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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드라마를 좋아하시나요?

by 김민식pd 2023. 7. 17.

저는 지금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평생 해본 다양한 직업들이 다 그랬지만, 대학 강의도 참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늘 고민을 하는데요. 예전에 소개한 바 있는 <나는 오늘부터 힘센 기획자가 되기로 했다>를 쓴 홍경수 교수님의 글을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에서 일하시는 홍교수님은 2022년 교육우수교수로 선정된 후, 인터뷰를 하셨어요. 

Q : 2022학년도에 진행하신 수업방식에 대하여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매 강의에는 교재 2권에서 5권에 이른 선도하는 리스트를 선정하여 주별 배치합니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한 번 이상은 교재 내용을 읽고 발표해야 합니다. 발표한 뒤에 제가 보충 설명을 하고, 이론과 관련한 실습을 실시합니다. 가령 방송콘텐츠 기획이라면, <나는 오늘부터 힘센 기획자가 되기로 했다> <예능프로그램 제작 가이드> <다큐의 기술> <나는 왠지 대박이 날 것만 같아> 책 4권을 샅샅이 읽었고, 매주 조별로 장르별 프로그램 기획을 연습했습니다. 중간고사에는 예능프로그램 기획, 기말에는 드라마 기획을 조별로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외부 방송 전문 아카데미에서 실시하고 있는 강의 방식보다 훨씬 심도 깊습니다. 학생 중에 방송 현장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고, 개인적으로 비싼 수강료를 내고 외부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대에서 하는 강의에서 더 많은 유익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저 역시 지난 1학기 수업에서 피디 지망생들을 위해 <예능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를 교재로 활용했어요. 예능 기획안 작성법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거든요. 그런데 홍경수 교수님이 제가 모르는 책 2권을 소개하시더군요. 그중 <나는 왠지 대박이 날 것만 같아>를 찾아 읽었습니다. ‘30년 차 현장 드라마 PD가 직접 옆에서 얘기하듯 알려주는 드라마 스토리텔링 창작서!’ 라는 설명이 딱 맞는 책이네요.

드라마를 구축하는 두 가지 축은 캐릭터와 플롯입니다. 드라마는 ‘관객의 불신감’ (이게 말이 돼? 주인공이 꼭 이럴 필요가 있나? 같은 생각)을 제거하는 과정이자 인물에 ‘감정이입’ (아, 주인공은 이럴 수밖에 없겠구나. 어떡하지? 어떡해야 될까?)을 하는 과정입니다. 

몇 년 전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추모 천막에서 유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진상규명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요. 태극기 부대가 몰려와 책상을 뒤엎고 난리를 칩니다. 유족들과 봉사자들이 싸우다 지쳐서 울분을 토하고 서로 지쳐서 잠시 휴지기가 왔는데,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님이 한 할아버지에게 가서 조용히 묻습니다. 

“할아버지, 고향이 어디세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에서 정혜신 박사님은 할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봅니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과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고생고생 생고생하며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십니다. 마지막에 그러십니다.

“아까는 내가 심했소.”

드라마란 이런 게 아닐까요? 상처받은 존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거. 혹은 “나도 당신과 같은 상처가 있었어요. 괜찮아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하는 공감과 위로.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나도 한번 저래 봤으면...’ ‘나에게도 저런 사랑이 곁에 있었으면...’ ‘누가 저 나쁜 놈들 어떻게 해줬으면...’하는 판타지이지요.



OTT의 시대. 영상의 시대. 숏폼의 시대입니다. 핵심은 스토리텔링에 있어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왜 어떤 드라마는 대박을 치고, 어떤 드라마는 온갖 스타로 도배해도 외면을 받는 것일까요? 드라마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최고봉입니다. 그런만큼 잘 만들기도 참 어려워요. 대박 드라마의 필수요소는 좋은 대본입니다.

이 책은 글쓰기의 공포를 없애는 방법부터 컨셉(로그라인) 잡는 법,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드는 법, 플롯 짜기, 대사 만들기, 복선 짜기, 세련되게 극본 쓰는 법까지 드라마 대본을 쓰기 위해 알아야 하는 필수 요소들을 다양한 예시들과 함께 알려줍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을 떠올려보자. “이 선생님은 정말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쳐”했던 분들을 생각해봐. 이런 분들은 일단 웃기고 시작한다. 재밌게. 학생들을 무장해제시켜놓고 하나씩 하나씩 지식을 심어줘. 수업이 너무 재밌어. 그런 원리랑 비슷한 거야. 한바탕 재밌게 놀고 나니 머릿속에 드라마 정보가 들어와 있는 거지.’ 

(154쪽)

이 분, 자기 얘기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시침 뚝 떼고 하시네요. 드라마 작법서라는데, 코미디 대본인 줄 알았어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빵빵 터집니다. 이렇게 웃기는 책도 드뭅니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라면, 꼭 보시고, 그냥 드라마가 뭔지 궁금하다면, 요샌 왜 재미난 드라마가 별로 없지? 싶다면, 재미난 희극 대본 한 편 읽는다는 기분으로 보시면 좋아요.

예전에 제가 여의도에 있는 방송작가교육원에서 드라마 작가반 수업을 할 때, 첫 시간에 한 말이 있어요. 

“여러분, 우리 시대에 순전히 자신의 노력과 재능만으로 일가를 이룰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데요. 그래도 드라마 작가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가정환경, 대학 학벌, 직장 경력,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대가로 돈도 벌 수 있어요. 가만히 앉아서 글만 썼는데, 1년에 수억을 버는 직업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문제는, 드라마 대본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거죠. 어려서 드라마 좀 봤다, 글 좀 쓴다, 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다 차세대 한류 작가라는 꿈을 꾸며 극본 공모에 도전합니다. 저도 대본 심사 여러 번 했는데요. 재미난 글을 쓰는 분들이 세상에 진짜 많아요. 문제는 그 글이 영상화되기 위해서는 수십억의 자본이 필요하고요. 그렇기에 기회가 많지는 않다는 거죠.

2012년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한 후, 7년 넘게 내 이름으로 된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힘든 시절, 드라마 작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강의도 많이 했는데요.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아, 정작 나는 드라마를 만들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 희망 고문을 하고 있구나...’ 그 부끄러움 때문에 결국 작가교육원 강의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온 분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책을 소개합니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 여러분, 이 책부터 읽어보세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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