몇년째 방황하고 고통받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ㅠㅠ. 왕따와 관련한 자료 첨부하여 청소년을 타겟으로 책 부탁드려요.)

    • 김민식pd 2016.09.13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선생님!
      꼭 쓰고 싶어요

      그러자면 우선 제가
      아주 즐겁게,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요

      뭐야,
      저 아저씨 어려서 왕따라더니
      그래서 저렇게 찌질한 어른이 된거야?
      그런 소리는 안 듣게끔 ^^

      앗,
      이것도 남 눈치 보는건가요? ^^

  3. 첨밀밀88 2016.09.13 08: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빌게이츠가 연설할때 한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주변에 공부밖에 모르는 바보가 있다면 잘 보여라.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그 바보밑에서 일할수있을지 모르니까.

    참 슬기롭게 왕따를 잘 극복하신것 같습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리구 왕따도 즐거운 세상
    이책 대박 예감이요 ㅋㅋ

    모두다 즐거운 추석 되세요^^

    • 김민식pd 2016.09.13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빌 게이츠 얘기 대박이네요

      하긴 지금 미국의 IT 산업은 다 괴짜들이 이끌고 있지요

      자신의 꿈에 충실하게 사는게
      가장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4. 한다혜 2016.09.13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 블로그 글 잘 읽고 있어요!
    항상 멋지시지만
    이번 글 너무 근사해요!
    처음으로 댓글 달아요:)

  5. 섭섭이 2016.09.13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늘 글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느끼지만 PD 님 생활이나 생각이 저랑 많이 같아서 깜짝 깜짝 놀랍니다.

    "술 담배 커피 골프를 하지 않기에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도 아쉬울 게 없어요.
    이렇게 살다 가고 싶어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하고 싶어요."

    전 오늘 이 문장이 공감이 많이되네요. 저도 술, 담배나 골프 같은 취미가 별로 없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게 딱히 필요 없는 생활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어떨때는 내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는건가? 내일부터 골프나 낚시라도 배우러 다녀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오늘 다시 PD님 글을 읽으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걸 하면서 살면 됐지라는 내 생각이 틀린게 아니구라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되네요. 뭔가 생각이 복잡하고 정리가 안되었을때 PD 님이 써주신 글을 읽다보면 힘이 나고 용기가 생기는거 같아 좋네요 ^^.

    PD님 그럼 올해 추석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여행 가시나요 ? ^^



    • 김민식pd 2016.09.13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올 추석도 멋지게 보내는 중입니다
      다음주 포스팅을 기대해주세요

      보시고
      배 아파도 전 몰라요 ^^

    • 섭섭이 2016.09.13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내는 중입니다" 라고 답변주신걸로 봐서는 어디로 이미 떠나신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어떻게 추석 보내셨을지 벌써 기대되네요. 배 아프지 않을만큼 살살 포스팅 써주세요 ^^

      그럼,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


  6. 크케효 2016.09.13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글 중 공감 가는 내용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조상님에 대한 감사는, 자손이 하루하루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서 나온다고 믿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김민식pd 2016.09.13 1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사 모시느라
      불행한 후손들이 너무 많아서요
      시댁 스트레스로
      결혼이나 육아를 멀리해서
      후손을 낳지 않는게
      조상님들은 더 걱정일테니까요 ^^

  7. 게리 2016.09.13 15: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아가신다음에 제사를 열심히 지내는것보다는 부모님 살아계실때 잘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추석.... 온가족들이 모여서 즐거움을 나누는 날이지만
    선을 넘어버리면 그때부턴 모두가 힘듭니다.
    아기까지 잘 낳아서 어린이로 잘 키우고있는데... 애 하나로 어쩌려고 그러냐고 큰일난다며
    연봉은 얼마나 되냐고 연봉말해 보라고..
    남편 연봉은 얼마냐 집값은 얼마냐 ........

    이번추석에는 도를 넘은 오지랍으로 명절을 망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8. 정현주 2016.09.15 2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을 살아가는데 많은 지혜와 팁을 얻어가고있어요~ 삶을 살아가는 모습 닮고 싶습니다~^^

  9. 한결선임 2016.09.16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땐 그랬겠지만...
    친구들과는 다른 우월한 잘생김...
    우월 유전인자로인하여
    시기 질투의 방식을 그렇게 표현한듯하네요^^
    사진을 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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