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형 인재가 갖추어야할 3가지 덕목은 창의성, 역량, 협업정신인데, 이들은 피디 시험을 볼 때 면접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품성이다. 학교에서는 이 세가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특히 우리네 학교의 문제점은 세번째 협업 정신을 기르기에 전혀 부적절한 교육 환경을 조성한다는 데 있다. 이범 선생이 강의에서 이야기하듯 상대평가를 하는 교육 시스템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학급 친구들과 협동하기보다는 경쟁으로 상대를 딛고 올라서야 한다. 협업 정신을 배우기에 취약한 구조인데, 이는 PD 시험을 볼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MBC 공채 시험의 마지막 진검 승부는 합숙 평가다. 1박2일 동안 의정부에 있는 연수원에서 숙식을 함께 하며 평가를 받는다. 서류, 필기, 실무 면접까지 뚫고 올라온 쟁쟁한 실력자들이 모여 1박2일간 피튀는 서바이벌 경쟁을 벌인다. 임원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최종면접에 3배수를 올리지만, 임원들은 보통 합숙 평가의 성적순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가장 치열하고 가장 중요한 전형이 합숙 평가다. 

 

합숙 평가가 가장 어려운 점은 팀별로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한다는 데 있다. 8명을 한 팀으로 묶어 특정 시간대에 맞는 방송 기획안을 회의를 통해 도출하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자, 이제 머리 터진다. 입사 전형이니까, 8명 중에서 가능하면 나의 아이디어가 선정되어야 나의 역량이 돋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낸 아이디어만 티나게 고집할 경우, 감점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도 추천한다. 이때 다른 사람에게 표를 던질 때 어떻게 해야할까? 아마 가장 뛰어난 경쟁자보다는 좀 못한 사람을 밀고 싶다는 유혹이 들 것이다. 누군가 압도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는다면 혼자 합격하고 나는 떨어질 공산이 커지니까. 심사위원이 보기에 추천이 분산되는 쪽이 경쟁에서는 더 안전한 플레이다. 

 

자,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 팀은 하나의 아이디어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다. 이러한 과정이 심사위원의 눈에 띈다면 그 팀은 전원 탈락하기 쉽다. 최종 합격한 사람들을 보면, 각 팀에서 한 명씩 고르게 뽑힌 게 아니다. 어떤 팀은 복수의 합격자를 내고, 전원 탈락하는 팀도 나온다. 이건 왜 그럴까? 팀으로서 단체 성적이 개인 성적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 있다. 슬램덩크의 최고 천재가 누구인가? 강백호? 아니다. 서태웅이다. 강백호라고 대답한다면, 서태웅이 화 낼 것이다. 그럼 서태웅의 라이벌은? 역시 강백호라고 대답하면 서태웅은 화 낸다. 감히 백호 따위가 어찌 천재 에이스 서태웅에게! 서태웅이 인정하는 라이벌은 윤대협이다. 어느날 서태웅이 윤대협을 찾아간다.

 

 

서태웅은 윤대협에게 승부를 제안하고, 둘은 미친듯이 1대1 승부를 펼친다. 그러면서 서태웅이 묻는다. 

"너랑 나랑 전국에서 1,2위를 다투는 선수이니, 오늘 1대1 승부에서 이긴 사람이 전국 최고의 선수가 되는 걸로 인정해주자."

그랬더니 윤대협은 이렇게 말한다.

 

 

 

"1대1도 공격 기술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동안엔 네게 지지 않아."

 

농구는 다섯 명이서 하는 경기다. 남은 네 명의 팀 동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무조건 독불 장군 식으로만 플레이한다면, 절대 최고의 농구 선수가 될 수 없다. 

 

팀별 과제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 내가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다. 팀 전체가 협동을 통해서 더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나는 협업의 중요성을 통역대학원에서 배웠다. 통대내에서도 경쟁은 치열하다. 재학생 40명 중 통역사로 졸업하는 사람은 5명 안팎이다. 그러기에 스터디를 열심히 해야하는데 이때 관건은 파트너 선정이다. 엄밀히 말하면 파트너도 나의 경쟁 상대다. 하지만 스터디를 하면서, 파트너와 경쟁을 하면 절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터디를 하면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아끼게 되고, 그런 태도가 소문나면 스터디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워 진다. 결국 스터디를 할 수 없어 실력을 향상 시킬 기회를 놓치게 된다. 경쟁에서 더 잘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우선시해야한다는 역설을 나는 통대에서 배웠다.

 

앞으로 다가올 30년, 지나온 30년보다 더 큰 변화가 인류 문명에 닥쳐올 것이다. 변화와 위기 앞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과거 인류가 생존한 비결과 같다. 협업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다.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협업이다. 세상 모든 일의 기본은 협업이다. 

 

p.s. 피디 시험을 준비한 적이 없던 내가 합숙 평가를 통과한 이유가 무엇일까?

난 기획안을 단 한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획안을 만드는 팀 과제가 주어졌을 때 내가 선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낼 수 없으니, 누군가 재미난 아이디어를 내면, "와, 그거 재밌겠다!"하고 반응했다. 남들이 낸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보강할 수 있는 방안만 계속 고민했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난 아이디어를 낸 적이 없는데?' 나중에 시트콤 대본 회의를 하며 깨달았다. 피디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무엇이 재미있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걸.

 

피디는 아이디어를 놓고 작가와 경쟁하는 사람이 아니다. 협업하는 사람이다. 이걸 깨달으면 연출이 훨씬 쉬워진다. 협업과 경쟁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협업을 선택해야 한다. 그게 살아남는 길이다.

 

이범 선생의 강의 '우리아이를 미래형 인재로 키워라'를 듣고 

창의성, 역량, 협업 정신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며 연속 특강으로 꾸며봤다.  

정답은 없다. 끊임없이 고민할 뿐이다. 

 

이전 글이나 이범 선생 강연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링크로 연결해둔다.

그럼, 오늘 피디 스쿨은 여기까지~~~

 

2012/10/10 - [공짜 PD 스쿨] - 창의성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

 

2012/10/12 - [공짜 PD 스쿨] - 역량이란 머리 속 지식보다 몸에 밴 태도

 

2012/10/09 - [공짜 PD 스쿨] - 과거의 성공이 불러온 교육 시스템의 실패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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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비오 2012.11.15 1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

  2. [인터넷방송] CIBS 코난방송국 2012.11.15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로지 한 우물만 파고 제 청춘을 다 바쳤는데
    점점 꿈이 불가능해져가는게 슬퍼요...ㅠㅠ
    제 꿈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겠네요.. 피디님...
    언제 제 꿈을 멋지게 펼치는 날이 돌아올 지...

    • 김민식pd 2012.11.19 06: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보다 앞서가기란 그렇게 힘듭겁니다.
      남들은 힘들게 입사시험 치르고 시작하는 일을 코난님은 그냥 스스로 시작한 거잖아요. 남들 입장에서 보면 코난님의 용기가 부러울 수도, 한편으론 고까울 수도 있죠. '못난 것들, 흥!'하고 대범하게 넘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