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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헌정 법조 드라마

by 김민식pd 2014. 6. 9.

드라마 피디로서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훗날 내가 연출하는 드라마의 디테일이 될 것이라 믿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2012170일간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법정에 출두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오늘 나의 경험은 언젠가 법정 드라마를 연출할 때 소중한 디테일이 될 것이다.’

 

검사가 배심원단에게 말했다.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를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핸드폰에 문자를 발송해서 답문으로 투표하게 합니다. 자신의 번호가 남는데 파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어떻게 남기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투표를 하고도 조합원들의 의견을 물었다고 할 수 있나요?”

변호사가 나섰다.

“MBC 노조에서는 이번 파업에 들어가기 전 여러 날에 걸쳐 무기명 비밀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검사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다시 검사가 나섰다.

제가 언제 MBC 노조가 했다고 그랬습니까? 그렇게 하는 노조도 있다는 겁니다.”

나는 검찰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에 대해 반성했다. 모든 검사가 간첩 잡는다고 증거 위조하는 건 아니구나.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 공안 검사도 있구나. 일반화의 오류란 이렇게 무서운 데 말이다.

 

파업 중 조합원들이 MBC 10층 사장실 앞에 올라가 농성을 한 적이 있다. CCTV에 찍힌 사진을 가리키며 검사가 증인에게 물었다.

"여기 경영진 사무실 앞에서 조합원들을 선동하고 있는 이 사람, 여기 앉아있는 김민식 피고 맞지요?"

증인의 답.

"아닙니다. 저 분은 다른 사람입니다."

 

난 순간 어이가 없었다. 사진속의 인물은 나보다 체격이 훨씬 크고 무엇보다 각진 턱에 사내다운 인상이 강한 다른 조합원이었는데 말이다. 그때 깨달았다. ‘검찰이 정말 절박하구나, 나를 잡아넣고 싶어서.’

 

사람은 간절할 때 실수를 저지른다. 검사의 간절한 마음이 안면 인식 장애를 불러일으키듯, 방송사들이 세월호 참사 초반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낸 것은 정부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이다. 사고가 터졌을 때, 정부가 멋진 모습으로 활약하기를 기대하는 보도국 간부들의 소망이 대형 오보로 이어졌다. 검찰과 언론은 윗사람만 바라보며 설설 기는 사람은 아니라, 국민과 시청자를 보고 뛰어야 할 사람들인데 말이다.

 

드라마 현장에 가보면, 스태프들이 감독 눈치 보느라 설설 기는 곳도 있고, 각자 맡은 일을 감독 눈치 안보고 알아서 하는 곳도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감독이 만든다. 지금 검찰과 언론이 빚어내고 있는 이런 비극적 현실, 누구 탓일까?

 

노조와 MBC 노조라는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도 구분 못하고, 안면 인식 장애를 가진 검사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다룬다면 어떨까? 분명 시청자 게시판에서 욕 좀 먹을 것이다. ‘검사가 법정에서 저런다는 게 말이 되냐. 너무 리얼리티 떨어진다.’

 

526일 오전 9시 반에 시작한 국민 참여 재판은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최후 변론에 나선 신인수 변호사의 첫마디.

 

배심원 여러분, 밤늦게까지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고생하는 건 다 저희 탓입니다. 이 재판을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하자고 한 것이 저와 여기 피고인들의 뜻이었거든요. 저희는 MBC 파업으로 인한 업무 방해 건에 대해 검찰이나 사법부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듣고 싶었습니다. MBC는 공영방송입니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시청자 여러분입니다. 그런 MBC에서 지난 몇 년간 어떤 일이 있었고, 1000명의 조합원들이 6개월간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시민의 눈으로 증거와 진술을 들어보고 시민의 법적 기준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날 검찰은 내게 징역 2년형을 구형했지만 국민 배심원단과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언젠가 나는 법정 드라마를 연출하고 싶다. 구속영장을 두 번 받고 유치장 들어갔다가 매번 기각으로 풀려났다. 6개월 정직에 대기발령까지 받았다가 징계 무효 판결을 받았고, 형사 재판에서 징역 2년형 구형받고도 무죄로 풀려났다. 이렇게 다양한 법조계 경험을 거친 내가 법정 드라마를 연출한다면 얼마나 실감나게 잘 그리겠는가 말이다. 물론 검찰의 캐릭터가 비호감으로 그려질 걱정은 있지만, 일반 시청자들의 정서에는 크게 반할 것 같지 않아 별 걱정은 없다. 그동안 만난 공안검사님들을 모델로 해서 언젠가 검찰 헌정 법정 드라마 한 편, 꼭 만들어보고 싶다.

 

(피디 저널 연재 칼럼, 김민식 피디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영장 심사 기각 되고 두부를 먹는 MBC 노조 집행부 5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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