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소비지상주의 시대, 우리의 갈 길은?

by 김민식pd 2016. 3. 9.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이야기 하나 더.

다른 동물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가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고 믿는 능력덕분이다. 그 능력 덕에 우리는 더 큰 집단을 이룰 수 있고, 하나의 국가나 민족을 이룰 수 있고, 종교와 신앙, 그리고 윤리를 통해 집단을 통제할 수 있었다. 과학과 문화 역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믿을 것인가에 따라 발전해왔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란 이데올로기이기도 한데, 사피엔스의 현재 지배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다. 책의 막바지에 나오는 '쇼핑의 시대'에서 한 대목.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 상어가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질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누군가 제품을 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조업자와 투자자는 함께 파산할 것이다. 이런 파국을 막으면서 업계에서 생산하는 신제품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항상 구매하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류의 윤리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소비지상주의다. (중략)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잔치를 베풀어 실컷 먹게 하고,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스스로 죽이게끔 한다. 검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중략)

이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소비자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무수히 사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말이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들을 고안하고, 이미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불필요하게 갱신하는 새 모델을 발명한다. (중략)

소비지상주의 윤리가 꽃피었다는 사실은 식품 시장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전통 농업사회는 굶주림이라는 무시무시한 그늘 속에서 살았다. 오늘날의 풍요사회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비만인데, 그 폐해는 가난한 사람이 (이들은 햄버거와 피자를 잔뜩 먹는다) 부자들보다 (이들은 유기농 샐러드와 과일 스무디를 먹는다) 훨씬 더 심각하게 입는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 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소비지상주의 윤리와 사업가의 자본주의 윤리를 어떻게 일치시킬 수 있을까? 후자에 따르면 이윤은 낭비되어서는 안 되고 생산을 위해 재투자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답은 간단하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오늘날 엘리트와 대중 사이에는 노동의 분업이 존재한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품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 푼 한 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중에서) 

 

아, 정말 명쾌하게 세상 만사를 이야기로 풀어간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 정국 하에서 빈부의 격차는 날로 커져간다. 이건 전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똑같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중에서 한국은 유독 좀 심한 편이다.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의 책을 읽고 있다. 과격한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한 샌더스의 반격. 

"미국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소득의 대부분을 최상위 1퍼센트가 가져가는 상황이야말로 과격합니다. 또한 (월마트 소유주) 한 집안의 경제적 부가 하위 1억 3000만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 이런 미국의 현실이 과격한 것입니다."

'사피엔스'를 읽다 보니 자본주의란 필연적으로 경제의 양극화를 가져오는 이데올로기구나 싶다. 물론 경제가 굴러 가기 위해서는 소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냥 두면 남은 이익을 투자로 돌리지,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배분하거나 사회에 환원하지 않는다. 쉬운 해고가 용이해지면 더 많은 청년을 고용하기보다, 오히려 수익률을 높이고 자본의 축적을 도모할 것이다. 그게 자본의 생리다. 그걸 정부 여당이라고 모를까? 몰라서 '쉬운 해고 노동 개악'을 외치는 걸까? 자본주의 시대에서 돈이 세상의 주인이다. 권력은 자본의 논리에 동원되기 쉽다. 


주주 자본주의에서는 1원 1표지만, 민주주의에서는 1인 1표다. 자본에 의해 끌려가는 정치 권력을 그나마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투표다. 그점에서 나는 미국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샌더스의 행보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흔히 미국이나 일본의 현재가, 한국 사회의 수십년 후 미래라고 말한다. 지금 미국과 일본을 들여다보면 우울하다. 특히 재무장을 추진하며 우경화되고 있는 아베의 일본은 특히 더 그렇다. 아베의 일본보다는, 버니 샌더스의 미국에 희망을 걸어본다.

 

'사피엔스' 600페이지가 넘는 대장정이었지만, 사실 책을 읽은 건 이틀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책을 덮고도 고민은 몇날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소비지상주의의 시대, 짠돌이는 어떤 이데올로기로 스스로를 무장해야 하나?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사피엔스'에서 얻은 고민, 버니 샌더스에게 물어보련다.

그런 점에서 다음에 읽을 책은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이다.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들의 테마파크 3. 글쓰기  (1) 2016.03.15
책들의 테마파크 2. 세계일주  (0) 2016.03.10
마지막 늑대, 해리 보슈  (4) 2016.03.08
책들의 테마파크, 1 죽음  (2) 2016.03.07
법륜 스님의 '행복'  (1) 2016.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