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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중징계를 받은 파업 선동자의 자세

by 김민식pd 2012. 3. 6.
어제 MBC 총파업을 주도하는 노조 집행부에게 중징계가 내려졌습니다. 
해직 (이용마 기자) 정직 3개월 (저, 김민식 피디) 정직 2개월 (김정근 아나운서)

1년전부터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니,
오늘 같은 날에는 징계를 받은 소감을 쓰지 않을 수 없군요.

마님은 카톡에다, '뭐야, 해고 아냐? 겨우 정직 3개월이야? 노조 부위원장 맞아?'
동기는 트윗에다, '이번 파업의 핵심은 형인줄 알았는데, 왜 겨우 3개월이야?'
요딴 반응들 올려주고 계십니다. 

예, 인사 규정상 해고 다음 가는 중징계가 정직 3개월이랍니다. 저 나름 중죄인이거든요?
단순 가담범, 잡범 취급하지 마세요~^^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고 계시지만, 전 사실 별로 징계를 받았다고 해서 우울하진 않습니다. 왜 그럴까? 저는 항상 다음과 같은 자세로 세상을 삽니다.

"Expect the Worst, Hope for the Best."

최악을 각오하고, 최고를 꿈꾼다.

어떤 일을 할 때, 두가지만 생각합니다. 최악은 무엇이고, 최고는 무엇일까? 노조 집행부 제안이 왔을 때, 고민했죠.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집행부가 되었을 때, 최악과 최선은 무엇일까?

노조 집행부가 되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해고입니다.

해고가 과연 최악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존경하는 방송사 사장님들은 다 하나같이 해직 언론인 출신입니다. 김중배 MBC 전 사장님도, 정연주 KBS 전 사장님도 동아일보에서 해고된 분들이죠. 결국 MB 정권에서 해직 언론인이 된다는 것은 나같은 딴따라 피디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까요?  

해고는 어찌 보면 내 오랜 꿈을 실천하는 최고의 기회가 될 지 모릅니다. 제 꿈은, 공짜로 세상을 즐기는 것, 백수가 되어 거지처럼 살면서 안빈낙도를 실천하는 삶이거든요. 시립 도서관에서 책 속에 파묻혀 살고, 북한산 둘레길 산책을 매일 즐기는 삶... 이건 나의 오랜 로망이 아니던가!

이렇게 생각해보니, 해고도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더군요. 다시 최고의 결과를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노조 집행부가 되어 꿈꾸는 최고의 결과, 딱 하나입니다.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
 
사람들을 만나면, '어제 피디수첩 정말 통쾌했다! 뉴스데스크를 보며, '역시 MBC뿐이야!' 했다니까.' 이런 얘기를 듣게 되는 게 노조 집행부가 되어 꿈꿀 수 있는 최선입니다. 아, 상상만 해도 몸이 찌릿찌릿해지는 황홀한 상상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에요. 불과 몇 년 전에는 늘 이런 얘기에 우쭐거렸으니까요. 돌이켜보니 참 아득한 옛날 같군요...

내가 각오한 최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내가 꿈꾸는 최고는 눈이 부신 미래다.
뭐가 문제입니까, 그냥 하면 되지~^^

15년 전 통역대학원 5층 시청각실에서 우연히 MBC 공채 모집 공고를 봤습니다.

'오락 피디? 재밌겠는데? 한번 지원해볼까........?
떨어지면 어떡하지? 에이, 한번 쪽팔고 마는거지, 뭐.
붙으면? 예쁜 여배우들 구경하고, 가수들이랑 춤추고 놀고..... 어, 그러다 나 스타 PD 되는거 아냐?' 최악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최고는 상상만해도 눈이 부셨어요. 바로 지원했습니다.

항상 최악을 각오하고, 최고를 꿈꿉니다.

매주 한 명씩 해고자가 나오는 싸움, 
MBC 역사상 가장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지만,
내 옆에는 해고도 아랑곳 않고 "MBC를 살려내자!"며 싸우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내 눈에는 "역시 MBC가 최고야!"라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시민들만 보입니다.

정직 3개월,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만큼,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최악은 두렵지 않고, 최고는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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