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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세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by 김민식pd 2016. 9. 9.

어제 아침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한강을 구보중인 미군 부대 장병들을 만났어요. 어둑어둑한 새벽길을 달리는 사람끼리 동지라는 생각에 씨익 웃음을 주고받으며 지나쳤지요. 생각해보니, 내가 사는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세상이 참 많이 좋아졌네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시위 구호가 "미군 철수, 양키 고 홈!"이었어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두환의 양민 학살을 미국이 묵과했다는 의혹도 있었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의 군사대결 탓에 한반도의 분단이 유지된다는 생각도 컸거든요. 미군을 향한 우리의 눈길도 곱지 않았고, 외국에서 한국을 보는 눈길도 좋지는 않았어요. 최루탄과 화염병이 오가는 살풍경한 서울의 모습이 CNN 뉴스를 연일 장식했으니까요. 1992년 유럽에 갔을 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시위 진압과 인권 탄압이 일상이고, 북한이랑 전쟁하는 그 나라?' 하면서 나를 안쓰럽게 보았어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요. 최루탄 연기 자욱하던 신촌의 대학가는 이제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한국이 국제적인 관광 명소가 될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했습니다. 확실히 예전보다 세상이 좋아졌어요.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감사할 줄 알아야지!'하는 어르신들도 있어요. "불평불만분자는 다 빨갱이야!" 하지만 지금 이대로 딱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덕에 세상이 발전한 건 아닙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어느 시기의 현실적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생각과 입장이 강한 사람을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현실적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생각과 입장이 강한 사람을 진보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일제강점기에는 강점체제를 청산하려는 노선, 즉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독립운동에 선 사람은 진보주의 노선에 선 사람이요,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일제강점체제를 별수 없이 인정하고 그것에 안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수주의적 입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내 인생의 역사 공부' (강만길 / 창비) 110쪽)

 

독립운동가가 진보요, 친일파가 보수라면, 지금의 보수세력이 왜 그렇게 건국절에 목을 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의 사상적 아버지를 복권시키려는 거지요. (일부는 생물학적 아버지도 있겠지만요. ^^) 세상은 그냥 좋아지지 않아요. 자신의 삶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좋아진겁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부 독재를 하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 덕에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겁니다. 민주화 운동에 손가락질하던 사람들 덕이 아니고요. 

 

 

 

 

저는 독서 못지않게 여행을 좋아합니다. 책을 너무 많이 읽다보면 이상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책을 읽다가 '아, 자본주의는 이게 문제야..' '아, 역사를 저렇게 망가뜨리면 혼이 비정상이 되는데.' 하면서 분개하다보면 인생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은 경계해야겠지요.

때때로 책을 놓고 여행을 다닙니다. 멀리 떠나지 않아요. 아침 출근길에 자전거로 한강 시민 공원을 달리는 것도 여행이요, 반나절 서울 둘레길 산책도 여행입니다. 한들한들 핀 코스모스 길을 달리며, '아,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감탄을 합니다. 며칠 전에는 퇴근길에 한강 시민 공원 반포 지구에서 하는 야외 콘서트 리허설을 즐기다 오기도 했어요.

 

1987년, 방배동에서 왕십리에 있는 한양대까지 자전거로 통학했어요. 그때는 자전거 도로가 없어서 차도 위를 달려야했지요. 그때 비하면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참 좋은 세상입니다.

매일 독서일기를 통해, '인공 지능 시대의 실업' '기계가 지배하는 시대' '노후 파산' 등을 얘기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너무 많이 읽어 피곤한 삶이 되는 건 경계합니다. 책이 그리는 이상을 염원하면서도 눈 앞에 있는 현실을 즐기는 것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허핑턴포스트에서 읽고 공감한 스티븐 핑커의 인터뷰입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문득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요. ^^ 

http://www.huffingtonpost.kr/2016/09/03/story_n_11711138.html

허핑턴의 기사에는 영어 원문 링크가 있습니다. 영어 독해 공부삼아 원문을 읽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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