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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피디 마인드'를 만나는 행운!

by 김민식pd 2014. 7. 26.

피디 지망생을 만났을 때, "피디님은 공채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라고 물어오면 참으로 난감하다. 공채를 준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외대 통역대학원 재학 시절, 같이 공부하던 친구는 꿈이 방송사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기자가 꿈인데 통대에 들어온 이유는, 미국 특파원으로 지원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그 친구는 방송사 전형 공고가 떴을 때도 기자 시험 준비하느라 바빴다. 당시엔 온라인 접수가 없어 여의도 방송사까지 가야했는데, 바쁜 친구를 위해 내가 원서 심부름을 해줬다. 잘 생긴 외모를 가진 친구를 보며, '그래, 방송 기자를 하려면 외모가 중요하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가서 보니 기자 원서 옆에 피디 원서도 있더라. '잠깐, 피디는 카메라 앞에 설 이유가 없잖아. 그럼 혹시?' 하는 생각에 원서를 집어왔다.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기에 주위 친구들에게는 비밀로 했다. 원서 내고 필기 시험 보기까지 2주 동안 언론사 시험 기출 문제집 한 권 풀었다. 낮에는 통대에서 친구들이랑 졸업시험 준비하고 (외대 통역대학원은 입학 못지않게 졸업도 어렵다.) 저녁 9시에 집에 가는 척 하고 중앙도서관 구석진 자리에 가서 문제집을 풀었다. 필기 과목 중에 영어도 있어 옛날 공부했던 문법책도 다시 들여다봤다. 하루 2시간 씩 2주간 공부했는데, 붙었다. 면접과 합숙 전형까지, 한 방에. 꿈이 기자였던 친구는 애석하게도 필기에서 고배를 마셨다.

 

요즘 큰 딸과 아침에는 수영을 배우고, 주말에는 플룻을 배운다. 수영과 플룻의 공통점. 잘 하려고 할 수록 안 된다. 수영할 땐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물에 잠기고, 플룻을 불 때 긴장하면 되려 삑사리가 난다. 세상만사, 그렇다. 잘 하려고 애쓰면 더 안 된다. 즐기는 자세로, 편하게... 물론 이게 쉽지 않다. 그래서 도박에 초심자의 행운이란 게 있나보다. 뭣모르고 겁없이 덤빌 때가 더 잘 된다.

 

대학 방송국 활동을 한 아내는 내게 그런다. "당신은 2주간 피디 시험 준비한 게 아니라, 수십년을 준비한 거야. 늘 책을 미친듯이 읽은게, 자기 소개서 작성, 논술, 면접에 도움이 되지. 통대 나왔으니 영어 공부는 기본이지. 못 생긴 외모를 가지고 허구헌날 자학 개그로 사람들을 웃겨댔으니 코미디 연습도 한 거지. 평생 피디 시험을 준비한 거라니까?

 

피디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 역량은 지식과 기술과 태도의 합이다. 신입 피디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도 기술도 아니고, 좋은 태도다.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겠다는 태도. 그런 점에서 나는 태도 만큼은 최고였다고 자부하는데, 문제는 이 놈의 태도를 가르쳐주는 데가 없다는 거다. 지식은 학교에서 배우고, 기술은 현장에서 습득가능한데 태도는 어디서 배운단 말인가?

 

책읽기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책에는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다. 피디적인 태도, 즉 피디 마인드를 가르쳐주는 책이 나왔다. MBC 김신완 피디가 쓴 '피디 마인드'.    

 

 

책 첫머리를 보자.

 

'방송사에 PD로 입사하는 데는 운이 따라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누군가는 몇 년씩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는데도 번번이 불합격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짧은 준비 과정을 거쳐 손쉽게 PD가 된다. 'PD가 될 사람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는 '무언가'는 정말 있는 것일까? 나는 당락의 결정적 요인을 'PD 마인드가 있는가, 없는가'로 규정하고 싶다. PD 마인드는 프로그램 제작을 창의적이고 능숙하게 하는 자질을 의미하는데, 취업관문에서는 그 잠재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험을 앞둔 사람 입장에서야 그 '무언가'가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 느낄지도 모르지만, 나는 준비를 잘하면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들 방법을 쉽게 찾지 못했을 뿐이다.'

 

와우! 멋지다. 피디 마인드를 가르치는 책답게 처음부터 정곡을 찌른다.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은 PD라는 직업을 만난 일이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직업이 또 있을까? PD가 되기 위해서는 행운이 따라야한다. 오늘 여러분이 블로그를 통해 이 책 소개를 만난 것도 행운이다. PD 중 김신완이라는 선배가 있어 여러분을 위해 이렇게 재미와 정보를 잘 버무린 강의록을 냈다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다. 김신완 피디는 오래도록 MBC 아카데미에서 연출반을 강의하고 그 정수를 모아 책을 폈다. 이 멋진 책을 만난 행운이 훗날 PD의 꿈으로 이러지기를!

 

 

이런 멋진 후배들이 있어, MBC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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