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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영어 스쿨

기초 회화는 손짓발짓부터

by 김민식pd 2015. 11. 19.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얼까? 나같은 짠돌이 배낭족이 보기엔 신라면의 유무다. ^^ 뉴욕에서는 동네 슈퍼에서도 신라면을 판다. 그런데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아무리 슈퍼를 찾아헤매도 신라면은 커녕 일본 라면을 파는 곳도 없다. 수도가 이렇다면, 국경 근처인 이과수나 산간벽지인 파타고니아에 가면 한국라면을 절대 못 구한다는 건데... 인터넷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한국 라면 팔 만한 곳을 찾아보니 차이나타운의 아시안 식료품 가게가 나온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니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피 다 있다, 만세!

계산대 줄 서있는데, 직원이 손님마다 꼭 뭘 물어보더라. 스페인어는 아직 꽝인데 어쩌지? 어느 나라에 가든 가장 먼저 외우는 표현이 있다.
"저는 외국사람입니다. 영어 하세요?" (만병통치약^^)
"요 쏘이 에스뜨랑헤로. 아블라스 잉글레스?"
직원, 난감한 표정. 남미에 와서 느낀 건데 여기는 정말 영어하는 사람이 드물다. 같은 라틴어 계통이라 영어 배우기가 우리보다 훨씬 쉬울텐데. 역시 부지런한 걸로는 한국 사람들 못 당한다.

직원이 손가락 두개를 비비는 시늉을 하더니 (만국 공통어로 캐쉬, 현금. ) 고개를 끄덕하고, 다시 허공에 손을 긋더니 (카드 긋듯이) 고개를 도리질한다. 아항, 현금은 되고, 카드 결제는 안된다는거구나. 웃으며 엄지와 검지를 비빈 후,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현찰 오케이. 급할 때는 역시 바디랭귀지가 최고다.

예능국 근무 시절, 잘 노는 선배 피디가 하나 있었는데, 이 양반은 심지어 아프리카에 가서도 현지 여자에게 작업을 걸었다. 어떻게? 그냥 한국말로 열심히 작업하는 거다. 너 예쁘다, 이름은 뭐니, 같이 술 한 잔 할래? 뭐 이런 식으로. 옆에서 보면 저게 뭐지 싶은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더라. 어차피 걔도 나도 영어 못하는데, 딸리는 영어로 머리 긁어가며 인상 찌푸리며 대화를 시도해봤자 상대에게 부담만 준다. 작업은 마인드 게임이다. 자신있게 들이대는 사람이 무조건 유리하다. 이럴때는 가장 자신있는 언어, 즉 모국어로 들이대는 게 최선이다. 아프리카에 가서 우리말로 해도 먹히는 건 표정과 몸짓이 따라준 덕분이다.

시트콤 '뉴논스톱'이 PD로서 데뷔작인데, 시트콤 연출을 공부하면서 미국 시트콤 '프렌즈'나 '사인펠드'를 즐겨 봤다. 미국의 시트콤은 주로 투샷을 즐겨잡는다.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한 앵글에 같이 나오는. 액션과 리액션을 함께 보여주는 샷이다. 나도 투샷을 즐겨썼더니 사이즈가 루즈해서 극적 긴장감이 준다는 지적을 들었다. 그래서 다시 보니 한국의 드라마는 대사를 할 때 항상 바스트만 잡더라. 심지어 사극이나 연속극에서는 얼굴만 타이트하게 잡는 경우가 많더라. 우리는 말할 때 손동작이나 몸짓을 거의 쓰지 않는다. 미드나 헐리웃 영화를 보면 항상 웨이스트 샷, 허리까지 넉넉하게 잡는 앵글이 메인이다. 영어는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전달을 도와주는 언어라 그렇다.

'영어 잘 하는 비결이 뭐에요?' 누가 물어오면, 제일 간단한 답은 이거다. '영어 잘 하는 척! 하면 됩니다.' 

나는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다. 혼자 독학해봤자 거기서 거기지, 유학파나 교포는 못 당한다. 나는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잘하는 척 한다.
 
영어 잘하는 척 하는 비결?

1. 리액션도 영어다.

