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합격 계급'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9.01.17 출판도 협업이다 (8)
  2. 2018.12.05 과거 제도의 3가지 폐해 (5)
  3. 2018.11.30 좌절의 시스템, 공채 (9)

제가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는, 그 사람의 열정에 반했을 때입니다.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성실함 때문이에요. 소설 창작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마치 노동 화가 반 고흐 같아요. 매일 꾸준히 읽고 글을 씁니다. 특히 그는 독자에 대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요. <당선, 합격, 계급>을 읽으며 놀란 대목이 있어요. 

2016년~2017년 나는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할 때마다 설문지를 돌렸다. 소설을 고를 때 각 요소들에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0~10점으로 표시해 달라는 내용의 설문이었다. (중략)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반 독자들이 소설을 고를 때 영향을 받는 요소 (점수를 많이 받은 순서대로)

1. 이야기의 소재

2. 제목

3. 친구나 지인의 평가

4. 표지 디자인

5. 작가의 대표작

6. 작가의 인지도

7. 작품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

8. 작가가 바로 직전에 쓴 작품

9. 서가나 매대에 자리한 위치

10. 책에 함께 실린 문학평론가의 해설

(후략)  

(<당선, 합격, 계급> 344쪽)


작가가 직접 여론 조사까지 하며 소비자 동향을 살피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소설을 고를 때 영향을 받는 요소에서 제 눈길을 끈 건 제목, 표지 디자인, 매대 위치였어요. 이건 작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모두 출판사의 공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처음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제목을 출판사에서 제안했을 때, 약간 걱정이 됐어요. '음... 반말이네? 제목을 보고 반감을 사면 어떡하지? 영어책 한 권 읽어본 적도 없다, 어쩔래? 하고 시비걸면 어떡하지?' 

책 출판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책의 제목과 디자인, 마케팅은 전문가인 출판사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제목도 좋다고 했어요. 그 다음 책의 디자인을 봤을 때도 내심 실망했어요. 저자인 제 이름보다 추천사를 써준 김태호 피디의 이름이 더 크게 나왔더라고요. ㅠㅠ^^ 심지어 인터넷 리뷰에는 김태호 피디가 쓴 책인줄 알고 샀다는 글도 있고... ㅋㅋㅋ 그래도 편집자님에게는 '디자인 좋은데요? 고맙습니다!' 하고 메일을 보냈어요. 

책이 매장에 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교보 문고에 갔을 때는 책을 찾지 못해 당황했어요. 영어 학습서 분야를 뒤졌거든요. 책은 엉뚱하게 자기계발서 분야에 비치되어 있더라고요. 책의 제목, 표지, 매대 위치, 무엇하나 저자인 제 뜻대로 된 건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이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출판과 책 마케팅에 있어서는 편집자가 전문가이니 무조건 전문가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평소 저의 드라마 연출론입니다. 감독은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사람이다. 대본에 대해서는 작가의 의견을, 연기에 대해서는 배우의 의견을, 앵글에 대해서는 카메라 감독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드라마 피디로 제가 먹고 사는 건 저보다 잘 난 사람을 주위에 모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덕이지요.  

수많은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이뤄지는 드라마와 달리, 책은 저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는 작업이라 생각하고 책을 썼는데요. 이것도 협업이더군요. 출판 전문가인 편집자들과의 협업으로 책을 만들고요. 궁극의 협업은 독자들과의 협력입니다. 독자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하고, 독자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작가의 일입니다.

설문조사의 결과, 독자가 책을 고를 때 '전문가'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장강명 작가는 놀라요. 타인의 의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나 지인의 평가지요. 왜 전문가들의 추천은 외면을 받는 걸까요?


나 역시 언론이나 서점 등에서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면 다른 작가나 명사들이 같은 코너에서 어떤 책을 추천했는지도 살피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서 '아, 이 책 읽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 때보다는 '아, 저 사람이 자기 취향 고상하다고 자랑하고 싶었구나.'라고 느낀 적이 더 잦았다. 

(위의 책 345쪽)


서평을 쓰면서 가끔 하는 고민이에요. 저의 취향을 자랑하기 위해,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읽지는 말자고요. 재미없는 책을 읽기도 힘들고, 리뷰를 쓰는 건 더 힘들거든요. 책읽기와 글쓰기의 즐거움을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최대 목표입니다. 더 잘 쓰고 싶은데 쉽지는 않지요.

