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수에서 엘 칼라파테 가는 비행기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이 한글에 대해 신기해하며 묻더라. 글자 하나 하나가 다 별개의 알파벳이냐고. 자음과 모음을 상하좌우로 결합하면서 하나의 글자를 만든다고, 레고블록처럼 알파벳을 조립하는 문자라고 설명했더니 무척 신기해하더라.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아 의외였는데, 멕시코 사람인데 어린 시절 동네에서 태권도 도장을 다녔단다. 아, 이런게 민간 외교의 힘이구나. 몇시간 동안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멕시코에서 온 척추 전문의인데 나와 같은 여행광이어서 여행 예찬론을 늘어놓다가 그가 예전에 만난 환자 이야기를 했다.
어떤 할머니가 오셨는데 척수에 암이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단다. 그래서 환자에게 의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그냥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시라고 했단다. 일을 좋아하면 일을 하고, 노는 걸 좋아하면 놀고, 여행을 좋아하면 여행을 다니며 남은 생을 즐기시라고. 그랬더니 환자의 아들이 분노를 터뜨렸단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당신이 실력이 없는 거겠지.' 돈 많은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치료해주겠다는 의사를 찾았다. 결국 어떤 의사를 만나 방사능 치료, 약물 치료, 수술까지 돈 들여 온갖 시술을 다 했는데....... 6개월이 지나 아들이 다시 찾아왔다. 돈은 돈대로 들고 어머니는 병원에서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나아지질 않는다고, 어떡해야 하냐고. 의사는 다시 말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냥 남은 시간 즐겁게 사시다 가시게 해주세요.' 그러자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단다. '어떻게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하냐.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담담히 고개를 저었단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남은 시간을 즐기시게 해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려고 하는데, 사실 생의 마지막에는 자신이 소유한 돈보다, 자신이 즐겼던 추억만 남는다고, 그래서 자신은 매년 여행을 다닌다고 말했다.
멕시코 의사랑 이야기하다보니 예전에 한국 성형외과 의사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신인 여배우 오디션을 보다가 조연출에게 "야, 근데 저 친구는 이틀 전에 왔던것 같은데?" 했다. "다른 배우입니다, 선배님." 프로필을 찾아내서 "이것 봐, 같은 사람이잖아." 했더니, 조연출 난감한 표정으로, "선배님, 소속사가 같아서 그래요." 그제야 감 잡았다. "야! 회사는 같아도 제발 병원은 좀 다른 데 보내라고 해라." 성형외과도 무슨 단체 할인이 있나?
성형외과 의사를 만나 드라마 피디로서 불만을 토로했다. '왜 다 똑같은 얼굴을 만드나요. 충분히 예쁜 여배우를 왜 굳이 손을 대어 개성 없는 얼굴로 바꾸나요?' 그때도 의사의 항변. '좋은 성형외과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 없는 수술은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무슨 수술을 해주세요. 할 때 손님은 안 하셔도 됩니다, 하고, 돌려보낼 수 있는 의사가 좋은 의사죠. 환자는 돈만 주면 뭐든지 해주겠다는 의사가 좋은 의사라고 착각합니다. 계속 여기저기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다 결국 수술하겠다는 의사를 찾아냅닙니다. 성형 중독 수준이라 수술을 하면 더 나빠질 것이 뻔한데 말이죠. 나중에 수술 부작용으로 얼굴이 망가지면 그때가서 다시 처음 의사를 찾아와서 하소연한단다. '얼굴이 너무 망가졌어요. 어떻게 해야하나요.' 그럴때 의사는 좌절한단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그때 내가 해줄 걸 그랬나?'
그 성형외과 의사가 그러더라.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외모에 불안해하면 표정은 어두워지고 자신감이 사라진다. 사람의 매력은 밝은 표정과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태도에서 나온단다. 인생을 즐겁게 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외모란다.
지난 봄에 연이은 밤샘 촬영으로 체력이 떨어져 심하게 아팠다. 영양제 주사라도 맞으라고 다들 권해서 병원 가서 주사를 맞았는데, 간호사 분이 그러더라. 이렇게 비싼 주사를 맞지 마시고 평소에 숙면을 취하고 운동을 하세요. 건강에는 그게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건강 관리에도 시간을 들여야한다.
우린 돈으로 모든 것을 사는 일에 너무 익숙해져있다. 건강도, 미모도, 행복도, 다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모두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오로지 시간만으로 살 수 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비싼 돈 주고 학원만 끊으면, 어학 연수만 가면, 유학만 가면 저절로 영어가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돈 한푼 안 들이고도 한국에서 독학으로 시간만 꼬박 꼬박 투자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 영어 공부에 시간을 들일 자신이 없는 사람이 돈을 들인다. 그러면 해결될 줄 알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시간으로만 살 수 있다.
지난 달에는 아버지와 3주간 뉴욕 여행을 다녀오고, 이번 달에는 한 달 일정으로 남미 배낭 여행중이다. 다들 날더러 팔자 좋다고 부러워하지만, 실은 힘들어서 이러는 거다. 드라마 '여왕의 꽃' B팀 감독하면서 6개월간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드라마 끝나자 인사발령이 났다. MBC 입사 20년만에 처음으로 비제작부서로 가게 되었다. 드라마국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니, 당분간 내가 좋아하는 연출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우울하고 힘들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했다. 즐거운 여행이라는 시간을.
공짜 영어 스쿨을 연재하고, 여행 일지를 쓰면서, 애써 PD라는 직업은 잊고, 즐겁게 살려고 하고 있다. 이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용을 쓰는 중이다. ^^ 여행 사진을 보고 염장이 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이해해주시라. 내가 요즘 정말 힘들어서 그렇다. ^^ (잦은 ^^ 남발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자조적인 농담도 못하면 더 비참할까봐. ^^)
3박4일간 또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다녀왔다.
혼자 걸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역시 답은 그냥 즐겁게 버티자였다.
배낭을 메고 하루 4만8천보까지 걸었다.
밤에는 텐트에서 야영을 하면서
마지막 날 그레이 빙하 구간을 걸을 때는 비를 맞으며...
별로 자랑스러운 모습은 아니지만 리얼한 상태 그대로 올려본다. ^^
트레킹 마치고 카타마란 타고 다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이동중.
세상을 원망하며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무엇이 오든 그냥 즐거운 인생을 내게 선물하기로.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다음 포스팅에서는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법'에 대해 글을 올리겠습니다.
'공짜 영어 스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위병 시절 영어 공부의 추억 (7) | 2015.12.02 |
---|---|
영어 공부할 시간, 어떻게 만들까? (7) | 2015.12.01 |
어떤 책을 외울까요? (7) | 2015.11.28 |
영어공부의 시작, 영영사전 (1) | 2015.11.25 |
쪽팔려도 죽지않아 (7) | 2015.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