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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에 종북좌파가 있다

by 김민식pd 2014. 3. 10.

아카데미의 계절이 돌아왔다.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로만 도배되던 극장가에 영화제 관련 작품들이 개봉하면서 작품성이나 다양성 면에서 영화광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축제의 시간이 온 것이다. 연출력이 부족한 드라마 감독으로서 족집게 영상 과외를 받는 기분으로 극장 나들이에 나선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아카데미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아메리칸 허슬이다. ‘다크 나이트의 크리스찬 베일이 배 나온 대머리 사기꾼으로 나와 작정하고 망가지는데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등장인물이 모두 다 악당이라는 데 있다. 대출 알선 사기로 가난한 이들을 등치는 사기꾼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함정 수사에 이용하며 성과를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 FBI요원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카지노를 건설하겠다며 마피아와 뒷거래를 트는 정치가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다 악당들이다. 선악의 명쾌한 대립구도 없이도 영화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데이비드 러셀 감독의 탁월한 심리 묘사 덕분이다.

 

한국 드라마는 선악의 대비가 선명하다. 시청률이 꽤 나오는 드라마에는 반드시 모든 시청자가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할 수 있는 악당 (혹은 악녀?) 캐릭터가 등장한다. 착한 주인공을 핍박하던 악인이 처참하게 몰락할수록, 시청률은 오르고 시청자들의 만족감은 상승한다. 악역이 살아야 극의 긴장이 살아나는데, 그렇다면 악당 캐릭터를 생생하게 그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드라마 PD는 역지사지하는 직업이다. 극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심리에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욕하는 바람둥이 남편이라도, 그 남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인생을 건 로맨스인양 그릴 수 있어야 드라마가 산다. 악역의 디테일한 심리 묘사를 위해 난 신문 사회면을 즐겨 읽는다. 범죄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재구성해보는 것은 그의 심리를 연구하는데 있어 최고의 연출 공부다. 요즘 신문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공적 1호는 바로 국정원이다.

 

간첩 사건의 증거 조작을 놓고 많은 이들이 국정원의 행태에 경악하고 있는데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봐야한다. 국정원이 누구인가.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 정보기관이다. 엘리트 수사요원들이자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이들인데 그들이 이렇게 어수룩하게 일을 했을 리가 없다. 뉴스타파의 최근 보도를 보면 국정원은 출입경기록의 진본을 확인하고도 가짜를 제출했단다. 간첩수사라고 하는 아주 중대한 사안에 대해 너무나 어이없는 대처인데,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추리소설에서 범인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범죄를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간첩이 잡혀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당장 손해를 보는 건 간첩을 파견한 북한일 것이다. 그렇다면 간첩 사건의 재판을 무죄로 끌어내기 위해 북한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미국의 O J 심슨 살인 재판에서 알 수 있듯이 용의자를 무죄로 풀어주는 데 있어 최고의 방법은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모는 것이다. 즉 간첩 사건의 용의자를 무죄로 풀어주기 위한 북한의 치밀한 공작이 이런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간첩 사건 증거 조작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볼 집단이 북한인 것을 생각하면,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국정원 내에서 암약하는 종북좌파가 있을 것이다.

 

2012년의 국정원 대선 개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선은 대한민국 참여 민주주의의 꽃이다. 북한 측으로서는 민의의 수렴 한마당이라는 대선에 불법 개입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피스텔에 앉아서 오늘의 유머사이트에 댓글을 단다고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바뀔 리는 없다. 처음부터 목적은 판세 뒤집기가 아니라 정통성 훼손 공작이었던 것이다. 대선 개입이 선거 제도에 대한 도전이라면 증거 조작은 사법 제도에 대한 침탈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 내 암약하는 종북 좌파가 일망타진되기를 바란다.

 

(PD 저널 연재 칼럼 '김민식 PD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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