한국의 서평 문화가 척박한 이유에 대해 밀리의 서재 서영택 대표는 장강명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문 서평가든 블로거든 서평을 써서는 먹고살 수가 없죠.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서영택 대표는 파워블로거의 글이 부실한 것은 글을 열심히 써봤자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론가의 글이 어려운 것은 그 경제적인 보상을 출판사가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블로거들이 다른 독자를 통해 직접 돈을 벌 수 있게 된다면 더 공들여 서평을 쓰게 되지 않을까? 평론가들은 작가나 다른 평론가가 아니라 일반 독자의 관점을 고려하게 되지 않을까?

(위의 책 377쪽)


블로그에 서평을 연재하는 이로서, 고민하게 하는 글이었어요. 경제적 보상과 관계없이 즐거움에 집중하고 싶어요.  독자와의 만남 행사 때마다 설문조사를 했다는 장강명 작가 이야기가 놀라웠어요.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책을 고르는지 꾸준히 공부하는 작가의 자세. 배우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시고, 좋아요를 눌러 꾸준히 반응해주시는 블로그 독자 여러분도 제게는 은인입니다. 여러분의 댓글과 반응에서 또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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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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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또기 쭘마 2019.01.17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완성된 모습에
    그런 이유들이 있었군요. 출판사가 그런 세세한 면까지
    관여하는줄 이제야 알았네요.ㅎㅎ

    피디님께서 즐거워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는 책들은 진심이 되어 전달되니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2. 꿈트리숲 2019.01.17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쓰기 기술>을
    읽지 않았더라면 책은 온전히 작가의 역량이라
    생각했을거에요. 책은 작가, 출판사, 그리고 독자의
    협업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각자 3할의 역할을
    투입하고 나머지 1할은 타이밍과 운에 맡기는거죠.^^

    피디님은 블로그 누적 발행 글 수가 어마어마 하다보니
    댓글만 모아도 족히 책 한권은 될 것 같아요. 출판사가
    관심있어 할지 모르겠지만. . . 독자들의 설문 1위인
    '이야기의 소재' 면에서 신선하지 않나요?ㅎㅎㅋㅋ

    오늘 태그를 보니 장강명 작가님은 글 쓰는 맛이 날 것 같네요.~~

  3. 섭섭이짱 2019.01.17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전문 서평가든 블로거든 서평을 써서는
    먹고살 수가 없죠.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봐요."

    음... 이 문제가 결국 국내 출판시장이 작아서
    그런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거기에 독서 인구도 매년 줄고 있다고 하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서평가들이 돈 벌 수 있는
    환경이 적어지는게 원인이 아닐까라는.....

    그래도 요즘 보면 유투브에서 책 서평하는 사람은
    꾸준이 느는거 같아요.. 블로그 보다는 유투브가
    좀 더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거 같긴 하더라고요.
    이 기회에 피디님도 유투브에 ^^

    하여간 장강명 작가도 그렇고
    피디님도 독자를 위해 꾸준히
    공부하시는거 유익한 책들
    내주신거에 감사드려요. ^^

  4. 아리아리짱 2019.01.17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피디님 통해 장강명 작가님을 알게 되었어요!
    피디님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은 행복한 영향을 받아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 댓글들에 또 피디님이 에너지 충전이 되신다니 서로 상생하는 공동체가 되는군요! 함께함이 늘 감사합니다.^^

  5. 샘이깊은물 2019.01.17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는 책에 관심은 많았지만 ‘읽어야 되는’ 책에 대한 부담이 마음 한구석에 있어서 독서를 진심으로 즐기며 하는 순간이 적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면서 하루에 잠깐씩 생기는 귀하디 귀한 저만의 시간에 제가 ‘읽고 싶은’ 책을 펼쳐 들어 야금야금 읽다보니, 독서의 재미가 아주 꿀맛입니다. 꾸준히 지속시키고, 조금씩 더 자라나게 하는 동력 중에 즐거움과 재미가 빠질 수 없습니다용^^
    뱉어내지 않을 수 없어서 적어두는 단상이나 영감, 일기 역시 의무가 아니기에 계속 할 수 있는 것이고요.

  6. 안천사 2019.01.17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장강명 작가님의 글에 계속 빠지져서 머무시고 계시네요. 덕분에 저도 좀더 장작가님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 출판도 협업이지만 블로그도 협업인거 같아요.
    매일 읽고 싶은 글 써주시고 여러분이 댓글 남겨주시니 블로그가 항상 숨쉬며 살아 있는 듯 느껴지네요. 오늘도 즐겁게^^

  7. 성인 2019.01.17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책을 이어주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데 사람도 책도 들여다 볼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도 업무환경(!)이 이렇다보니 책을 볼 기회가 있는 부분에 늘 감사할 뿐입니다.

