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사심에서 비롯된다. 나는 팬심 충만한 인생을 사는 중년의 덕후다. 시트콤 매니아라 시트콤 피디가 되었고, 나꼼수 덕후라 나꼼수에 출연하고, 독서에 미친 인생이라 책을 쓴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도 평소의 팬심을 발휘할 기회를 찾았다. 책 집필을 핑게로 정혜림 아나운서와의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덕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팟캐스트의 진보요정, 정혜림 아나운서를 만나다.

 

팟캐스트 방송의 파급력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요. 블로그나 클럽 활동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튠즈를 통해 단시간에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있다는 게 팟캐스트의 최고 매력인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시장이 이미 존재하므로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자신의 색깔을 충분히 보여준다면 새로운 팬 층을 확보할 수 있거든요.”

 

정혜림은 아나운서로서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진보성향의 온라인 매체인 민중의 소리5년 전에 입사한 이래, ‘정혜림의 도도한 뒷담화’ ‘정혜림의 발칙한 뉴스’ ‘생방송 애국전선등 다수 프로그램을 팟캐스트 인기 순위에 진입시키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신입사원 시절에 직접 기획한 도도한 뒷담화는 대본을 쓰는 것은 물론이요, 음악 선곡과 녹음 편집까지 맡아 몇 년째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다.

 

우리 회사는 신입 아나운서를 사자 새끼 키우듯 기르는 것 같아요. 일단 벼랑에서 떨어뜨린 후, 살아남는지 보는 거죠. 주어진 라디오 뉴스 대본을 읽는 것이 전부인 공중파 아나운서에 비해 방송전반에 대해 폭넓게 배울 수 있죠.”

 

정치외교학과를 나와서 공중파 아나운서 공채를 준비하던 사람이 지명도가 낮은 온라인 매체에서 일하는 것이 실망스럽지는 않았을까?

 

아나운서 지망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방송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아나운서 공채 다닐 때,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며 보니 마이크 앞에 서 본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무척 크더라고요. 두 달에 300만원을 내고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니기도 하는데요, 어떤 사람은 그런 곳을 몇 군데를 다니느라 천 만원을 쓰기도 합니다. 경험을 얻으려고 돈을 내기도 하는데, 돈을 벌면서 경험을 쌓을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죠. 공중파에 가면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 하나 맡기도 쉽지 않거든요. 굳이 공중파를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해요. 아나운서가 되는 게 꿈인지, 공중파 아나운서가 되는 게 꿈인지. 어쩌면 막연한 환상을 쫓고 있는 게 아닌지 냉철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볼 줄 알아야죠. ‘어떤 환경에서든 방송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진짜 꿈을 쫓는 자세 아닌가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직업이 되면 스트레스가 되는 법이다. 더욱이 공중파 아나운서의 꿈을 안고 살던 이가 온라인 매체 제작 현장에서 일하며 어려움은 없었을까?

 

어려움은 당연히 있죠.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마다의 힘든 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아나운서의 삶을 꿈꾸고 입사한 후배가 얼마 못 버티고 나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저는 아무리 힘들어도 최소한 일년은 한번 해보라고 권합니다. 그 정도는 버틸 각오를 하는 것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예의니까요. 20대는 물 속에 머리끝까지 푹 빠져도 다시 헤엄쳐 나올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발끝만 살짝 담가서는 그 일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

 

일반적으로 아나운서 하면, 외모며 지성이며 모든 점에서 최강의 스펙을 가진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자리라 생각하는데, 과연 정혜림 아나운서는 스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스펙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부라고 생각합니다. 스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어찌 보면 자기위안일지 몰라요. 눈앞의 단기 목표에만 충실한 삶이죠. 스펙을 갖춘다고 합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직장 생활을 하는데는 스펙은 별로 필요 없어요. 누구나 다 하는 스펙보다, 자신만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또래에게 팟캐스트 방송을 권한다면 그 매력은 무엇일까?

 

팟캐스트의 매력은 빠르고 거칠고 톡톡 튀는 것이죠.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누구나 한번 시도해 볼 만 합니다. 만드는데 큰 돈 들지 않아 실패해도 부담이 없다는 게 최고 장점 아닐까요?”

 

끝으로 온라인 매체 아나운서로 일하는 보람을 물었다.

 

기자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 기자회견도 있어요. 힘없는 철거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해도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그런 분들까지 찾아가는 매체는 우리 밖에 없거든요. 눈물로 호소하는 할머니에게 혼자 마이크를 대고 있을 때, 보람도 크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무겁게 느낍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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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채집자 2012.10.17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정혜림 아나운서 역시 똑부러지십니다! 좋은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2. 감사합니다. 2012.10.20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거장은 스스로의 지식이 보편화 되는 것을 두려워해 자신의 악보를 모두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PD님은 이 엄청난 아카이브를 나누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시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야기 속에 살고 싶어서 PD가 되고자 합니다' 조금 오랜 후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너럭바우 2014.11.06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다듣사에 빠졌네요.
    나이로야 한참 동생들이지만 강선생님괴 정아나운서님의 방송 팬이 되었네요.
    정아나운서 목소리도 좋고 생각도 바르고 너무 좋아요.
    아들 있으면 며느리삼고싶은 정아나운서님 화이팅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