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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영화 '부산행' 천만 돌파 기념 리뷰

by 김민식pd 2016. 8. 11.

지난번 약속드린 대로 '부산행' 천만 관객 돌파 기념 리뷰입니다.

(스포일러는 자제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영화 '부산행'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영화에 대해 아쉬워하는 분은 두가지를 지적합니다.

1. 왜 항상 남자가 여자를 구하느냐. 스테레오타입이다.

2. 왜 한국식 신파로 끝을 내느냐. 엔딩이 오글거린다.

 

제가 사랑하게 된 이 영화를 위해, 오늘 쉴드를 한번 쳐볼까 합니다. ^^

 

1. 왜 여자는 늘 구원의 대상인가.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하나가 마동석인데, 워낙 걸출한 마초 캐릭터지요. 좀비와 싸우는 마동석의 육체가 주는 어떤 쾌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유미는 왠지 목숨 걸고 구하고 싶은 이미지가 있고요. 이건 뭐 좀비 영화의 공식을 따라가려면, 피할 수 없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유와 그 아이의 관계지요. 하필 아버지(남자)가 딸(여자)를 구하니까요.

 

원래 극중 공유의 아이는 아들이었답니다. 저는 영화 중반까지도 아들인줄 알았어요. '쟤는 남자아이가 왜 치마를 입고 다니지?'하다가 '아, 딸이었구나...'했습니다.

(저는 공대를 나왔는데, 학교에 털털한 차림에 꼭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애가 하나 있었어요. 노교수님 한분이 계속 갸우뚱 하면서 그 친구를 보시더니, 학기 말에 그러시더군요.

"난 말이야. 자네가 여학생인줄 알았다네."

네, 여학생한테 말이지요. ^^)

 

극중 이혼한 펀드매니저 공유는 바쁜 와중에 아들의 양육까지 떠맡습니다. 딸이라면 이혼한 부인이 아이를 데려갔을 것 같아요. 아들을 사내답게 키우겠다는 욕심에 공유가 아들을 서울에 붙들고 있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연상호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원래 극본상 아들이었는데, 오디션을 보다 김수안에게 꽂힌 거예요. 김수안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서 누구라도 욕심이 났을 거예요. 그래서 아이의 성별을 바꿉니다. (저는 소품팀이 촬영 현장에서 당황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뭐야, 아들 생일선물이라고 게임기를 준비해왔는데, 딸로 바뀌었네? 이런... 왜 아무도 얘기를 안 해준거야?') 그때문에 아빠(남성)가 딸(여성)을 구하는 전형적인 구도가 되어버린 거죠. 옆에서 마초 마동석까지 날뛰니, 더욱 그런 인상이 짙어지겠지요.

원래 대본대로 남자아이로 갔으면, 그런 비난이 줄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2. 엔딩이 뻔한 신파인가.

 

네, 이 대목에서는 저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렵니다. 저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냥 운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목 놓아 울 뻔 했어요.

아이가 터널을 걸어갑니다. 캄캄한 이 어둠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요. 좀비가 있을지, 총을 든 군인이 있을지, 엄마가 기다리는 안전지대가 있을지. 그래도 일단 나는 걸어야합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난 5년간 저는 터널 속을 헤매는 것 같았어요. 이 터널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어쩌면 이제 터널이 나의 삶의 공간이고, 터널 속을 헤매는 게 원래 내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

 

터널 속을 걸어갈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를 좀비가 아니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네, 아이가 한 그 행동, 을 저도 하려고 합니다.

 

 

극중 좀비들은 모두 화가 많이 난 사람처럼 보여요. 분노에 휩싸이면 이성적 판단은 멀어지지요. 화가 날수록, 우리는 즐겨야합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런 행위를 해야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웃고, 떠들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렇게 살아야지요.

터널을 헤매는 순간에도...

 

영화 '부산행'은 분노 유발자들 사이에서, 분노를 터뜨리며 사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엔딩에 감춰두고 있어요.

 

아무리 화가 나도, 우리 좀비처럼은 살지 말아요.   

인생을, 인간답게 즐기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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