    작가와의 만남에서 설문지를 돌려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장강명 작가님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늘 꾸준히 쓰고 읽는 김민식 작가님의 글을 보며 늘 다짐만 하고 있습니다.

    글이 꼭 저한테 말을 건네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갈수록 조직에서 고립되어 갑니다. 소통의 부재로 정신건강이 염려될수록 글에 의지하게 됩니다.
    늘 도움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8. littletree 2019.01.17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오늘 마침 이 책을 다 읽었어요! 저는 사실 소설 공모전이나 출판 등등에 관심이 없었는데, 피디님의 소개에 이끌려 읽게 됐어요. 실질적인 조사결과와 냉철한 시각에 어느새 설득 당하기도 하고 르포인데도 어떤 대목에서는 큭큭 웃기까지 했어요. '독서공동체'를 제안하는 대목에서 피디님의 블로그가 바로 떠오르더라구요. 순수한 열정으로, 공짜로 진정성 있는 서평을 올려주시는 피디님과 그에 대해 댓글로 소통하는 분들. 그안에 함께할 수 있어서 은근 뿌듯함까지 느꼈어요^^*

저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장르를 안 가리고 다 봅니다. 헐리웃 블록버스터, 유럽의 예술 영화, 다 봅니다. 일본의 공포 영화나 태국의 액션물도 봐요. 가리지 않고 다 보니, 중요한 건 선택이지요.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라, 예전엔 영화 잡지를 꼬박꼬박 챙겨봤어요. 영화평론가들의 별점을 보고 영화를 골랐거든요. 요즘은 영화를 보기 전에 예매 순위를 먼저 봅니다. 전문가들이 골라주는 영화보다, 대중의 취향이 저랑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법관들이 내놓는 판결이 시민들의 법정서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신문에 실린 기사보다 독자들이 달아놓은 댓글이 더 명쾌할 때가 있어요. 사법고시며 언론고시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는 이들의 수준은 왜 점점 내려갈까요? 개인이 아니라 조직의 일부가 되고 권력의 일부가 되는 순간, 그들의 감각은 부패하기 시작하는 걸까요? 나만 불편한가요?

'문학상과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나?' 라는 질문을 던지는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 민음사)에 보면 작가는 '조선 시대 과거 제도의 3가지 폐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사회적 낭비가 심했다. 조선 시대 문과 급제자의 나이는 평균 36.4세였다. 10대 중반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쳐서, 합격하는 데 20년이 걸린 셈이다. 60대, 70대까지 시험을 준비하는 장수생도 있었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시험을 치기도 했다. 

문과 시험을 치는 사람이 정조 때에 이르면 10만 명이 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응시자가 20만 명을 넘었다. 최종 합격자는 한 해 서른 명 남짓이었다. 청년 수십 만 명이 한창 일할 나이에 수십 년 동안 공부에만 매달렸다. 실생활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유교 경전 공부였다. 그걸 외국어 원전으로 공부해서 외국어로 답안을 쓰는 훈련만 주야장천 받았다.

둘째, 정작 필요한 인재는 뽑지 못했다. 최종 합격자들이 과연 관료로서 유능한 인재들이었을까? 좋은 성적을 받아 높은 자리에 임명되는 사람일수록 암기력과 논리력, 그리고 중국어 독해와 작문 실력이 뛰어나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과학기술이나 경제, 민생은커녕, 그 시대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행정에 대해서도, 군사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사회생활을 오래 했다거나 처세에 능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들은 현실을 몰랐고, 현실을 제대로 살피는 능력도 키우지 못한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사라진 명나라를 섬기기 위해 초강대국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는 따위 헛소리를 진지하게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중략)

셋째, 과거제도는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았다. 이 제도는 블랙홀처럼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빨아들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시험만 잘 치면 순식간에 기득권 핵심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약속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유능한 청년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중소 규모의 지적, 산업적 프로젝트에서 관심을 거두고 중앙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합격자들은 그 질서의 가장 열렬한 수호자가 되었다. 고작 생원이나 진사 정도의 자격증을 얻은 이조차 그랬다. 나중에 사람들은 고위 관료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원과 진사가 되기 위해, 봉건 질서에서 자기 신분을 겨우 한두 칸 더 끌어올리기 위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노력했다. 입신양명, 출세라는 가치가 삶의 목표가 되었다. 

