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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3차산업혁명과 강남소녀

by 김민식pd 2012. 8. 28.

예전에 '독서로 인생을 바꾸는 법'이라는 글을 통해 공대생이었던 내가 책을 읽고 피디가 된 과정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2011/10/07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독서로 인생을 바꾸는 법

 

2011/10/12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독서로 인생을 바꾸는 법 2

 

2011/10/14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독서로 인생을 바꾸는 법 3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운이 무척 좋은 편이다. 내가 MBC에 입사한 1996년만 해도 IMF 사태 전이라 공채로 뽑는 PD의 수가 많았고 무엇보다 공중파 방송사의 시장 지배력이 강고하던 시절이라 일단 입사만 하면 연출의 기회가 보장되던 시절이었다. 요컨대 나는 운 좋게 막차에 올라 탄 것이다.

나를 PD로 만든 책,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15년이 지난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가 1995년에 예언한 미래는 10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현재가 되었다. 리프킨의 신작 3차 산업혁명이 나왔기에 서점으로 달려갔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바뀌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을 찾는 마음으로 다시 스승의 책을 펼쳤다. 42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핵심은 15페이지에 걸쳐 정리한 마지막 9장에 다 나온다. 세계의 변화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명확하고 단순하게 정의하여, 몇 번에 걸쳐 읽어 완전히 외우고 싶은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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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시대가 규율과 근면한 노동, 권위의 하향식 흐름, 금융자본의 중요성, 시장의 작용, 소유권 관계를 중시했다면 협업 시대는 창의적인 놀이와 피어투피어 상호작용, 사회적 자본, 개방형 공유체 참여, 글로벌 네트워크 접속 등을 보다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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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시대가 노예제를 끝냈듯이 협업시대는 대량 임금 노동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예언을 보면, 또다시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럼에도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는 노동의 기회가 사라진 디스토피아이기보다 노동 대신 유희를 즐기는 유토피아라고 믿고 싶다. 리프킨은 이제 기계화된 노동에서 벗어나 심오한 놀이(deep play)에 참여해야 하고, 단순 반복적인 작업보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말한다. 인간이 거대 시스템의 부품 취급 받는 대량 임금 노동보다는 창의적인 놀이를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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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 곳곳의 똑똑한 젊은이들 상당수가 시장이나 정부의 전통적인 일자리를 회피하고 비영리 제3부문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인터넷과 함께 자라고 분산 및 협업 소셜 공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세대는 제3부문의 분산 및 협업 특성을 보다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가상공간의 힘줄을 구성하는 오픈 소스 공유체처럼 제3부문 역시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고 사회적 연결이라는 순진한 기쁨을 맛보며 함께 살아가는 공유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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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이 다 된 세계적 석학의 책을 읽다 문득, 한국에는 이미 이런 비전을 실천하고 사는 20대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의 저자 김류미다.

3차 산업혁명보다 1년 앞서 나온 책을 보면, 김류미는 강남소녀 노동일기를 통해 편의점, 맥도날드, 전단 돌리기, 옷가게와 노래방 알바의 경험담을 통해 우리 시대 청춘들에게 있어 노동의 의미를 짚어본다. 학창 시절 다양한 알바 경험으로 전쟁 같았던 알바사전을 완성한 그녀는 ‘20대 데뷔 네트워킹 센터라는 타이틀을 단 희망청에서 활동가로 일하게 된다. 리프킨이 말한 취업의 대안을 이미 실천하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시민단체 활동가의 삶이 완전한 정답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리프킨이 지적한 것처럼 개인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내놓는 행위는 단지 시민단체 활동가에 국한되는 일이기 보다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네티즌들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리프킨의 말에 다시 귀 기울여 보면 사이버 수사대를 자임하며 밤을 새고 생산적 잉여를 자처하며 인터넷 상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폐인들을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가 인터넷상의 분산적이고 협업적인 소셜 네트워크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다른 사람의 효용에 이바지하기 위해 대개는 무료로 자신의 시간과 전문성을 기꺼이 나눈다. 이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전체의 행복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행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행복도 몇 배로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타인과 함께하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로 자신의 지식과 의견을 공유하는 것이 노동의 종말시대를 맞아 알바 천국에서 사는 청춘들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알바사전을 완성하고 시민 단체 활동가로 살다 백수가 된 김류미에게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 블로그와 트위터에서의 왕성한 활동, 즉 소셜미디어 경력이었다.

