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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인생은 좌절에서 피는 꽃

by 김민식pd 2014. 2. 16.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어떤 책을 골라주어야 할까 고민하다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2'라는 책을 골라본다. 참 좋은 책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1권이라는 책이 있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게 독서광으로서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다. 오늘의 짠돌이 무료 특강은 이 책에서 도종환 님의 글을 빌려오는 것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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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학은 좌절에서 비롯되었다.

 

도종환

 

문인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던 이들이 많다. 학창 시절부터 문예반에 들어가 활동을 했거나 백일장에 나가 상을 타곤 하면서 시인이 되는 꿈을 꾼 사람들이 많다. 또는 신문반, 교지 편집반, 도서반 활동을 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거나 학교 신문이나 교지를 만들기 위해 취재를 다닌 것이 자부심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문인들끼리 모이면 그들은 학창 시절의 그런 활동을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친구들이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나는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미술 대회에 나갔다. 학년 초마다 교실 환경 정리를 맡아서 했고, 학교 특별실을 꾸미는 데 불려 다니거나, 문집을 만들 때 삽화 그리는 일을 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며 살 거라고 생각했다. 화가가 되거나 만화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극장 주위를 자주 서성대곤 했는데, 극장에 걸려 있는 영화배우의 얼굴을 크게 그린 대형 영화 선전 간판을 보면서 나도 저런 그림을 그리면 평생 영화를 원 없이 보며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중략---

 

대학 시험에 합격한 것을 확인하던 날 나는 대학에서 시내까지 한 시간 이상을 혼자 걸었다. 머리가 복잡했고 가슴이 쓰렸다. 혼자 "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발에 닿는 허접쓰레기 같은 것들을 걷어차기도 했다.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내가 지르는 소리는 차 소리에 묻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끌려가곤 했다. 

 

나는 미대에 갈 수 없었다. 집안 형편이 미대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미대에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 보내줄 수 있는지 없는지 상의할 어머니 아버지가 옆에 계시지 않았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아버지는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떠돌고 계셨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아 경기도로 가고 안 계셨다. 나는 객지에 혼자 남아 밥을 먹다 굶다 하였다. 내가 굶고 있는 걸 본 친구들이 쌀자루를 들고 이 친구 저 친구 집을 돌며 한두 됫박씩 쌀을 걷어 그것을 마루에 몰래 놓고 간 적도 있다. 문제는 원하는 대학을 가느냐 못 가느냐가 아니라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 였다. 대학은 접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막내 고모가 고향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고향에 내려오면 친척들이 있으니 밥은 굶지 않을 것 아니냐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별 말씀이 없었는데, 고향이 같은 국어 선생님은 청주로 내려가라고 하셨다. 고향인 청주에 있는 지방 국립 사범 대학교에 원서를 넣으라고 하셨다. 그때 국립 사범 대학교는 국가에서 등록금 전액을 면제해주는 특혜가 있었다. 그리고 졸업 후 곧바로 교직에 나가 3년 이상은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취직까지 국가에서 책임지는 조건이었다. 그때 상황에서는 대학교에 가려면 그 길밖에 없었다. 학과는 국어교육과를 선택했다. 대학 다니는 동안 돈이 제일 안 들 것 같은 과가 국어교육과일 듯해서였다. 중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도서관에서 책은 많이 읽었으니 국어교육과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가고자 했던 대학에 갈 수 없고, 원하는 학과를 선택할 수 없었던 좌절이 술을 마시게 했다. 아니 대학에 다니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견딜 수 없었다. 대책 없는 폭음과 무절제와 난폭한 날들이 이어졌다. (중략)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선배가 내가 문학에 끼가 있어 그러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나를 찾아와 문학 동아리 활동을 같이하자고 하는 바람에 문학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 선배 역시 소설 쓰는 법이나 시 창작의 원리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니엇다. 나보다 더 엄청난 술꾼이었다. 그러나 독서의 폭과 깊이에 압도당하게 되는 선배였다. 그 선배와 대작을 하려면 책을 읽어야 했다. 철학과 문학에 대한 토론이 주로 술자리에서 이루어졌는데 어떻게든 그 선배를 따라잡으려면 술이 깨자마자 어제 이야기한 책을 찾아 읽어야 했다. 쓰는 건 둘째엿다. 우선 철학과 종교와 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가 문제라고 했다. 그 선배는 '든 것이 있어야 나오는 것도 있는 법'이라며, 시나 소설 창작하는 걸 똥 누는 일에 비유했다. 먹은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그래서 그 선배가 졸업할 때까지 쓰는 데 매달리기보다는 읽고 토론하는 데 더 매달리게 되었다. (중략)

 

우리는 다른 꽃보다 먼저 피는 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쌓여 산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 같으면 조바심을 내고 불안해한다. 그 불안과 초조는 시기와 질시, 자학과 원망을 낳는다. 그러면 안 된다. 나도 망가지고 나도 망가뜨린다. 어떤 꽃은 먼저 피고 어떤 꽃은 조금 늦게 피기 때문에 세상이 늘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장미는 목련보다 늦게 피지만 꽃의 여왕이란 소리를 듣지 않는가. 먼저 피었느냐 늦게 피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롭게 피는 꽃이냐가 더 중요하다. 아니 목련은 목련대로 아름답고, 장미는 장미대로 아름다우며, 국화는 국화대로 품격을 지닌 꽃이지 않는가. 가을에 피는 꽃은 늦게 피지만 황량하고 쓸쓸한 들판을 아름답게 바꾼 채 얼마나 곱게 피어 있는가. 국화가 구절초가 없다면 가을 들판은 얼마나 적막하겠는가.

 

나는 나 자신을 가을꽃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고, 늦게 꽃을 피웠다. 그러나 우리 생의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올 때 나도 언젠가는 꽃 피우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참으로 많은 낮과 밤을 기다림으로 보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올 때 이 세상 누구도 내게, 내 문학에 눈길 주지 않는 날이 길어질 때 정말 많이 좌절했고 절망했다. 그래도 기다림을 접을 수는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부디 그대들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내 인생도 언젠가는 꽃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말기 바란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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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중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누가 뭐래도 너는 너만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지금 이 힘든 순간이 지나면 언젠가 너도 꽃을 피우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아빠는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늘 너를 응원할 것이다.'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아이에게 권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딸에게 읽히려고 읽었다가 내가 더 배웠다. 부모 공부는 역시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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