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삶에서 힘든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기다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멋진 배역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가수는 무대에 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개그맨은 대중의 반응이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한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배우는 1년 넘게 캐스팅을 기다리고, 촬영장에 나가서도 매일 촬영장 세팅을 기다리고, 자신의 출연 분량이 혹 잘리지는 않는지 시사회를 기다리고, 대중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개봉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해서 한 시간 반 짜리 영화가 만들어지고, 만약 흥행에 실패하면 다음 작품 캐스팅까지 또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그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면 대중에게 잊혀지고 그렇게 꿈은 멀어지고 깨어집니다. 

 

어제는 영화를 한 편 봤어요. '서칭 포 슈가맨'이라는 음악 다큐 영화인데, 정말 거짓말같은 인생 역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1970년에 한 장의 앨범이 나옵니다. 로드리게스라는 노동자 가수가 녹음한 '콜드 팩트'. 음반 제작자는 자신의 생애 최고의 작품 중 하나라 손꼽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두번째 앨범 역시 몇장 팔리지 않자 음반사는 계약을 해지하고 그렇게 로드리게스는 음악시장에서 사라집니다. 실패한 가수 지망생이 어디 한둘인가요.

 

무대는 지구 반대편 남아공으로 옮겨갑니다. 1970년대 '아파르트헤이드'라는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해 전세계에서 왕따가 된 나라죠. 남아공 정부에 대한 외국의 비난 여론이 들끓자 언론 통제를 통해 일종의 문화 쇄국정치를 실시합니다. 미국과 공식적인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콜드 팩트라는 음반이 지하 시장에 반입됩니다. 로드리게스의 반골적인 가사와 체제비판적인 노래는 남아공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50만장 가까이 팔리면서 남아공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 못지않는 인기를 구가하는데 정작 '로드리게스'라는 가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결국 남아공의 팬들에게 로드리게스는 불운한 뮤지션으로 살다 무대위에서 자살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알려집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어느 남아공의 음악 평론가는 자신들에게 전설인 로드리게스가 어떻게 죽었는지 르포 기사를 쓰려고 가수의 발자취를 쫓습니다. 그러다 무대 위에서 권총자살한 전설 속의 로드리게스가 아니라, 고향 건설판에서 노가다 일을 하며 살아가는 노동자 로드리게스를 만납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의 뒤는 가급적 영화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두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입가에서는 미소가 그려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겁니다.

 

 

 

 

서른살에 MBC에 입사하여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조연출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응답하라 1997'에 나오는 에쵸티와 젝스키스의 시대로 방송계에 입문한 거죠. '뉴논스톱'으로 연출 데뷔하면서 많은 신인 배우들과 작업했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연예인들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 늘 안타까웠습니다. 주철환 선배님이 신인을 만나면 늘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잘 나간다고 오만하지 말고, 안 나간다고 비굴해지지 마라." 인생 길게 보면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팬들에 의해 스타로 군림하는 것도, 안티들에 의해 악당이 되는 것도, 긴 세월을 놓고보면 다 한 순간의 찰나같은 일인데, 그 순간이 영원할거라는 착각에 그릇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로드리게스의 2집 앨범은 미국내에서 여섯장 팔렸답니다. 참담한 결과지요. 정말 잘 만든 앨범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지만 대중의 냉담한 반응에 모두 좌절합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 로드리게스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수많은 남아공 팬들의 상상처럼 무대에서 자살했을까요? 아니면 많은 1970년대 뮤지션들이 그랬듯이 마약이나 술로 현실도피를 했을까요? 그는 선선히 꿈의 무대에서 물러나 이제껏 그래왔듯 노가다 일꾼으로 살아갑니다. 하루 하루 몸을 써서 일하는 성실한 삶 속에서 불멸의 정신을 찾아냅니다. 

 

남아공에서 온 음악평론가가 로드리게스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잘 만든 앨범인데 왜 미국 시장에서는 실패했을까요?" 아마 로드리게스 자신도 평생 동안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겠지만, 한참을 대답하지 못합니다. 고개를 젓다가 한마디하지요. "그런게 시장이지요. 그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 누구도 영원한 성공은 절대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 연예인 지망생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무엇일까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최고의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는 최선을 다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렇게 멋진 나를 대중이 발견해줄 날을 말입니다. 로드리게스에게 그 기다림은 40년만에 찾아옵니다.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 기다림에 지쳐 심신이 망가질 수 있기에, 오래 버티려면 자신만의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몸과 마음을 가꾸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불멸의 삶을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 여러분에게 '서칭 포 슈가맨' 같은 기적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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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듀파워 2012.10.24 1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은 상영관이 영화공간 주안만 남았내요 후다닥 보러갑니다~

    • 김민식pd 2012.10.25 0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선생님. 소금꽃 나무는 제가 봄에 읽고 조합 사무실에 기증해 비치해둔 책이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 권 더 생겨서 좋군요. 의자놀이는 실은 아직 안 보고 있었어요. 싸우는 제 입장이 투영되어 책 읽기가 힘들까봐 두려웠거든요. 그래도 읽으며 많은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듀파워 2012.10.25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의자놀이 읽으면서 숨쉬기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농성장엔 [남쪽으로 튀어라]같은 키득대다가도 힘이 나는 책을 갖다드려야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의자놀이를 집었내요 헤헤~~

  2. 포카리스 2012.10.25 0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예인지망생은 아니지만 리뷰를 읽어보니 한번 봐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네요. 추천하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3. 새벽단비 2012.10.25 1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 제천음악영화제 개막작이었어요:) 정말 좋았는데. 일반 상영관에서도 그 진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서 좋아요:)

  4. 영화 너무 좋죠? 2012.11.09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 저도 보고 너무 좋아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나왔어요. 전 시사회장에서 봤는데 참... 꿈꾸는 사람에게는 묘한 희망이 되어준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사람의 방식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누리러 가지 않고 즐기는 거. 막노동을 하면서도 예복을 입었다... 그 증언이 어찌나 좋던지... 그가 누구였는 지를 물어 줄 수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거 같아요...
    그리고 그 남아프리카의 덕후들에게 감사함이 샘솟더라구요.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그를 찾아 줘서 고맙다고... 이 이야기를 보여줘서 고맙다고...ㅎㅎ
    아마 남아프카에서 터전을 잡은 그가 마지막이었다면 그렇게 오래 앉아 있지 못했을 거에요. ㅎㅎ 참, 이기적이죠? 나라면, 그처럼 살기 힘들었을 거에요. 이기적인 저는 피디님의 싸움이 여전히 감사한 시청자에요. 아직 싸우는 분들이 있다는 거 늘... 기억하고 있답니다. ㅠㅠ
    음... 전 확실히 울었지만 피디님이 이 영화로 울었다는 건 믿기지 않네요. 남자에 대한 편견, 죄송합니다. 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