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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미안해말고, 여기서 먹어

by 김민식pd 2015. 12. 4.
94년 호주대사관 영어 경시대회 1등 상품으로 왕복항공권이랑 체재비를 타서 한 달 반 동안 호주 배낭 여행할 때 일이다. 호주 동해안을 따라 시드니에서 골드코스트를 거쳐 케언즈까지 갔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울룰루 (아이어즈 록)에 갔다. 세상의 배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울룰루는 일본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배경이 된 곳이다.

20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거기까지 갔으니 울룰루 정상까지는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에 이른 아침에 등산을 시작했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위산이라 오전에 등반을 마쳐야한다. 오후가 되면 지열이 오른 바위 표면이 뜨거워져 힘들다. 기본 체력에는 자신이 있던 터라 신나게 속도를 내어 올라갔다. 숙소에서 친해진 서양애들이랑 같이 출발했는데, 덩치 큰 친구들을 추월하는 게 재밌어서 애들을 제치면서 미친듯한 속도로 바위를 올랐다.


그렇게 오버페이스하는 바람에 어느 순간 구토가 치밀더라.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한숨 돌리면 회복하겠지만, 울룰루는 통으로 된 바위라 나무 그늘이 없다. 오르는 길목이 정해져있어 퍼져있으면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만 된다. 해가 사막 한가운데 떠오르면 탈수와 열사병의 우려도 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정상 정복을 포기해야 했다. 그 먼 울룰루까지 가서 정상은 밟지도 못하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기는 커녕, 토만 쏠리다 내려왔다. ㅠㅠ  


이번 파타고니아 트레킹은 무탈하게 잘 마쳤다. 배낭을 메고 지고 걸어야하는 또레스 델 파이네 W 구간도 완주하고, 피츠로이까지 왕복 20킬로인 엘 찰텐 트레킹 구간도 무사히 마쳤다. 20대의 나보다, 50이 다 된 지금의 내가 산을 더 잘 탄다고 믿는다. 왜? 욕심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 때, 나는 더이상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앞사람을 제치면서 가지 않는다. 오히려 뒤에서 누가 따라오면 잠시 옆으로 비켜나 길을 양보하면서 천천히 간다. 남과의 진도를 의식하지 않는다. 잰걸음으로 종종거리며 오른다. 산에서 돌계단을 오를 때 한번 시험해보시라. 2칸씩 성큼성큼 오르면 속도는 빠를지 모르나, 금세 다리가 아파 힘들어진다. 작은 걸음으로 1칸씩 꾸준히 올라야 피로가 적다. 남들이 한걸음에 오르는 돌계단 한칸도 2번에 나누어 오른다. 계단 바로 턱밑까지 한걸음, 거기서 계단 오르는데 한걸음, 이렇게 두 걸음에 오른다. 이렇게 작은 걸음으로 오르면 높은 산이라도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내리막길도 마찬가지다. 큰 걸음으로 뛰듯이 내려오면 관절의 무리가 온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퇴직 후 산악회를 쫓아다니며 일년 사시사철 내내 전국의 명산을 다니셨다. 그때 스틱도 쓰지않고 달리듯이 산을 타는 모습에 날다람쥐라는 별명도 있었다는데, 그러다 관절에 무리가 가서 지금은 그 좋아하는 산을 오르지 못하신다. 내리막에서도 작은 걸음으로 종종 거리며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미끄러지지 않고 관절에 무리도 가지 않는다.


젊어서는 뒤에서 누가 나를 제치고 가는게 싫어 서둘러 산을 올랐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남의 페이스는 신경쓰지 않는다. 등산은 기록 경기도 아니고, 승부를 겨루는 경쟁 종목도 아니다. 남과 경쟁하듯 산을 오르면 결국 가장 강력한 적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면 거기서 게임오버다. 나는 이제 남과 경쟁하지 않는다. 경쟁하지 않으면 훨씬 더 즐겁게 오래오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공부, 하면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린 시절, 공부가 괴로웠던 이유는 경쟁의 부담 때문이다. 명문대 입학이라는 상대적 경쟁 목표를 정해놓고 다들 거길 향해 달려가다보니 스트레스가 심했던 거다. 경쟁속에서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어느 교수님이 그러더라. 한국의 대학생은 모두가 불행하다고. 지방대생은 서울지역 대학생을 부러워하고, 서울지역 대학생은 명문대생을 부러워하고, 명문대생은 의대생을 부러워하고, 의대생은 아이비리그 유학생을 부러워한다고. 경쟁에는 끝이 없고, 행복도 없다.


어려서는 맞으면서도 하기 싫었던 공부, 요즘 난 혼자서 한다. 영어책은 맞으면서 배웠지만, 일본어는 취미삼아 배운다. 공대 다닐 때는 물리나 화학이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과학책 읽으며 물리 이론 공부하는 게 취미다. 오죽하면 '뉴스타파'에 과학책을 소개하는 칼럼까지 쓰겠나. 이렇게 공부가 즐거워진건 남과 경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즐겁게 하는 요령도 등산과 같다. 경쟁하지 않으면 즐거워진다. 그리고 공부 진도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한다. 마음 먹은 김에 주말에 도서관 가서 하루 8시간씩 영어 공부하고 그러면 금세 지친다. 영어는 하루 빡세게 하고, 1주일 쉬면 말짱 꽝이다. 1시간씩 매일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는다. 하루 10문장만 외운다는 생각으로 작은 걸음으로 꾸준히 가자.
 
나의 경쟁상대는 어제의 나다. 어제의 나보다 딱 문장 10개만 더 알기를 바란다. 5년뒤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스페인어를 더 잘하기를, 불어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5개 외국어에 정통한 10년 뒤의 나는 세계일주를 즐기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나는 스페인어 문장 10개를 외운다.




오늘의 짤방은 엘 찰텐에서 묵었던 2만원짜리 도미토리 숙소.

이곳 2층 공용 공간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데 눈에 띈 문구.

Sorry, Is not allowed eat here.


보고 빵 터졌다. 아, 아르헨티나 사람들 영어 정말 못 한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음식드시면 안 됩니다.'
라는 문구를 아마 구글 번역기로 돌린 것 같은데...
Sorry, 'it' is not allowed 'to' eat here. 가 맞다.


그런데 거기서 it 랑 to 가 빠지니까...


Sorry is not allowed 사과는 용납되지 않는다. eat here 여기서 먹어.
의역하자면,
'미안해하지말고, 그냥 여기서 먹어.'
가 된다. ㅋㅋㅋㅋㅋ


단어만 나열하다보면 이렇게 전혀 반대의 뜻이 되기도 한다. 문맥을 보고 이해는 하겠지만, 영어 잘 한다는 소리는 죽어도 못 듣는다. 구글 번역기의 치명적 맹점.


to 부정사, 전치사, 기초 회화에서는 이런 작은 단어도 빼먹으면 안 된다. 100% 암기하여 완벽하게 정복하시길. 암송은 좀 힘들어도 그 다음부터는 아주 즐거운 공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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