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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플래너 이준길 님의 삶에서 발견한 희망

by 김민식pd 2012. 9. 10.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컨셉은 매스미디어 피디가 말하는 소셜미디어 제작법입니다. 그동안 블로그, 유튜브, 팟캐스트 제작에 대해 글을 올리며, 소셜미디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20대에게 꼭 필요한 도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세 사람을 만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인터뷰, 블로거 희망플래너입니다. 

 

희망플래너 이준길을 만나다.

 

이준길씨와 나의 개인적인 인연을 말하자면, 그는 내게 준길 법우님이다. 몇 년 전, 드라마국으로 옮긴 후, 프로그램을 맡지 못해 힘든 시기가 있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법륜 스님의 위로와 충고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배울 수 있었다. 그때 정토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준길 법우를 만났다. 북한 어린이 돕기 길거리 모금을 나가면, 항상 얼굴에 가득 염화미소를 품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2011년에 청춘 콘서트가 시작되고, 안철수 신드롬이 일었다. 청춘 콘서트에 갈 수는 없었지만, 나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안철수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청춘 콘서트를 지상중계하는 블로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희망플래너라는 이름의 블로거로 활동중인 준길 법우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평화재단에서 자원봉사자로 열심히 일하시는 건 알았지만 파워블로거가 되신 건 모르고 있었어요.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8,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및 우리 민족의 장기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민간 연구 교육재단인 평화재단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북한 식량 위기가 심각해서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죽는 어린이가 숱하게 나오는데 우리 정부에서는 아무런 지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재단의 법륜 스님이 북한의 식량위기를 알리자는 취지에서 70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저도 북한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길거리 캠페인에 나서고 언론사에 관심을 호소하고 다녔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언론사에서 아무도 기사를 실어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 손으로 인터넷 뉴스를 만들자는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방문자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시 저와 자원봉사자들 몇 명이 함께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방문자가 하루에 열 명 안팎이니까 다들 힘이 빠져 블로그를 포기하고 다시 거리 캠페인하러 나갔죠. 저는 남아서 블로그의 조회수를 늘리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는 대신, 다음 블로거뉴스에 가서 베스트 글을 읽었습니다. 다양한 글을 읽고 모방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 헤맸죠. ‘왜 내 글은 인기가 없을까?’ 파워블로그를 보니까 일방적인 주장이나 설득보다는 구체적인 사연을 들어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크로싱이라는 탈북자에 대한 영화가 있었어요. 마침 평화재단 봉사자 중에 탈북자가 있어 그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보고나서 감상을 물었죠. ‘영화에서 그린 북한의 실상이 진짜야?’ 그 친구는 1997년과 98년의 고난의 강행군의 비참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영화는 실제 사태의 10분의 1도 못 그렸다고 말했습니다. 친구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영화 감상과 함께 올린 글이 탈북자가 본 탈북 영화였습니다. 그 글이 다음에서 블로거 특종상을 탔습니다. 상금 30만원을 북한 식량 기금에 기부하고 다시 그 과정을 글로 써서 북한 어린이 돕기 기금 마련에 대해 알렸습니다. 북한 식량난에 대해 꾸준히 글을 올렸더니, ‘희망플래너하면 북한 식량 문제 전문 블로거로 알려지게 되었죠.”

 

아무도 써주지 않는다.’ 에서 나만이 쓴다.’로 바뀌었군요. 파워블로거가 되고 어떤 변화를 겪으셨나요?

 

악플러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죠. 북한에 식량을 보내자는 글을 계속 쓰니까, 블로그에 찾아와서 욕설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식량으로 군대 배불리고 전쟁 준비하면 어떡할래?’ 하는 거죠. 글 하나에 댓글이 800개 정도라면 그 중에 700개가 욕이었어요. 저는 댓글에 다시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러기에 식량 지원도 중요하지만 차후 모니터링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반드시 확인해야지요. 무엇보다 굶어죽는 북한 아이들도 같은 동포인데 모른 체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댓글 작성이 활성화되면서 온라인 대화의 장이 열리더군요. 댓글이 많이 달린 글은 다시 베스트글로 올라가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제 글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한 것은 북한 식량 위기에 대한 여론의 확산이었기 때문에 결국 악플러도 제게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던 거죠.”

 

북한 식량 문제 전문 블로거로서 2008년에는 다음뷰 블로거 8만명 중에서 1위에 오른 이준길씨는 그러나 곧 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전역 후 그의 블로그에는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준길님이 인생을 바꾼 사연, 내일 2편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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