(<당선, 합격, 계급> 99쪽)


어쩌다 기자가 기레기라고 욕을 먹고, 검찰이 검새라 불리게 되었을까요? 대학 시절, 법과 정의를 논하고,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기위해 언론이나 법조계에 투신하겠노라 결심한 이들이 조직의 구성원이 되는 순간, 가장 보수적인 체제의 수호자가 됩니다. 법관이 법을 농락하고, 기자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광경은 그래서 생기죠. 

저는 언론사 입사 시험을 언론고시라고 부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 부르는 순간, 그 구성원들은 자신이 새로운 권력을 얻은 사람이라 생각하거든요. 권력은 부패하기 쉽습니다. 아래를 보기보다 위를 보고, 경영진의 눈치를 보고, 경영진은 권력의 눈치를 보죠.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자기 검열이 없다면 부패를 막기는 쉽지 않아요.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향해 촛불의 대중들은 분노했어요. 촛불 집회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언론에 대한 야유와 분노는 반성하지 않는 집단을 향한 반성의 촉구입니다.

기자 지망생들을 상대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기를 쓰고 그 안에 들어가려고 노력 할 게 아니라, 바깥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기자가 아니라도 블로그로 글을 쓸 수 있고, 피디가 아니라도 유튜브로 영상을 만들 수 있으니, 일단 콘텐츠를 만드는 연습을 해보라고요. 

조직을 바꾸겠노라 다짐하고 들어간 이들이 조직과 함께 부패하는 걸 보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직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바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기존 시스템이 적폐로 불리는 시절입니다. 공채에 대한 환상은 깼으면 좋겠어요. 장강명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사회적 낭비가 심하고요, 필요한 인재를 뽑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무엇보다 사회의 창의성을 가로막거든요.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저물고 있어요. 이제는 소셜 미디어의 시대입니다. 거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조직보다, 콘텐츠를 지닌 개인의 힘이 더 강해지는 시대가 옵니다. 나만의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 고민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2018/11/30 - [공짜 PD 스쿨] - 좌절의 시스템, 공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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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보리 2018.12.05 0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성적만이 아니고 스펙을 보니 좀 유능한 사람을 뽑나 했는데, 토익만점자의 영어 듣고 말하기 어렵다는 고백 들으니 더 고달파졌더라구요. 진짜 역량을 키워야겠어요. 읽고 글쓰고 외국어 하고요

  2. 섭섭이짱 2018.12.05 08: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맞아요. 요즘은 소셜미디어 시대라
    언론사 기사도 많이보지만 SNS 에서 올라온
    개인이 만든 콘텐츠를 더 많이 보고 듣는거 같아요.

    소셜미디어 덕분에 피디님을 알게 되다보니
    소셜미디어가 왜 중요한지 잘 알거같아요. ^^

    오늘도 좋은 생각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3. 꿈트리숲 2018.12.05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흔들림 안에 있으면 그 흔들림을 모르는 거라는
    책 속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이 전부라 여기며
    살기에 계급이 생기고 권력이 생기나봐요.

    고시 준비생들에게는 세상이 온통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로만 가득차있고,
    권력속에 있으면 세상이 온통 자신을 지지한다
    여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재를 뽑는 그들이 좌절의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한다면 우리가 달라지는 수밖에 없겠어요.
    눈치보는 것에서 눈치 주는 대중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소비해주는 것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생산자로 바껴야 좌절의 시스템이
    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 김수정 2018.12.05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강명 작가의 표백, 뤼미에르 피플, 5년만에 신혼여행을 최근에 읽었는데
    특히 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저런 구상을 할 수 있을까, 저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하고 참 궁금했어요.
    매력적인 작가세요. 소설과는 다르게, 5년만에 신혼여행은 옆집 일상을 보듯 편하게 읽었어요. 당선, 합격, 계급도 몹시 궁금해지네요. 좋은 책과 작가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 littletree 2019.01.15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피디님의 독서일기를 통해 장강명 작가님 책들을 읽고 있어요. 이번 책도 4장까지 읽었는데 저릿저릿 다가오는 대목이 많네요. 좋은 책과 작가님을 소개해주셔서 제 일상이 점점 다채로워져요. 감사한 마음 가득합니다♡