 

'나는 인맥을 넓히고 싶은 사람이라면 특색있고 치열한 블로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덕에 얻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블로그뿐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서도, 무조건적으로 호감을 갖고 잘해 주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글을 허투루 쓰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치열하게 쓰지 않는 글은 남들에게도 심드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블로그를 하며 배웠다.

백수 시절을 접게 된 것도 블로그의 영향이었다. 블로그 이웃 중에는 출판 취업을 고민한다는 글을 올리자 조언해 주는 이들이 많았고, 면접 자리에서는 블로그를 운영해 봤기에 온라인마케팅에 대한 업무를 제안받았다. 텍스트 주번에 머무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기에, 나는 내가 꿈꾸던 일과 무척이나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은 고작 2~3년 남짓 되는 블로그질과 인터넷 활동이라는 밑천 덕분이었다.’

 

블로그질과 인터넷 활동이 취업으로 연결된 것이 출판 마케팅이라는 특수한 직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문맹률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보편적인 교육을 통해 글을 읽을 줄 아는 노동자 대중을 양산하는 것이 산업혁명의 중요한 토대였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글을 읽느냐 못 읽느냐가 취업의 관건이었다면, 혹시 21세기 3차 산업 혁명 이후의 세상에서는 미디어를 다루는 능력에 따라 일자리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리프킨이 산업혁명을 3단계로 나눈 것처럼 내가 일하는 미디어 산업의 성장 발달 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보았다. 1차 산업 혁명의 결과 글을 읽는 노동자 대중이 출현하고 TV의 보급률이 크게 높아지며 신문과 TV의 영향력이 커진 것이 1차 미디어 혁명이다. 2차 산업혁명이 진행된 1990년 이래, 신문 방송이 주도하던 미디어 생태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케이블 위성 IP TV 서비스 등 TV 채널이 다변화되고, 온라인 매체의 출현으로 뉴스 산업 역시 다각화한 것을 2차 미디어 혁명이라 한다면 3차 미디어 혁명은 소셜 네트워크의 출현과 개인 미디어의 약진으로 대변될 것이다.

 

1,2차 산업의 경우, 생산 효율이 높아질수록 노동력이 다수에서 소수로 집약되는데 비해, 미디어 산업은 발달할수록 소수 엘리트 중심 산업에서 다수 대중으로 권력이 분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감히 매스미디어의 종말을 점칠 수는 없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시작한 거대한 변화를 이미 목도하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시민 기자 중심의 다양한 온라인 매체의 등장으로 여론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소수 종이 신문의 독점적 지위를 흔들어놓고 있다.

 

3차 미디어 산업혁명의 결과는 개인 미디어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디어란 네트워크와 콘텐츠로 이루어지는데, 과거에는 네트워크를 가진 소수 방송사나 신문사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인적 자원 역시 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정보 기술의 발달로 개인에게 개방형 무료 네트워크가 주어지면서 이제 누구나 언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한 해, 미디어 산업의 동향을 보았을 때, 종편 채널이라는 새로운 네트워크의 등장은 생각보다 그 영향이 미미했지만, <나는 꼼수다> 열풍에서 드러나듯 개인 콘텐츠가 약진한 양상을 보아 앞으로 미디어의 관건은 네트워크가 아니라 콘텐츠이다. 개인 미디어(personal media)의 시대는 달리 말하면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 즉 내가 미디어가 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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