원어민 회화 수업에 가보면, 심각한 표정으로 미국인 강사가 하는 얘기 열심히 받아적는 사람이 있고, 그냥 편하게 팔짱끼고 앉아 다 알아듣는 척, 연신 고개 끄덕이며, '아하, 아하.' 반응해주는 사람이 있다. 둘 중 회화가 빨리 느는 쪽은 후자다. 못 알아듣더라도 대충 분위기 파악해서 웃어주고 고개를 연신 끄덕여야한다. 그러면 상대도 내게 한번이라도 더 물어오고, 나도 입을 열 기회가 생긴다.  

상대의 말보다 표정을 읽어라. 재밌는 얘기를 하는 건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건지, 표정을 보면 안다. 원어민들은 영어를 할때 우리보다 표정이나 동작이 풍부하다. 그걸 흉내내고 다양한 반응을 보여줘라. 적절한 타이밍에 어깨 으쓱 해주고, 박수치며 웃어주고, "Uh, oh." 하고 고개 끄덕여도 영어 무척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웃음소리, 얼굴 표정, 바디랭귀지, 이것도 다 언어다. 미팅 가보면 리액션 좋은 사람이 인기도 좋다. 회화도 마찬가지다. 리액션 좋은 사람이 즐거운 대화 친구가 된다.  

2. 콩글리쉬도 영어다.

영어는 언어다. 학문이 아니다. 의사소통의 도구다. 공을 주고 받는 상호 교환, 탁구와 같다. 

탁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냥 치면 된다. 상대가 고수라면, 당신이 치기 좋게 공을 살살 받아 줄 것이다. 내가 초짜인데도 상대편에서 스핀 먹이고, 스매싱을 한다? 같이 공놀이 못 할 사람이다. 내가 기초 회화로 말을 거는데, 상대방이 온갖 어려운 말로 내 혼을 쏙 빼놓는다? 같이 말 섞지 못할 사람이다. 그냥 보내줘라. 같이 안 놀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다 상대를 배려해서 쉬운 말로 대답해준다. 내가 아무리 못해도 걱정말고 공을 보내라.

입만 열면 콩글리쉬가 나오니까 영어하기가 겁난다? 콩글리쉬가 안되면 잉글리쉬도 못한다. 문법 신경 끄고, 발음 신경 끄고, 무조건 콩글리쉬로 시작해야한다. 콩글리쉬도 영어다. 왜? 그걸로도 의사소통이 되니까. 문장으로 대화하려 하지 말고 단어만 내뱉어도 뜻은 전달된다. 혼자 입안에서 맴도는 표현, 시간 끌다 타이밍 놓치고 포기하지말고 단어만 던져주라. 상대가 알아서 문장을 만들어 되돌려 준다. '너 이 말 하려했던 거지?' 스매싱 먹일 생각말고 쉽게 넘겨줘라. 콩글리쉬도 영어다. 

3. 된장 발음도 영어다.

내가 영어를 하면 주위에서 그런다. "통역사인데 웬지 영어 발음은 친근하네요?" 좀 후진 된장 발음으로 영어를 한다는 뜻이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심지어 영어할 때도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온다. 그러나 난 영어 발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TED 강의를 들어보면, 프랑스나 남미 출신 연사가 영어로 강연할 때 보면 발음은 별로다. 억양이 아주 심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꿋꿋하게 영어한다. 발음은 중요한게 아니다. 핵심은 내용이다. 발음 후지다고 절대 기죽지 말라. 떳떳하게 막 떠들어라. 아무리 미국인 영어 발음이 좋아봤자, 한국어는 절대 나보다 못한다. 그들은 어설픈 한국어도 못하는데, 내가 영어 발음 좀 후지다고  기죽을 이유는 무언가? 된장 발음, 절대 기죽지마라. 2개 국어를 하는 당신이, 영어만 하는 원어민보다 더 멋진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라.  

영어,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하는 척!하는 것이다. 
명심하시라. 영어에서의 고수는, 
10개을 알지만 셋도 표현하지 않는 사람보다, 
다섯개만 알지만 다섯을 다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의 짤방은 이과수 폭포입니다.
저도 참 스페인어를 못하지만, 여기 사람들도 영어 참 못하네요. ^^
손짓발짓 해가며 잘 다니고 있어요. 1박에 3만원짜리 호텔에서, 저녁은 신라면으로 때우면서.

배낭족 숙소는 어딜 가도 한국 사람이 있는데, 아르헨티나 와서는 한 명도 못 만났어요. 저녁이면 혼자 앉아 글을 씁니다. 매일 오늘은 뭘 쓸까 고민하는 통에, 심심하지는 않네요.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추천단추 누르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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