방송사에 다닌다고 하면 주위에서 "아, 그 어려운 언론고시에 합격하셨군요."라고 해요. 그럼 웃으면서 머리만 긁적입니다. 저는 이게 언론고시인줄 몰랐어요. 고시라고 생각했다면 지원할 엄두도 못냈겠지요. 제가 입사한 1990년대엔 토익 점수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MBC 지원한 사람도 있어요. 저는 아주 운좋게 합격했어요. 평소 책을 많이 읽은 덕에 논술이나 면접은 어렵지 않았고요. 합숙 평가에 가서는 춤을 추면서 장기 자랑도 했어요. 최종 면접에 올라가서는 임원들을 개그로 웃겨드렸고요. 합격 통보를 받고는 저도 놀랐어요. 방송사는 사람을 참 재미나게 뽑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2000년 이후, 경쟁률이 치열해진 탓에 언론고시라고 불리지요. MBC 드라마 신입 피디 경쟁률은 이제 1200 대 1입니다. 1명이 붙고, 1199명이 탈락하는 경쟁, 이건 모든 사람을 좌절시키는 시스템이지요. 

저는 장강명 작가의 열성팬입니다. 그는 연세대 도시공학과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에 합격했어요. 전공과 관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지요. 기자 생활을 하며 틈틈이 글을 써요. 신인 작가 공모전을 준비하기 위해 연차 휴가를 내고 틀어박혀 소설을 씁니다. 기자로 일하며 당선되고요.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남들이 '언론고시'라고 부러워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집니다. 노동하는 자세로 성실하게 소설을 쓰지요. 2010년 이후 한국 문단에서 문학 공모전 최다 수상자가 됩니다. 아, 이런 삶, 정말 멋지지 않나요? 

<열광금지 에바로드>며, <댓글부대>며, <한국이 싫어서>며, 재미난 소설도 많지만 그가 쓴 르포도 있어요. 바로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 민음사).

합격과 당선을 통해 기자나 소설가라는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선 장강명 작가가 한국 공채 문화를 들여다보고 내린 결론이 있어요. 

'문학상과 공채는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나'

저 역시 궁금한 주제에요. 진로 특강을 다니며, 피디 지망생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아요. 열심히 하라고는 하지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몇 년 째 재수를 하는 이도 있고요. 좌절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요?

문학 담당 기자가 장강명 작가에게 전화를 합니다. 신춘문예 공모전 지원자들에게 선배 문인으로서 조언을 해달라고.

"떨어져도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공모전은 소개팅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꼭 내 탓이 아니더라도 인연이 안 닿을 수 있는 거고, 안 되면 다음 소개팅 준비하면 되는 거라고요."

말을 마치고 난 뒤에야 '아,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은 '청년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나를 몰라봐 주면 그 원고로 세계문학상에 또 응모하면 된다'는 식의 답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중략)

"음...... 마감에 쫓기면 무리하게 결말을 바꾸거나 요행을 바라면서 퇴고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이번은 아니다, 다음 공모전을 노리자, 그런 생각으로 원래 쓰려던 글을 쓰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당선, 합격, 계급> 14쪽)

96년에 입사 면접을 볼 때가 기억납니다. 5인의 지원자가 집단면접을 들어갔는데요, 들어가서 시작한 순간 분위기 파악했어요. '아, 잘못 왔구나...' 제가 4번째 앉았는데요. 1,2,3번 지원자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이 분들 평소 TV를 엄청 보더라고요. 거의 문화 비평가 수준으로 당시 방영중인 MBC 프로그램의 장점과 특징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어요. 멘붕이었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TV를 거의 안 보거든요. 그 시간에 책을 읽지. 고민이 들었어요. 지나가면서 몇번 본 유명한 프로에 대해 마치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할까? 그러다 면접에서는 정직이 최선이라던 책의 구절이 생각났어요.

"김민식 씨, 올해 본 TV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죄송하지만, 저는 TV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 평소에 독서를 즐깁니다."

"TV도 안 보는 사람이 PD는 왜 지원한 겁니까?"

"저처럼 책을 즐겨 읽는 사람도 볼 만한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만약 짧은 지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면, 저의 꼼수는 읽혔을 거예요. 입사하고 나서 알았어요. 피디가 평소에 하는 일이 거짓과 참의 구분이더라고요. 드라마 피디가 연기에 대해 NG와 OK를 내는 기준은 진실되어 보이느냐, 아니냐에요. 교양 피디가 인터뷰를 편집하며, 주로 보는 건 화자가 진실을 말하느냐 아니냐겠지요. 십년 넘게 상대가 거짓말하는지 아닌지 들여다보는 걸로 먹고 산 피디들이, 대학 갓 졸업한 20대 청년이 면접장에 앉아 능청스럽게 늘어놓는 거짓말에 속을 리가 없어요. 결국 책의 충고를 따르길 잘했지요. 어떤 순간에도 진실하라는 말.

상대에 맞춰 나를 바꾸기 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최악의 소개팅이 뭔지 알아요? 차이는 게 아니에요. 안 맞는데도 속이고 사귀는 겁니다. 소개팅에서는 A라고 해놓고, 막상 같이 살아보니 B인 경우이지요. '난 죽어도 B랑은 못 살아' 하는 사람이라면 속은 거잖아요. 진실을 말하는 게 최선입니다. 면접이든, 소개팅이든.

장강명 작가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뭔가 아쉽다고 느껴요. 작가 지망생들에게 뭔가 실질적인 조언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지요. 방대한 자료 수집과 오랜 취재를 통해 써낸 책이 바로 <당선, 합격, 계급>입니다. 

기업 공채와 문학 공모전이라는 좌절의 시스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런 시스템이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입시 - 공채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노련한 기자 출신 소설가 답게 그는 한국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질문을 던집니다. 피디나 기자 시험을 준비하는 이라면 추천하고 싶고요. 작가 공모전을 지망하는 분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책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당!

(이 책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다음 기회에 더 할게요.)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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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보리 2018.11.30 0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잉~ 오늘 아침에사 위로가 되네요~적지않은 나이에 강의촬영 제안 와서 갔는데 너무 얌전해서 타겟층과 맞지 않다고 ㅠㅠ 명랑한척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너무 진실했어요 ㅠㅠ

  2. 농업사랑 2018.11.30 0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좋은 작가, 좋은 책을 알게 되어 너무 좋네요

    저도 바로 읽고 싶네요. 진실의 힘을 마음에 다시 새깁니다

  3. 꿈트리숲 2018.11.30 0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에 피디가 잘 하는 일이 구분이라는 말씀이 최초의 인류도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나갔다는 것과 오버랩됩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건 고대 인류에게는 생존에 유불리의 구분이 아닐까 싶네요.

    순간에는 진실이 아플지 몰라도 멀리보면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에 어떤 순간에도 진실을 말하기를 충고하는거겠죠.

    좌절의 시스템이 있는 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음 얘기 기다려집니다.~~^^

  4. 섭섭이짱 2018.11.30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역쒸 이 책 언제쯤 얘기하시나 기다렸어요. ^^
    저도 읽고나서 여러 생각이 들었죠.

    맞아요. 면접이든 뭐든
    진실을 말하는거 중요한거 같아요.
    근데 가끔 뭐가 진실인지 헷갈리기도 하네요.

    빨리 피디님의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오늘이 벌써 11월 마지막날이네요.
    아직 31일 남은 올해...
    마지막 날까지 행복하고 즐거운일들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5. 루나 2018.11.30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매일 PD님 블로그 글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마음에 와닿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 어떤 순간에도 진실하라"는 글을 다이어리에 적고 마음에 새겼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지만요.

    아침공기가 많이 차갑네요~감기 조심하세요 ^^

  6. 린스마일 2018.11.30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 팬이예요.처음 댓글 남기는데 좋은글과 좋은책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글을 읽을수록 뭔가 하고싶은 의지가 생기고 힘을 얻습니다.신권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쯤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7. 로즈마리 2018.11.30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우연히 세바시를 통해
    알게되었어요
    관심있게 들어서 블로그까지
    읽게되었어요.
    작가님 얘기들으며 저에 생각들이
    오버랩되어 스치되네요.
    공감되는 말씀들 많았고
    실천하고픈것 들도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늘~~축복속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8. 헤니짱 2018.12.01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엊그제 이직을 위한 면접을 보고왔는데~ 피디님 글 읽으면서 면접때 했던 제 말들과 행동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었어요~ 제가 어느정도 진실되게 했는지.... 정직과 진실로 저의 인연 새로운 직장을 만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9. 알콩달콩맘 2018.12.04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시험에 합격해서 직장에 들어왔지만 갈수록 계층의 사다리가 좁아지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문제에 대해 이책을 읽고 생각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